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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창작 글방 대구 둔산동 옻골
石岡 박윤호 추천 0 조회 135 17.11.18 07:3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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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11.18 09:38

    첫댓글 좋은 글에 어울리지 않은 댓글을 달아봅니다-------
    요즈음 정권을 탈취하고 청와대에 입성한 문패거리 주사파가ㅡ '6·25때는 공비들이 이 집을 불 지르자고 했다' 를ㅡ copt하여 보수를 완전 박살내고 있군요
    대한민국 국민들이ㅡ '그 집 어른이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데' 와 같이ㅡㅡㅡ'대한민국의 보수들이 어떻게 하여, 우리나라를,이렇게 잘 살도록 했는데' 라며 들고 일어나야 하는데--------

  • 17.11.18 18:10

    보본당 2칸 대청위의 양쪽으로 달린 문짝은 방 천정을 다락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문짝을 내려서 펼치면
    대청을 방 처럼 사용할수 있게 한것이지요 옛날 사대부 양반집에는 그런 문짝이 달린집이 많았답니다
    그 당시 감영의 노비들을 관노라고 했지요. 감영에 기생도 속해 있었는데 관기라는 것이고...
    관노는 사노((개인집의 노비)와 다른점은 멸문지화를 당하면 친가는 물론 외가 처족까지
    노비를 만들어서 소위 삼족을 멸한다는 말이지요
    내 외가가 경주 최씨 집안이고 몇 대를 대구에서 살아 왔기에 그 집을 좀 압니다

  • 작성자 17.11.18 17:28

    와운님 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원문에다 실었습니다

    그런 뜻을 미쳐 몰랐습니다 의문을 다음에 방문하여 여쭈워 볼까 합니다

  • 17.11.18 18:12

    내 외할어버지는 대구 수동에 사셨고 내가 중학교 다닐때 까지도 그 집의 일부분이 있었지요
    할아버지가 말을 타실때 사용했다는 마대석도 골목에 놓여 있었고 소위 아흔아홉칸 집이라는 것인데
    꼭 아흔 아홉칸이어서가 아니라 사대부의 집은 아흔아홉칸이상 지어서는 않되었기에 큰 양반집을
    그렇게 불렀답니다
    약전골목 제일예배당 비스듬히 뒸쪽이랄까 옛날 희도학교쪽 이었지요 내가 죽포선생님 회상기를 쓸때
    장택상씨가 내 이모부님이랑 처남매부 지간이라고 했었는데 장택상씨 아버지가 영남관찰사를 지냈답니다
    어머님생각, 외갓집생각, 넋을놓고 상념에 잠겨 있는데... 좋은 글 감사 합니다

  • 17.11.18 18:39

    내 경북중학교 1 학년때 내 짝이었던 친구가 이현보라는 친구였는데 집이 동촌 비행장뒤에 둔산동
    이었다는 기억도 있습니다 1 학년때 옛날 가교사시절 교무실로 쓰다가 본교로 이사하고 음악실과
    특활실로 사용헸던 그쪽에 새로만들었던 철봉대 앞쪽에서(이현보는 가끔 평행봉에 잘 매달렸음)
    나와 이현보 오명용, 도경 또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때 도경,오명용 이는 육군사관학교엘 가겠다고 했고
    이현보는 공군사관학교엘 가겠다고 했던적이 있었답니다 그 생각이 나서 언젠가 내가 한국카페에 처음
    연결이 되었을때 원평재님이 이현보에 대해서 답을 해 준적이 있답니다 그또한 지금은 추억일뿐...
    둔산이란 고려태조 왕건이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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