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들이
우리 교사들의 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요즈음 인터넷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는
학생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교사와 학교는
학생들의 주적(?)으로 규정되고 있어서
교사인 나는 어쩔 수 없이 학생과 적대관계에 놓이고 말았다.
교권신수설- 교실을 지배하는 교사의 권리는 하늘이 내려 준 것이라는 무서운 주장.
교칙과 함께 선생들의 강력한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이론이다.
절대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이 이론을 통해 교실이 왜 신성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학생대백과 ㄱ편>
학생대백과에 나오는 해석이다.
인터넷에서 청소년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학생대백과를 통해서 청소년들은
일종의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교무실- 학교를 주름잡는 선생이란 무리들의 소굴.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여
냉방시설부터 난방시설까지 없는 것이 없다. -<학생대백과 ㄱ편>
‘선생이란 무리들의 소굴’이란 표현에 묻어있는 정서를 분석해보면
그 적대감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가 감을 잡을 수 있다.
교문1- 교내의 불순분자들을 걸러내는 공간. 보통 학생부에서 파견된 선생과
그 부하들인 선도부들이 문을 지킨다. 각 학교마다 학생부장이라는
최고의 수문장이 한 명씩 존재한다.-<학생대백과 ㄱ편>
같은 학생인 ‘선도부’를 ‘선생들의 부하’라고 명시하여
적대관계인 교사들 편에 선 선도부의 역할을
아예 배신행위로 규정짓고 있다.
교생- 교사 예비생으로 경험치가 적어 레벨이 낮다.
이들은 처음엔 미래의 꿈나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꿈과 열정으로 불타오르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현실을 인식하여 무기력해지거나 학생들을 원수로 삼게 된다.
<학생대백과 ㄱ편>
심지어 교생마저
‘학생들을 원수로 삼게 될’ 예비적대집단으로 분류하고 있다.
단소- 대나무 재질로 된 피리. 원래는 대나무 재질이여야 하지만
플라스틱 재질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재질이든 간에 모양과 크기가
매우 몽둥이로 적합하여 악기로 쓰지도 않으면서 손에 쥐고 다니는 선생을 볼 수 있다.
-<학생대백과 ㄷ편>
대걸레- 힘든 일은 빗자루에 떠넘기고 자신은 유유자적하며 바닥을 활보하는 물체.
물을 매우 좋아하여 날마다 물을 먹지만 그 때문에 몸이 더러워지고
탈모 증상이 생겨 결국 죽게 된다. 죽어서는 몽둥이를 남긴다. -<학생대백과 ㄷ편>
학생대백과 ㄷ편에 난데없는 ‘단소’와 ‘대걸레’가 등장한다.
그 수많은 학교의 교구나 용구 중에서
유독 단소와 대걸레가 선정된 까닭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이 체벌도구로 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단소와 대걸레는 교사의 또 다른 적대적 이미지이다.
선생님-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많고 고함도 잘 지르지만
부모님과 비슷한 느낌을 주며 어른 되면 소주한잔 하고픈 분. -<학생대백과 ㅅ편>
담임- 월급 조금 더 받고 마흔 명의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
까닭에 괜히 종례를 길게 끌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등의 정신 질환을 보이기도.
-<학생대백과 ㄷ편>
그러나 ‘선생님’과 ‘담임’을
‘소주 한 잔 하고픈 분’, ‘불쌍한 존재’ 등으로 묘사하여
불구대천의 경지로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압수- 크게 수업시간 내의 압수와 외의 압수로 나뉜다. 수업시간 내의 압수는
선생들의 공짜 핸드폰 사용을 돕는다. 수업 시간 외의 압수는 주로
라스베가스(도박판)를 덮치는 경우 이뤄지는데 이 경우 생기는 부수입 덕택에
도박 검거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된다. -<학생대백과 ㅇ편>
단지 ‘압수’의 사전적 풀이를 통하여 학생들은
은연중 학생과 교사가 적대관계에 놓이게 된 경위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촌지- 학부모가 선생에게 바치는 선물. 촌지를 받고 열심히 일 하면 다행이다.
그런 경우는 안 받고 일 안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학생대백과 ㅊ편>
교사가 존경받지 못하는
가장 일반적인 사례이다.
학생대백과 사이트 게시판에 일부 교사가 반박문을 올렸다.
교사를 비난하는 너희들의 처신은 올바르냐의 논지였는데
즉시로 청소년 네티즌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거야말로 마치
섶을 쥐고 불구덩이로 뛰어 든 꼴이었다.
무엇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학생대백과를 편찬하도록 하였을까......
입학식- 앞으로 몇 년간 그 학교에서 겪을 재난의 서막. -<학생대백과 ㅇ편>
공교육의 절차를 한 마디로 ‘재난’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아무리 평소에 재미삼아 끄적여 놓은 낙서를 모아서
학생대백과를 편집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책으로 출판될 지경으로
호응도가 높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하나의 담론으로 이미 성장했다는 뜻이다.
전교조- 교육혁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알려진 단체. 일부 열성 전교조원은
놀기를 좋아하여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학교 밖으로 나가서 수업을 빠뜨리기도 한다.
아래에 전교조의 창립 선언문을 인용하였다. -<학생대백과 ㅈ편>
얼른 보면 이들 청소년들의 진정성이 정말로 의심이가는 대목이다.
이것을 보고
전교조를 지지하는 어떤 네티즌이
반박문을 올렸다.
