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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경고, 국민에게 ‘똥물’ 권력에 ‘충성’ | ||
국민에게 경고장 날리는 경찰의 버르장머리 | ||
육근성 | 2013-09-27 13: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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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경찰청장은 송파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을 서면으로 공식 경고를 했다. 전날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권 과장은 25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양심 증언’과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소회를 털어 놓은 바 있다.
내부규정으로 진실을 덮겠다?
권 과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발단이 된 ‘국정원 댓글녀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다. 그동안 줄곧 경찰 수뇌부로부터 축소 수사 외압이 있었으며, 대선 3일 전에 있었던 경찰의 중간수사발표는 수뇌부가 모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해 네티즌들로부터 ‘힐링 경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서면 경고한 이유가 뭘까. 서울경찰청은 내부 규정을 내세웠다. 경찰관이 언론과 공식 접촉할 때에는 규정상 상관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보고 없이 인터뷰에 응했기 때문에 조직 기강에 문제가 될 수 있어 경고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참으로 군색하고 속 보이는 해명이다. ‘진실’이 부담스러우니 진실을 말하는 입을 봉하겠다는 수작이다.
수뇌부 비위 맞추는 인터뷰였어도 경고장 날렸을까
뒤집어 생각해보자. 권 과장이 경찰수뇌부가 바라는 대로 ‘축소 수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수사였다’는 취지로 언론 인터뷰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래도 보고 없이 인터뷰했다고 경고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경고는커녕 조용히 불러 크게 칭찬하고 승진과 영전이라는 선물을 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경찰청이 ‘내부규정’을 진실을 막고 거짓을 은폐하는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권 과장이 대체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무슨 얘기를 했기에 김정석 서울경찰청장이 그 다음날 즉각 경고장을 날린 걸까. 인터뷰에서 권 과장이 한 발언을 추려보았다.
양심과 정의, 명예와 자존감... 감동적인 ‘권은희 인터뷰’
▲“만약 12월 1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감지한 서울경찰청의 의도를 12일 김 전 청장(김용판)의 전화(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압력)를 받았을 때 알았다면 영장신청을 강행했을 것이다.”
▲“지난 1월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외압 때문이었다.”
▲“‘오늘의 유머’ 운영자 수사자료를 넘겨주려 해도 경찰이 받지 않으려 했으며 ‘경찰 상부에서 수사 확대를 막았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다.”
▲“수사 자료를 받는데 일주일 이상 걸려 수사가 늦어졌고, 소환에 불응하는 중요 참고인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지난 4월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언론에 공개한 이유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말할 절차도 없고, 이야기하도록 놔두지도 않는다. 3월 중순 서울경찰청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하려고 했는데 그 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경찰정창 인사(권 과장은 수서서에서 송파서로 전보됨)가 나면서 기회를 잃었다.”
▲“서울경찰청의 부당함을 밝히지 않고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외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부당함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수사과장으로서 직원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고, 조직에 대한 불신이 커져 괴로웠다.”
▲“(국정조사에 나와 ‘대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라고 증언한 것과 관련해) 개인이 아니라 수사 책임자의 신분으로 말한 것이다. 법률 지식과 축적된 경험에 의한 것이며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경찰 측 증인들이 권 과장과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증언의 신빙성은 재판부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부당한 것이 금세 드러나는 시대다. 거기에 희망을 건다.”
<'국민 힐링 수사관'에게 입 다물라고 경고장 날린 김정석 서울경찰청장>
국민에게는 비열한 모습, 오직 권력에게 잘 보이려는 서울청
경찰의 명예와 수사관으로서의 자존감을 걸고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발언들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과 상부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소신과 양심을 지키려는 권 과장의 결연한 의지가 곳곳에서 배어난다.
12.16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허위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진실을 은폐하려고 허둥대는 경찰수뇌부의 모습이 추하기 짝이 없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는 비열한 모습 보여도 상관없고, 단지 권력을 쥔 청와대에게 잘 보이면 그만이라는 건가.
경찰 수뇌부가 권 과장이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렇게 황당한 경고장을 날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권 과장에게 경고장 보낸 것을 크게 반길 곳은 국정원 부정선거로 곤경에 처해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뿐이다.
국민에게 경고장 날리는 경찰의 버르장머리
국민들은 권 과장의 ‘양심과 정의’를 사랑한다. 때문에 ‘권은희 경고장’은 경찰의 국민에 대한 경고장이나 다름없다. 거짓과 술수를 숨기기 위해 경찰이 국민에게 경고하는 이 따위 버르장머리가 통할 성 싶은가. 어림도 없다.
서울경찰청장이 누구기에 권 과장과 권 과장을 아끼는 국민들에게 몹쓸 짓을 한 걸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김정석 청장 그 또한 영남출신이다. 경찰청 차장이었다가 김용판 전 청장 후임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서울청장으로 옮길 때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프로필 가운데 눈에 띠는 게 있다. ‘대구-경북’ 통이라는 점이다. 경북청 수사과장, 경북청 청문감사관, 대구청 차장, 경북청장 등 태반을 대구경북 지역에서 근무했다.
서울청장, 누군가 보니 ‘역시나’
이런 인연 때문일까. 2010년 1월 김 청장은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대통령실 치안비서관에 보해진다. 경북세가 판을 쳤던 MB정권 때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요직을 꿰찬다.
그해 12월 경북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가 경찰청 기획조정관을 거쳐 치안정감으로 승진하며 2012년 5월 경찰청 차장에 임명된다. '대구경북통 정부'인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2013년 3월 서울경찰청장으로 옮겨 앉았다.
권 과장이 ‘대구경북통’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벼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정의와 양심 사랑하는 국민에게 똥물 끼얹다
‘대구경북통’ 서울청장으로서는 제 휘하에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과 경찰의 축소 수사가 사실이라며 양심과 정의를 외치는 권 과장 같은 간부직원이 있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다.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김정석 서울청장이 권 과장에게 경고장을 날린 것은 정의와 양심을 사랑하는 국민들을 향해 오물을 끼얹은 거나 다름없다.
권 과장과 권 과장을 아끼는 태반의 국민에게 똥물을 뿌려서라도 ‘대구경북통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은 서울청장의 ‘충정심’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