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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7대 고도(古都)의 하나로,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도시
동주(東周)이후 무려 9개 왕조가 낙양(洛陽)을 수도로 발전
특히, 후한(後漢), 위(魏), 서진(西晋), 북위(北魏), 수(隨), 당(唐)으로 이어지는 500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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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마니아라면 '낙양성'으로 기억할 낙양(洛陽)은 당나라 때 정치적 수도였던 시안과 함께
경제/문화의 고도로 사상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까질 것 같지 않던 낙양의 홍등은 당나라가 멸망하면서 급속도로 쇠퇴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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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龍門石窟)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다퉁의 운강석굴(雲崗石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
불교가 중국에 뿌리를 내리던 492년 처음 조성된 용문석굴은 수/당을거쳐 북송 때까지 공사가 이어졌다.
400년간 건설된 석굴의 총 길이는 약 1km로 2,345개의 석굴과 14만 2,289개의 불상이 새겨져있다.
용문석굴은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조각이 많기로 유명
불교뿐 아니라 당시의 생활상, 풍습 심지어는 의학적인 내용까지 있을 정도
석굴은 북위와 당나라시대에 집중적으로 조성
이 두 시기에 지어진 석굴이 전체의 90%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꼼꼼히 보면 하루도 모자라고 주요 동굴만 둘러봐도 2시간 가량 소요된다.
주요동굴: 빈양삼동, 만불동, 연화동, 봉선사동, 약방동, 고양동 등이 있다




봉선사동(奉先寺洞)
용문석굴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
가운데 위치한 노사나불은 용문석굴의 상징
전장 17m, 불상 귀의 길이만 1.9m
노사나불의 좌우에는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사천왕상(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힘듦)

용문석굴 현판

만불동

만불동(萬佛洞)
당나라 시대의 석굴
1만 5000여 개의 작은 불상이 벽면을 가득 채움
불상 표정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불상의 크기는 3cm

만불동

연화동(蓮花洞)
북위시대의 석굴로 천장의 아름다운 연꽃조각때문에 연화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존불은 6m 높이의 석가모니불로, 뒤로 돌아가면 2cm의 초미니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천장의 연꽃 조각
관림(關林)
공자와 함께 중국의 2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삼국시대의 무장 관우의 묘
관우는 <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로 오나라 여몽의 계략에 빠져 목이 잘린다.
유비의 복수를 두려워한 오나라가 관우의 목을 위나라로 보내버리자 음모를 간파한 위나라의 조조는 관우의 목에 나무로 된
몸을 조각해 후하게 장사를 치러준다. 이때문에 낙양 관림묘에는 관우의 머리만 묻혀있다
현재 관림묘는 모두 명대의 건물로 궁전 건축양식을 띤다.
긴 화랑을 따라 무루, 산문, 의문, 배전, 이전, 삼전까지 사당을 구성하고, 삼전 뒤에 관우의 무덤이 있다.
음력 1월 13일은 관우의 생일로 이 때 관우숭배 의식이나 행사가 다양하다

관우의 형상

관림의 입구 관우 형상

관림 내 관우 신전이라고 해야하나..


**무덤의 등급:
철저한 계급 사회였던 중국은 무덤을 부르는 호칭도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다르다
일반 백성의 무덤은 분(墳)
왕후의 무덤은 총(塚)
황제의 무덤은 능(陵)
성인의 무덤은 림(林)- 중국에 단 두개의 있다
백마사(白馬寺)
중국 최초의 불교 상원으로 후한 때인 68년에 창건
중국의 불교 전래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후한의 명제가 꿈속에서 거대한 사람을 보았는데, 정수리에서 빛이 나고 온몸이 금색이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에 놀란 명제는 한나라 제일의 박사인 부의에게 해몽을 부탁한다.
'허공을 날아다니고 금빛을 발하는 신은 천축국의 득도사 부처일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명제는 즉시
채옹을 인도로 보내서 불교를 받아들이려한다.
채옹이 인도로 가던 도중 마침 중국으로 향하던 두명의 인도 고승을 만나는데, 최초의 중국어 불경을
편찬한 축법란과 가섭마가 바로 그들이다.)
백마사라는 이름은 두 인도 스님이 경전을 백마의 등에 싣고 왔기 때문에 붙여졌다

백마사 입구의 백마의 형상

백마사 들어가서

백마사 내 향 피우는 곳
이 외에도 낙양에는 당나라를 대표하는 3대 시인 중 하나인 향산거사 백거이의 무덤이 있는 백원(白圓),
3,000년 전 주나라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 세운 복합 위락공원인 왕성공원(王城公圓),
1958년에 세워진 낙양 시립박물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