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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카리스마 권력”의 대명사 히틀러,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창조한 “지도자 신화”와 제3제국
히틀러는 신성로마제국을 제1제국, 1871년에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통일된 독일제국을 제2제국, 자신이 수립한 나치 독일을 제3제국이라고 부르고 천 년 제국의 영속을 주장했다. 그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한 제3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낳으며 12년 4개월 만에 붕괴되었다. 이 책은 제3제국의 역사와 몰락을 1936년에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 스탈린그라드 전투, 여성상, 유대인 학살, 병사 슐라게터의 영웅화,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한다. 또한 제3제국을 분석함으로써 엄청난 참사가 인류의 미래에 남긴 교훈과 의미를 되짚어본다.
내용 소개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유례없는 참사 그 자체였다. 이러한 참사를 야기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파헤칠 때마다 우리는 인간 영혼의 깊숙한 세계를 체험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21세기의 우리가 이를 다시 분석하는 것은 마치 영혼의 구원을 위한 교훈을 찾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히틀러의 제3제국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교훈을 찾으려고 했다.
제1장에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중심으로 히틀러가 스포츠 제전을 왜곡함으로써 어떻게 독일의 국가 위상을 드높이려고 했는지를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레니 리펜슈탈 감독이 제작한 민족의 축제, 미의 축제라는 영화역사상 길이 남을 기록영화를 올림픽 왜곡에 이용했다. 또한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장이던 카를 디엠의 제안으로 사상 처음으로 성화 봉송이 시작되었다. 이렇듯 히틀러는 올림픽이라는 순수한 스포츠의 장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전 세계에 선전하는 계기로 이용했다. 제2장에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독일 제3제국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에서 살펴본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서로 경쟁자 관계의 카리스마 지도자로서 히틀러는 경쟁 상대의 이름이 들어간 도시를 장악하는 것이 독일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처음에 전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에 이르러 독일군의 진격은 난항을 겪게 되었다. 히틀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스탈린그라드 진격을 명령했으며, 그 결과 독일의 정예 전투병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가 패배를 거듭하는 중에도 스탈린그라드 전투 보도를 왜곡함으로써 독일 민중을 선동했으며, 패전을 앞두고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미화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패배의 여파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제3장은 독일 제3제국의 여성상을 고찰한다. 히틀러는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 즉 모성으로만 축소했다. 이는 결국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고 여성을 아이를 생산하는 존재로서 이용하여 아리아인의 순수혈통을 이어가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히틀러는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는 “어머니 십자 훈장”을 수여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제4장은 유대인 학살 내용을 다룬다. 히틀러가 유대인 박해를 전개한 심리적 배경과 그 학살의 역사를 살펴본다. 유대인 학살이 독일에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큰 충격을 전해줄 것이다. 제5장은 슐라게터라는 한 병사의 죽음이 제3제국 당국에 의해서 어떻게 변질되어갔는지를 전해준다. 슐라게터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이 전쟁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고 있을 1923년 뒤셀도르프 근교의 철교를 폭파했다. 그는 얼마 후에 프랑스군에 체포되었으며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당했다. 그의 독일에 대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제3제국에 의해서 영웅으로 재탄생되었다. 작가들은 그의 삶을 작품으로 노래했으며, 그의 마지막 처형 장면은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그려졌다. 제6장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 분야에 수용된 나치즘을 살펴본다. 나치즘은 모든 분야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나 모두가 나치즘을 인정했던 것은 아니다. 브레히트는 나치의 탄압으로 망명한 후에도 작품으로 제3제국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으며 반전 미술과 문학은 망명지에서 더욱 거세게 전개되었다. 제7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황을 개관한다. 종전 이후 진행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역사상 처음으로 “반인륜 범죄”를 규정하고 전쟁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물음으로써 국제법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재판과정을 통해서 나치의 재방을 막는 효과를 거두고자 했다. 독일은 이후 나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왔으며, 1990년 독일 통일로 이러한 노력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