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초목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그 존재를 드러낸다.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황홀하면서도 생글생글 피어난다. 지난 한 해 동안 가꾸고 준비한 솜씨다. 당당하게 꽃으로 차별화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아 달라고, 어떠냐고, 간드러지는가 하면 히죽히죽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다. 이 꽃은 이래서 고우며 저 꽃은 저래서 예쁘다.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대견하고 좋다. 그러나 불청객인 비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면 여린 꽃잎은 꼼짝 못 하면서 속살까지 마구 찢긴다. 그것도 부족해서 통째로 짓이긴다. 마치 무슨 분풀이라도 하는 것 같아 불안해서 얼굴 찡그려진다. 봄비에 젖던 버드내가 말간 햇살을 받는다. 시민은 가뿐한 발걸음으로 툭툭 겨울의 잔재를 털어내며 봄을 찬미한다. 풀들이 발딱 일어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공원화된 냇가의 고수부지는 누런 잔디밭에 토끼풀이 얄밉도록 파랗게 돋아나 야금야금 번져나간다. 억센 잔디도 토끼풀에는 맥을 못 추면서 잔디가 인간의 보호를 받다 보니 야성을 잃어 점점 약해지지 싶다. 잔디밭은 토끼풀에 빼앗기고 토끼풀은 잡초에 짓눌린다. 하루에도 수많은 눈길이 오고 가는데 참으로 염치 좋고 눈치라고는 없는 잡초다. 그러니까 잡초라 불림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 보다. 잔디밭에 토끼풀이 자꾸 늘어나면서 점점 잔디의 모습은 볼 수 없고 토끼풀만 남았다. 그런데 토끼풀도 얼마 못 가 잡초에 먹히고 잡초밭이 되었다. 강한 듯 약하고 약한 듯 강하게 일어서는 자연의 생존경쟁은 치열한 투혼의 쟁탈전으로 누가 마지막에 웃는지 관심사다. 꽃잎은 바닥에 나뒹굴면서도 입가에 맺힌 잔잔한 미소를 지우지 못한다. “꽃이 져야 새싹이 돋고 열매를 맺는답니다.” 저리 고운 마음씨인데 가슴이 찡하다. 핼쑥해진 나무는 새싹을 힘껏 밀어 올린다. 비바람에 지는 아픔을 안고 열매를 맺는 기쁨마저도 빼앗겼지 싶다. 오늘은 날씨가 심통을 부려서 야속하리만치 하늘이 더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