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도 광화문 지점 이야기를 서술하기 전에,
경험했던 군대인사와 과거의
내 자신에 대한 상업은행의 부적절했던 행내
인사의 과거실상을
업급하고자한다~
■ 나의 군대시절의 인사경력에 대해서 몇자 부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내가 태어난 후로 일년 늦게 출생이 호적에 올려져서
나는 한국나이로 23살때 신설동지점 초임지점에서 3년7개월정도 근무마친 후에
영장에 의해서
육군논산훈련소
28/ 수용연대로 입소/
갔을 때,
운좋게도
군종사병(780)병과 직군이 몇년만에 나왔다는 소식을
접해서,
나는 바로
수용소/군목하고 면담한후
내 주특기 행정(700)을 군종사병으로 즉시 병과를
바꾸어서,
28연대 훈련소
6주를 마치고
야간 열차를 타고 원도봉산역 바로 옆 소재
101보충대(의정부 호원동)에 3박 4일 대기 하던중,
101보충대대 경리과에서/ 경리사병 병장고참이
곧 전역 하기에,
근 몇 달째/ 대기병 중에서
경리사병을 차출 하던 차에
그날 /방송 전령연락을 받고,
경리과 삼실에서
나를 포함하여 근 15명정도의 대기병 신청자가
집합 당해서,
구두시험/필기/ 실기시험(주판)을 마치고, 운좋게
내가 만점/합격해서/
나는 101보충대
경리사병에 좌충 되었고,
좌충과 동시에
내병과가 바로 군종병과 780 에서 경리병과 730으로 변경되었다.
(3군 직할부대였기에 병과는 인사부에서 품의 올려서 쉽게 병경이 가능했었다)
좌충후 보름만에 계급장이,
이등병에서 일등병으로 진급되었으며(입대후 2개월)
또, 다시
다음 진급은 입대후 7개월 만에 상병,,
그리고
입대후 14개월 만에
기간사병
병장 진급하고
34개월 까지 병장 달고
전역했던 행운을 가졌었다!
좌충되고 보니,
윗고참들이
거의 25%이상이
만기전역을 바로했기에
티오가 생겨서,
그런
초특급진급의 행운을
얻었었다.
경리과 근무 10개월까지
열심히
경리과 과대고참
업무를 마스타 하고
경리과대장 윤기하대위
를 모시며 충실히 업무에
올인했다!
그러나,
나보다 두달 늦게
경리사병으로 좌충돼 온
이해선일병이 향후
근 3년간 나의 밑에서
과대 쫄병
노릇할 것을 예견하니
안스럽기도 해서
나는 그에게 "열심히 업무 숙지하고 마스터 하라"고 늘 말하고
자상히 업무처리을
잘 숙지하도록
가르쳐 주어서
10개월후에
경리과장 윤기하 대위에게
정중히 건의 하면서.
." 과장님! 이제 저도
경리과 근무한지가
일년이 곧 넘어가고 허니...
경리과를 떠나고싶으니,
좀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감히,
과대 경리장교에게
부대/인사건의 올렸었다!!!
과장님은
한참 생각하시더니,,
"어디로 가고프냐?
그리고
이해선일병이
업무를 다 숙지하느냐?"
하면서 물의시길래...
저는 군인교회를 지키면서
대기병을 관리하는 사병중대(난 본부중대 소속이였음) 로 중대를 옮겨가서
근무하고 싶다고,
정중히 건의 올렸다!!!!
아울러,
"이일병은 이젠 완전히 경리업무를 마스터한 베타란급이다."라고 말씀 올렸었다.
