밀양이라는 영화제목 옆에는 항상-영화 시작은 물론이고 최종 자막에서조차도, 그리고 포스터에 마저도-'Secret Sunshine'라는 영어식 제목이 함께한다.
그런데 어떤 영화에서도 이렇게 한글 제목 옆에다가 영어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없다. ‘왕의 남자’라고 해 놓고 옆에다가 ‘King's Boy'라는 제목을 갖다 놓으면 이건 개그가 된다. 더구나, 밀양(密陽)이라는 단어는 Secret Sunshine이라는 번역과 의미가 맞지도 않다. ‘밀(密)’자는 숨기다, 빽빽하다, 조용하다, 숨기다 등의 의미가 기본 의미이다. 물론 비밀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적어도 이 단어가 지명인 점을 고려할 때 번역을 하더라도 Hidden Sunshine가 좀 더 정확한 번역이고, 아마 밀양이란 지명의 옛적 이름은 어쩌면 ‘감춘볕’고을 정도가 아니었을까하는 추정도 해본다.
결국 이렇게 구지 맞지도 않는 영어식 제목을, 그것도 한글 제목에 항상 동행시킨다는 것은 결국 이건 영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이자, 어쩌면 ‘이렇게 이해해 달라’는 감독의 요구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대체 비밀의 태양빛은 무엇일까? 아니, 조금만 더 쪼개서 생각해보자. ‘태양빛’은 뭔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기독교이다.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혹시 반기독교적 메시지가 아닐까 했는데 보고나니 그건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기독교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죄인을 용서하자고 말하고, 아픈 이웃을 위해 기도를 하는 선량한 신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여주인공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만도 하겠지만, 또 주인공의 그런 복잡한 문제를 기독교가 설명해주고 납득시키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손가락질을 한다면 그것도 곤란하다. 아무튼,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치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나는 ‘태양’을 바로 하나님, 혹은 신의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그렇다면 ‘비밀의 태양, 비밀스런 신의 사랑’은 무얼 말하는건가? 내 생각은 ‘송강호’씨가 맡은 배역의 남자가 바로 주인공의 숨겨진 태양이 아닐까 한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데도, 그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 또 만약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외모나 몸만을 탐한 것이었다면 좋은 찬스(??)가 있었다. 하지만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자학적인 유혹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되려 화를 낸다. 거기다가 그 ‘화냄’은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주인공을 향해 화내는 유일한 장면이다. 즉, 그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있는 것이다. 어떤 짓, 심지어 자신-송강호, 혹은 신-을 부정하고 미워하는 것도 괜찮지만 스스로를 망치는 것만은 넘어갈 수 없다는...
거기다 심지어 정신병원까지 갔다오고-후반부에 여주인공이 퇴원한 병원은 일반 외과가 아니라 정신과 병원이다.-거기다가 퇴원 직후 머리를 혼자 자르는 엽기적 행동을 선보이는 주인공을 보고도 씨익 웃으며 ‘신애씨, 제가 이 거울 들어드려도 될까요?’라며 함께 한다. 영화 포스터를 한번 보라. 모든 걸 잃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주인공의 저 뒤편(그러니까 포스터 윗부분 중앙)으로 눈부신 햇볕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빛과 여주인공 사이에는 남자주인공 송강호씨가 있다. 이만하면 남주인공의 사랑은 신적인 무조건적 사랑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만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짐작한 감독의 의도는 ‘신의 사랑은 맹신, 구호, 신들린 기도를 통한 환상, 기적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곁의 사람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게 신의 사랑의 비밀이다’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영화 종반부에 여주인공의 동생이 밀양에 와서 남주인공에게 밀양이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 그때 남주인공의 대답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다.’ 이 말은 어쩌면 ‘사람 사는 데가 다 밀양같다.’, 또 한번 더 번역을 하자면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밀양, Secret Sunshine이 함께 한다’가 아닐까?
군말 : 어이, 수진아. 마지막에 주인공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지? 내 생각은 이렇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있잖아. 이미 중이 된 사람조차도 제 머리는 깍기 힘든데 속세에 있는 사람이, 그것도 하물며 여자가 제 머리를 깎는 것은 대단히 결연한 의지를 뜻하는게 아닐까 싶어.
그렇다면 주인공이, 혹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는 또 뭘까? 이것도 내 생각은 이래. ‘신의 도움, 신의 구원, 신에 게 의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의사가 아닐까? ‘당신이 돕지 않아도 나는 다시 살아날거야. 당신 도움 따위는 필요없어’라는 독기를 품은 거부.
주인공이 처음에 머리를 깎으러 갔던 미용실에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딸이 있잖아. 그건 일종의 신의 배려라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할 기회. 또 실제로 화해비스무리한 분위기가 잠시 연출되잖아. 그런데 주인공은 미장원에서 뛰쳐나와버리고, 또 자기 손으로 머리를 싹둑 자름으로써 그걸 거부하는거지.
그런데 말야, 감독은 이런 장면에서도 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 그런 독기 품은 의지를 드러내는 순간에도 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 즉 Secret Sunshine을 곁에 배치한 걸 보면 말야.
첫댓글 명오샘 감동이에요ㅠ.ㅠ 지나치다 싶은 논쟁때문에 영화를 외면했는데 본질을 말씀해 주신것 같네요~ 영화 한편 다 본것 같아요^^ 쌩유
무서운넘!!! 그래니가맞다 하면 끝나는걸 이런수고까지,,,^ ^
"신의 사랑은 맹신, 구호, 신들린 기도를 통한 환상, 기적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곁의 사람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게 신의 사랑의 비밀이다’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감동적인 구절이네요.~
마지막 군말에 신의 마지막 배려~내용도 조아요.역시 형님은 바른생활 국어 선생님.
되게 깔끔하게 정리하셨네요.. 관심있게 본 영화라서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ㅋ
와..이케 심도있는데 해석을 해줄줄이야?!! 그래도 답답한 부분이 해결됐어요~~쌩유쌩유!! 나의 태양은 어디 있는공~^^
단장님 아닐까? ^ ^ 두루두루 비추는 넓직한~ 태양이시지. ㅋㅋㅋ
너무 넓은 사람은 안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