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마음도 이럴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소나기 한줄금 지나가시고
삽 한자루 둘러메고 물꼬 보러 나가듯이
백로 듬성듬성 앉은 논에 나가 물꼬 트듯이
요렇게 툭 터놓을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물꼬를 타놓아 개구리밥 섞여 흐르는 논물같이
아랫배미로 흘러야지
속에 켜켜이 쟁이고 살다보면
자꾸 벌레나 끼고 썩기나 하지
툭 타놓아서 보기 좋고 물소리도 듣기 좋게
윗배미 지나 아랫배미로
논물이 흘러 내려가듯이
요렇게 툭 타놓을 때도 있어야 하는 거라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2.11.27. -
비가 한 차례 세게 지나간 후 들녘의 일도 바빠진다. 농가에서는 물꼬를 트러 논으로 나간다. 백로가 논에 여기저기 내려앉은 것으로 보아 비는 멎었고, 들녘은 평온을 되찾았다. 농부는 물꼬를 열어서 아랫배미로 논물을 흘려보낸다. 아래로 내려가는 논물 소리가 귀에 시원하니 좋다.
시인은 논에 물꼬를 열어서 넘어 들어온 물을 나가게 하듯이 사람의 심전(心田)도 이처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도 툭 터놓을 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좁고 답답하게 옹졸하게 마음을 쓸 게 아니라 품은 것을 터놓고 말하면서 또 마음에 거리낌이 없도록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진권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이 시에서도 옥천 지방의 정겨운 말씨가 잘 살아 있다. 뿐만 아니라 소나기가 “지나가시고”라고 경어를 써서 자연에 대한 경외를 드러낸다. 시인이 시 ‘소나기 지나간 여름날’에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한 말을 하고/ 하늘이고 땅이고 따악 맞붙어서”라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