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믿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은혜이고 복이며 능력인지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인 것입니다..
실제로 성전 미문에서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베드로를 통한 구주 예수님 이름의 선포 한 번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 사건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원론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이름 한 번에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만큼의 구원과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이, 진정 그렇듯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만큼의 역사가 함께 하며 약속되어 있고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의 본문에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는 그들 또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 것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사실 오늘날의 우리들과 모든 것이 같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고..
특히 아래 본문에서의 야곱과 같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상징과 계시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었으며,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함과 함께 살아 있고 깨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믿음이 될 수 있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아래 본문에서의 믿음의 선조인 야곱만 하더라도 그와 같은 방법과 통로를 통해 어쨌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인데..
더 나아가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은 것일 수는 없는 것으로, 곧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와 상징과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아래와 같은 희생 제사와 같은 방법과 통로들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소원하며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볼 때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대략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어 온갖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들,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들을 보고 누리며 맛볼 수 있게 하신 것일 뿐 아니라 더 분명하고 또렷하며 상세하게 증거된 사복음서 및 모든 신약의 말씀들, 아울러 구약의 말씀들까지 이어지고 합해져서 더욱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명료하게 알 수 있게 된 오신 메시야이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의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실제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 것일 뿐 아니라..
그 어디서든, 그 어떤 상태에서든,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라면 그 누구라도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의지할 수 있으며, 특히 피 제사나 희생 제물 등이 없이도 바로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그 이름에 약속된 은혜와 능력과 복들이, 직접적, 실제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인한 실제와 경험과 역사들이 결코 작을 수 없는 것이며, 조금만 통찰해 봐도 상상 이상의 것들임이 아닐 수 없는 실제인 것입니다..
다만 성전 미문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베드로를 통한 구주 예수님 이름의 선포 한 번으로 낫게 됨에 있어서 바로 그때 당시의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직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하고 맹세까지 했던 상태의 베드로가 아닌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모하고 증거하고 외침에 있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이었던 것임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결코 아무나를 통해서나,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곧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어느 정도로 죄악들과 싸우며 얼마나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느냐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직결되며 절대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 인생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구주 예수님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또한 그 이름 가운데 약속되시어 모든 실제와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더 나아가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창세기46:1~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3월 23일(토)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