그결과로,
한달후에,
경리병과
새 신임 장기하사
한명을 좌충받고
나는 바로
사병 대기병 중대를 옮겨서 대기병을 관리하는
사병대 6내무반장직을
명령 맡고
3663부대내 군인교회
군목사도 일요일날 예배를 도우면서 겸직하는 사병으로,
일주일에 2번차례
배출하는 병력을 이끌고
경기도내 양평에서부터
철원까지
전후방 부대를
트럭,야간열차 타고
병령인솔을 다니면서
지루하지 않게 사병중대
군대생활을 24개월
근무했으며,
그후 몇달후에는
군종사병 한명이
좌총되어서
나는 대기병
내무반장 업무만
열중하고 사병중대
총괄 병력계
내무반장 총괄직을
수행했다!
내무반장할 당시 병과를 100(보병)으로
바꾸었기에
제대 말련에는
보병병과로
예비군 훈련 받기가
걱정 되어서,
다시/병과 100 에서
경리병과 730 으로
바꾸어서 전역을 했었다!
4차례씩의 군대병과변경,,
2차례 중대변경등/을...
내가 이루었던 것은
먼저 우선에
나는
성실히 군대 행정업무에 몰두한 것을 기본으로 했으며,
영내에서는 다른 사병들이 비정직한 인사에 관련에서
청탁을 인사청탁하지
않았기에
내가 원했던 인사에 원하는 데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본다.
.별(장군)따기 위해서 치열한 부정과 돈거래가 있는 국내 실정을 이미알고 있지만,
영내에의 사병들은 자기인사를 위해서 부정직한 짓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왜?
갑자기 그런 군대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면...
그 당시 상업은행에서도
능력위주를
첫째로 모토로 세우고,
만약 다른 직원들이
사적으로 돈거래,
압력청탁거래를
하지 않고,
내 군대 생활때 처럼
조용히들
서열데로 있었으면
나는
내 밥그릇을
진즉 찾아서
내가 원했던 곳으로
인사수평이동이
당연히
될수 있었다고 믿기에
몇자 감히 비교해서,
직원 동우회카페에
올려 부기해보았다!
또,
지금 과거
초임기 행원때를 기억하면,
나는
신설동근무 당시에는
집이 아현동 거주여서
출퇴근 하는데
만원뻐스를
근 물경 매일 2시간씩
타고 출퇴근
다녔기에
매년 그당시
인사상담카드에
근무지를 아현동 집주소
가까이 보내달라고
애원조로
서류상 매년 요구해
기록했지만,
인사부에서
전혀 어떤 해결을
받지 못했었다!
현역 입대하기전,
3년 7개월간 신설동점에
출퇴근하면서
몸서리 쳤던
일반 만원버스가
오늘따라
가슴져리게,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인사부에 대한 원성은
신입행원 시절부터
불행하게/ 반항감이
싹뜨기 시작했었다.!!!
소속장들이
문제든지 아니면
인사부가
문제든지 분명히
둘중의 하나는
제대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것이 아닌가!!!
그리고,
인사부는
형식적인 인사고충
상담 카드만
작성해서 보내고
받아보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이고
소신있는 인사상담역
(무능력자)을 배제하고실직적 실력자 상담역을
일선 근무처에
주기적으로
파견해서
직원 고충
인사상담에 응하고,
반영하고
안됐으면 왜?
인사이동에 반영이
어떤 부적격으로
안되었는지
분명히
사실 통보해야만 하고..
그러면
수혜당사자는
부족한 부분을
향후 보완해서
다시 다음 년도에
재차 신청 올리고 하면
원만한 인사해결이
쉽게 되고
원성도 없을건인데...
도대체,
과거 잡패들 집단인
패거리
상업은행 인사부는
목에 힘 만주고..
전혀 그런 노력 조차도
하지 않았고
밀실에서
양주 마시며,
수직,수평이동과
해외점포직원
인사를 결정하는
패거리 집단이 아니였던가!
가관인것은
본부 인사상담역들을
낼 모래 옷 벋을 힘없는 노인네들을 책상 하나 만들어 주고 그들은
매일 일간지 신문 두적거리게 만들어 놓은 주역은 도데체 누구였는지
나는 감히 지금
이시간에/ 묻고 싶다!
