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하나밖에 없던 방송국 KBS가
희곡을 모집할 때 그 입선자 명단에 박창오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곧 노래를 부를때는 진방남이고
노래 가사를 쓸때는 반야월이었던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에서 벗어 난지 얼마 안 되어 지금처럼 작가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기성인을
포함해서 누구 던지 작품을 출품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작품이
들어와 엄선을 거쳐 다섯 편의 입선작이 나왔습니다. 50년대 6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인 방송 드라마 작가들이 그때 희곡공모에서
입선했습니다. 1등 김희창의 꿈의 공덕, 2등 최요안의
세뱃돈, 3등 조남사의 큰 아버지의 스승과
함께 박창오의 허생원이었습니다.
진방남 (반야월, 본명 박창오)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
노래를 부를 때는 진방남이고 노래 가사를 쓸 때는
반야월이라는 예명을 많이 썼지만 본명은 박창오였습니다.
박창오는 작사, 작곡, 또 노래를 직접 불렀고 각종 문예작품을
쓰면서 그야말로 전천후 예술인이었습니다. 방송국, 레코드사,
잡지, 신문 등에 글이나 노래를 비롯한 작품을 발표 할 때는 이름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의 예명은 유난히도 많았습니다.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백구몽 등은 박창오의 또 다른 이름들입니다.
활동영역이 넓고 다양했던 만큼 춘천의 소양강 처녀 비를 비롯해서
전국 여러 곳에 님을 기념하는 碑도 많습니다. KBS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10분부터 50분간에 걸쳐 방송되는 한국 현대사 증언 TV자서전에는 한국
가요사를 대표하는 두 분이 각각 2회에 걸쳐 가요 현대사를 증언 해 주셨습니다.
진방남, 손석우 두 선생님의 각각 2회 100분간에 걸쳐 말씀 하시는 여러 얘기를
들었습니다. 진방남선생님이 1917년생이고 손석우 선생님이 1920년생이니 90이
훌쩍 넘으셨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말씀 하시는 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노래 앞부분에 나온 해설 멘트는
진방남선생님이 방송할 때의 설명입니다.
듣고 계시는 「불효자는 웁니다.」에 관한
얘기도 있었습니다. 1937년 양복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중 태평레코드사에서 전국가요음악 콩쿠르가 있어
여기서 1등으로 당선돼 가수가 되었고 곧이어 1938년 「불효자는
웁니다.」 를 불러 사람들의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진방남이
「불효자는 웁니다.」레코드 녹음을 위해서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가
세상을 떠, 자신이 말 할 수 없는 불효자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한 없이 눈물
지었다. 고 하셨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이 노래는 선생님 자신을
노래 한 것이자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노래로
길이길이 불려 집니다. 재일동포들이 고국을 방문 했을 때
영화배우 김희갑이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는 얘기는 길이 잊히지 않습니다.
다음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얘기가 더 있습니다.
동영상, 진방남의 그때 그노래 마상일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639
노래 산장의 여인과 반야월, 이재호, 권혜경
http://blog.daum.net/jc21th/17781187
불효자는 웁니다.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진방남 노래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셔서
이국의 우는 자식 내 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어푸러져 한없이 웁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진방남 불효자는 웁니다.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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