그러나 그 네티즌은 밑에 이어지는 장문의
전국 교직원노동조합의 창립선언문 전문을 인용하고 있는 편집진의
속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짤막한 어휘 풀이가 주를 이루고 있는
학생대백과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는 창립선언문.
이것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암묵적으로 전교조의 지침을 알리려는 편집진의 몸짓이 아닌가.......
학생대백과 전 페이지에 걸쳐
놀라운 위트와 재치가 넘쳐난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안 낀다- 공부만 하면 폐인이 된다는 말. <속담성어편>
사면초가- 주변의 애들이 모두 잠들어서 내가 선생의 눈에 잘 띄게 되는 현상.
<속담성어편>
學而時食之不亦說乎- 배우고 또 때로 (급식을) 먹으니 KIN겁지 아니한가? <속담성어편>
그러나
학생대배과의 <시편>에 이르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입시무
원작 신경림
종이 울린다 수업이 끝났다.
차가운 형광등이 매어달린 교단
학생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가방을 매고 교문 밖으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중학생들은 PC방 담 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재수생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대학생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교실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400점도 안 나오는 시험 따위야
아예 딴 놈들에게나 맡겨두고
플스방을 거쳐 독서실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이해와 감상
입시무가 춤이라면 그 춤에는 가락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시에서 춤과 가락은 '400점도 안 나오는 시험'을 치는 학생들의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원통하고 답답한 심정의 발로(發露)이다.
수업이 시작되었다로 시작되지 않고 '수업이 끝났다'로 시작되는 것은
이 시가 학생의 자조적인 한탄과 원한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예고임을 눈치 채게 되리라.
서사적인 골격이 분명하지 않지만, 이 작품의 전개는 일정한 이야기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치열한 입시 속에서 분해되어 가는 학생의 모습을 떠올려 주는 이 시에서
학생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여러 구절에서 감지된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든지,
'교실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이러한 감정 토로는 매우 직설적이어서 산문적인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플스방을 거쳐 독서실 앞에 와 돌 때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는 표현이다.
자조와 한탄이 '신명'으로 전환되는데, 여기에는 분노의 감정이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섬뜩하게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의 비애가 그만큼 심화되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학생대백과 시편에서>
고3의 사랑 노래
원작 신경림
고3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공부가 끝나 돌아오는
가로등 밝힌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고3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성적표 오는 소리 매미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고3이라고 해서 재미를 버렸겠는가
컴퓨터 하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복합 상영관에 한 관 남았을
보고 싶던 영화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고3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고3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해와 감상
한 고3 청소년의 삶을 소재로 수능시험을 치는 이들에 대한 따뜻함 즉,
휴머니즘적인 작가의 태도가 잘 드러난 시이다.
'공부하는 기계'라는 자들이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을 가진 한 인간임을 시인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수능 때문에 이러한 인간적 감정들이 묻혀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학생대백과 시편에서>
수험생활 노래는 필자가 패러디하지 않았다.
필자의 친구가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서 본 것이라 하나
필자 이메일로 받았기에 출처를 모른다.
이 작품은 고된 수험생활을 학교 선후배간의 대화 형태로 노래하고 있다.
어떻게 교육제도가 바뀌더라도 개선되지 않는 입시현실 속에서
수험생이 겪어야 하는 고뇌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단어 외우기, 영어공부, 정부의 EBS라는 공부 외에
가족과 친구까지 모두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험생이 겪어야 하는 불행에 대한 푸념과 항거가
실제 경험한 생활 감정을 바탕으로 거리낌 없이 드러나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수험살이의 고단함과 불행에 대해 항거하는 자세가 다소 소극적이며,
결말부에서는 체념적인 태도가 엿보이는 것은,
수능점수에 대학이 결정되는 현실에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약자로서의 수험생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이 된다.
형식면에서는 각 행마다 대구와 대조, 반복과 열거 등의 기법으로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또 식구들을 새에 비유해 표현의 묘미를 더했다.
<학생대백과 시편에서>
구지가
원작자 미상
班長班長 (반장반장)
피자現也 (피자현야)
若不現也 (약불현야)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반장아 반장아
피자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이해와 감상
이 노래가 보여주는 '요구'와 '위협'의 구조는 주술적인 노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새로운 학급반장이라는 존재를 맞이하기 위한 노래이기 때문에
신고식 노래의 성격도 아울러 지닌다.
작품 성격상 서정시보다 훨씬 이전부터 불리워진 서사시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노래의 내용상 핵심은 '피자를 내 놓으라'는 것인데,
피자를 내놓는다는 것은 곧 자신이 반장으로 학생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의미한다.<학생대백과 시편에서>
이들의 재치가 놀랍기도 하지만 그보다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정서가 못내 안쓰럽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원작 안톤 슈낙
울고 있는 재수생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평균 60점의 꼬리표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황폐한 학교. 그 고궁의 벽에서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 바보!」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성적표.
성적표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미」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3번으로 OMR 밀기, 아니면 다 찍기, 아니면 당일치기였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나는 부모에게 맞았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가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 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생각나게 해 슬프게 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월드컵 중계를 하는 여름밤,
여럿이 우리나라 팀을 응원하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당신은 여전히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몸일 때.
화려하고 성대한 축제가 끝났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커플이 되어 인사를 할 때.
허구한 날을 학교 주변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봄.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의 정석.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거만한 최상위권 학생.
교과서와 참고서의 둔탁한 빛깔.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외고 다니는 이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 -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학생대백과 시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