단체와 조직의 인사가
썩어서 물이 고이게 되면
결국은
인적사람들이 썩어서
자연히
그 조직들은망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생각컨데,
과거 상업은행
썩은 인사가
상업은행 패망을
재촉했는지도 모른다!
인사부에 발령받은
직원들은
즉시
인사부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은
철저히 입을 막고
보안한다는
의무각서를 쓰게
만들어 놓고
아! 바로 그들이
인사부 출신들은
점조직인 "프리메이슨" 세력들이 모두가 아니였던가?
잠시 다른 부,
혹은 점포에
발령받고 나가면
계속 인사부에 남은
잔재 세력들이 그들을 관리
해서 기억해서,
다시,
다음 발령에
불려 들여오고,
또 보다 좋은
부처로 보살펴주고
서로 형님,아우하면
주고 받고 하면서...
아!
씨브레터 넘들!
독스라이크매너 넘들!
더우기,
윗넘들은
경영진에 입각할려고
외부기관에
몇억씩
뇌물 상납하여
부정직하게
중역이 된후에,
그 본전 뽑을려고
가장 안전뺑인
상업은행 아래직원들(점포장,차장.대리.등) 만박쳐서
검은 돈 요구해서
받아 착복했던
과거의 독사처럼
나쁜 윗경영진 넘들이
나의 사랑 ..
상업은행을
패망의 길로
인도 했단 말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자들은
기름진 똥배 두둘기며
거리를 활보하고...
배부른 당신들은
명퇴후에 사업실패후에
거리에 나 자빠진 명퇴자들의 처절한 신음소리를 듣고 있는가!!
은행뿐만이 아니고,,
국가도 마찬가지다고 본다..
고국의 현 실정은
대통령만 바뀌면 줄줄이
그 아래 사람들이 자기사람들 고향사람들로 앞세워
바람막이로 배치하니
외국사는 나로서는
매우 고국 장래가 불안하다!
작금의 고국현실은 정직하지 못한 국가 인사정책으로
나라를 어둠의 구덩속으로 내 몰고 있지 않는가!
인사정책은 국가나, 회사나
투명하고 공정하며,
정의스롭게 행해져야만
그 조직체속에구성원은
퇴직후에도
그 조직을 영원히
사랑하고 잊지 못할 것이다!
재직당시/ 상업은행 직원 인사에 운없었고/
불공정 차별 당했던
피터제갈은 오늘도 억울해
먼 북녘 하늘 쳐다보고
한시름 하고/ 글/ 마감한다!
광화문 지점에서
몸서리치게 지점을
운영했던
박종칠행우/
당시 행적들에 대해서
다음 편에 올립니다
기대하십시요!
■ 글쓴이: 행우/제갈종한
행번:19671201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거주
작성자: 피터 제갈량....
● 사진설명:
1971년/육군
101보충대 /경리과
근무당시/ 경리장교
윤기하 대위와 함께///
첫댓글 1967년
12월2일
입행동기 7명과 함께
서울신설동지점에
첫 빌령받고 /
장장 3년 7개월간 혼자
남아서
말뚝박고
독박쓰고
근무한바/
본건은
필히
인사부가
그 이유를
해명해
주어야한
다/
그당시
직원들 한점포 최장 2년 체류 근무가
상례였다/
첫 단추부터
나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다행스럽게/
군입대로
현찰과대
보유점포
신설동을
벗어날수
있었다!
에라이//////
인사부여~~~~
지금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동우회카페에
당시
실존해 있는
인사부출신
계시면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눔해
주기길
갈망한다///
왜/
제갈종한
행우는
내 의지완
상관없이
신설동점포에서
3년 7개월을 장기 근무해야
했는지 매우 매우 궁금하다!!!
이런/ 인사패악을
저질렀던
상업은행
인사부가
오늘날까지
저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