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의 계획
성경은 재미있거나 감동을 주는 책이 아니다. 재미는 소설에서 찾고, 인터넷이나 SNS에 나오는 삶의 현장 이야기에서 감동받는다. 성경은 하느님에 대해서라기보다는 내 생명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무거울 수밖에 없다. 비록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가는 게 현실이지만 각 개인에게 그의 생명은 이 지구보다 무겁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이)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고(에페 1,4)” 말한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시는(에페 1,10)”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구성원이 된 게 저 아득한 천지창조 그 이전부터 하느님이 마음에 두신 거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교회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제는 언어가 다른 이들까지 함께한다. 하느님이 천지창조 이전에 세우신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어부가 그중 좋은 것들만 수조에 넣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리는 거처럼 하느님은 마지막 날에 그렇게 하신다. 그러면 밖으로 던져진 이들은 거기에서 울며 괴로워한다(마태 13,48-50). 되돌릴 수 없고, 믿지 않은 걸 후회해도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이나 불구덩이의 고통은 아마 그런 것일 거다. 죽거나 사라져 없어지고 기억에서 지워지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고통이다.
온갖 종류의 사람이란 단지 생김새와 성격이 다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순교 역사를 보면 교우촌에 밀고자도 있었다. 그들의 밀고로 교우촌 전체가 잡혀가고 순교했다. 하느님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모든 사람을 하늘나라로 끌어모으려고 하시는데,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방해꾼들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살해했다. 하느님의 아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죄인이지만 남을 해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른 사람 대부분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저렇게 속이고 죽이고 전쟁까지 일으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악마, 마귀 이런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그런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하느님의 계획은 계속 진행 중이고, 반드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누가 하느님을 이길 수 있고 감히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막아서겠나? 예수님은 당신이 수난과 죽임을 당할 줄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그분의 십자가 희생 덕분에 우리는 모든 죄를 언제나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받는다. 하느님은 당신 나라가 꽉 차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루카 14,23). 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거름이 되고 많은 성인이 흘린 땀을 먹고 자란다. 세상이 세속화 탈종교화되면서 교회는 사라질 거라고 예상했던 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그렇다고 교회가 거룩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늘나라 계획을 세우신 분이 하느님이고, 죄인이 우글거리는 교회지만 그 안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몇몇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은 사람들을 부르신다. 십자가 길을 함께 가자고 초대하신다.
예수님, 오늘도 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릅니다. 제 노력이 하늘나라 건설에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문간이라도 좋으니 하늘나라에 있기를 바랍니다(시편 84,11). 저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은총을 베푸시고 성모님이 도와주시면 그렇게 된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슬픈 듯 평온한 어머니 얼굴에서 하늘나라 순례자의 얼굴을 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