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칠한 무덤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강론>(2023. 8. 30. 수)
(마태 23,27-32)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마태 23,27-32).”
무덤에 회칠을 하는 것은, 그것이 무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덤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이고,
사람들이 무덤이라는 것을 모르고 접촉했다가 부정 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본래의 의도를 생각하면,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은
위선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관습을 모르는 이방인들이라면, 그것이
무덤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하얗게 회칠한 모습만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만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을 가리켜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런 이방인들을 기준으로 해서 표현하신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에서,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때 하신 말씀이 연상됩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마태 21,13).”
사람들은 건물의 겉모습만 보면서, 성전이 거룩하고 장엄하다는
생각만 하지만(마르 13,1),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셨고, 그곳이 ‘강도들의 소굴’로
변질되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장엄한 건물들이 모두
허물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마태 24,2).
당시의 성전은 글자 그대로 ‘회칠한 무덤’이었을 뿐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건물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성전을 잘 짓는 것보다 교회답게 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의 ‘거룩함’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를 구경하러 가는 관광객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들어가서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 ‘삶’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운전할 때의 모습을 하나의 예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속하는 경찰이 있고, 감시 카메라가 있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교통 법규를 잘 지키면서도,
경찰도 없고, 카메라도 없고, 보는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 위선이고, 회칠한 무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늘 지켜보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을 ‘감시자’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늘 지켜보시는 것은 ‘감시’가 아니라
‘보호’이고, ‘사랑’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사랑과 보호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이니까 위선자를 위선자로
바로 알아보시고 꾸짖으셨지만, 우리는 남의 속을 모릅니다.
성인이 아닌데도 겉모습만 보고서 성인이라고 떠받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위선자가 아닌데도 위선자라고
함부로 비난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우리는 남의 위선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하는 나의 행동과
보는 사람들이 없을 때 하는 나의 행동은 같은가? 다른가?”
예수님 말씀에서,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옛날의 예언자들과 의인들을
공경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옛날에 죽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의 무덤을 만들고
꾸미는 일을 잘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
자기들은 옛날의 성인들을 공경한다고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은 거짓, 즉 위선이었습니다.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처럼, 그들도
세례자 요한을 죽였고, 예수님과 사도들을 박해하고 있고,
이제 곧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라는 말씀은,
“그 아비에 그 자식이다.”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라는 말씀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너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것을
행함으로써 조상들의 죄를 완전히 채워라.”이고,
이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여서
조상들의 죄를 가득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역설법’을 사용하신 말씀입니다.>
죄가 가득 차면 하느님의 심판과 벌이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싶다면 조상들이
덜 채운 죄를 완전히 채워라.” 라는 말씀이 되는데,
사실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싶지 않다면, 조상들이 했던
그런 짓은 하지 마라.”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사랑과 보호에 응답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