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23. 04. 22.(토) 12:30hrs
♣ 장 소 : 서울 종로구 명륜3가 53 성균관컨벤션웨딩홀 3층
한 달 쯤 전에 1999년 포천 금주초교 4학년 때의 제자 민경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무슨 일인가 열어봤더니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청첩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민경이 결혼은 늘 걱정하던 문제여서 반가웠으나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나에게 하는 말이
“선생님, 저 결혼하면 주례 서 주실 거죠?”
“싫다. 이제 다 늙어서 멋도 없고 정신도 없어서 남 앞에 나서기 싫다!”
“안돼요. 전 지금까지 제 결혼에 주례를 다른 사람이 서게 될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할 수 없이 요즘은 주례 없는 결혼식이 많더라고 생각해 보라 하고, 내가 70세를 넘기기 전에 결혼을 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진짜 이번 결혼식에 주례를 서라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인 것이다. 70세를 넘긴 지는 몇 년이
지나긴 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런 부탁이 없다. 그래도 결혼식이 가까워 오니 불안하다.
며칠 앞두고 갑자기 찾아오거나 전화로 ‘선생님, 주례 좀...!’ 하지나 않을까 하고...!
결혼식 날은 식장을 향해 가면서 한편 누가 주례를 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도 있고, 신랑의 존경하던 분께 주례를 부탁을 했을 수도 있겠다.
막상 결혼식에 참석하여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진작 그러면 그렇다고 말 좀 해주지, 괜한 걱정을...!
아마 이번 민경이 결혼식이 내가 참석하는 마지막 제자의 결혼식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연락을 해오던 제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하지 않는 것은 민경이 처럼 꾸준히 연락을 해 오는
제자는 몇 안 되고(주로 나이 많은 제자) 어쩌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자에게서는 연락이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경이에 대한 추억은 많다. 간단히 몇 가지만 추려보면
첫째, 4학년 때 담임을 하고 있을 때부터 퇴근 후 포천 주변 산행을 많이 다녔는데 어차피 혼자 승용차를 끌고 다녔으므로
희망하는 아이가 있으면 남녀 불문하고 선착순으로 4명 정도를 태우고 다녔다. 민경이는 최고 단골 손님이었다.
한번은 민경이 혼자 따라 나섰었다. 포천 청계산을 오르는데 암릉길에 가운데가 V자로 패여 양쪽 모서리를 밟고 오르게 되었다.
갑자기 위에서부터 무슨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크기가 꽤 되는 뱀 유혈목이(=화사)가 바위 사이 아래로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나야 그까짓 뱀 무서울 것이 없건만 내 밑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는데 민경이가 걱정되어 “야!”하고 불렀다. 민경이는 “네?”하며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는데, 뱀은 그 사이 민경이 아래로 저만치 지나가 버렸다.
내가 한숨을 푹 쉬며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민경이는 왜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투정이다.
나는 “응, 힘들지 않느냐고...!” 하고 딴청을 피웠다.
나중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그런데 왜 안 알려 줬냐고 나를 마구 때린다.
나는 "아퍼 죽겄어 이놈아, 살살 좀 때려!" 하고 장난으로 넘어 갔지만, 사실 그때 민경이가 뱀을 보았거나 내가 ‘야, 뱀!’하고
소리쳤다면 민경이는 급경사 바윗길에서 놀라 추락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나는 아이들하고 스킨쉽이 많은 편이다. 이것이 말썽을 일으켰다. 어느 아이 학부모가 자모회장에게 내가
요즘말로 ‘성추행’을 했다고 말을 해서 학교에 찾아와 교장선생님에게 얘기를 하고 며칠간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조사를
하게 되었다. (교사는 늘 학교폭력과 성추행의 가해자로 추궁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자교사는 더!)
나도 조심을 한다고는 했지만 전혀 자유롭지 못하고 스킨쉽을 많이 하는 이유는 이것만큼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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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세계적으로 ‘프리허그(Free Hugs) 운동'이라 하여 모르는 사람 간에도 안아주는 운동이 있었고, 더 오래 전 한번은
3학년 담임 때 여자 아이 하나가 남아서 오랫동안 청소와 정리정돈을 했다. 그 아이가 너무 예뻐서 ‘과자를 사줄까, 무엇을
해줄까?’물었더니 얼굴을 내 앞에 디밀며 요기다 뽀뽀 하나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해 주었더니 돌아갔다.
잠시 후에는 그 아이와 함께 몇 명이 교실로 되돌아왔다. 의아하여 ‘왜 집에 가지 않고 돌아왔느냐?’고 물었더니 ‘왜 얘 한테만
뽀뽀를 해 주었느냐고 우리에게도 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신뢰감이 문제다-
그 이후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긴 낮 시간 동안 아이들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입장의 교사가 아이들이 기피하지 않는다면
적당한 스킨쉽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퇴직을 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 아침에 내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앞문으로 들어오게 하여 인사를 받고 손을 한번씩
만져 보았다. 목소리와 손의 느낌으로 그 아이의 그날 기분 상태가 파악이 된다. 하교 시에는 내가 문 앞에 서고 청소 등 남아서
할일이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줄로 서서 나와 하이 파이브, 포옹, 뽀뽀 등을 남녀 불문하고 원하는 대로 해 주고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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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문제가 되었으니 그날 이후 내 교실에서 스킨쉽이 딱 금지 되었다.
결국 자모회장의 조사결과 나는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자모회장은 나를 찾아와서 '죄송하게 되었어요. 그냥 전처럼
하시던 대로 해 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번 충격파를 받으면 그렇게 쉽게 전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되돌려 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만을 품고 문제를 삼은 것은 분명한데 자모회장에게 물어도 알려주지 않아 나는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민경이가 나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왜 전처럼 우리를 대해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안 된다고 말했다. 며칠 후 민경이는 요즘 학교 다니는 재미가 없어져서 안 되겠다고 전처럼 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는 승낙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그제서야 그것은 문제없다고
하면서 신나라하며 집으로 갔는데 다음날 시무룩해져서 등교를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부모님께서 ‘그런 거야 선생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 무슨 그런 서류가 다 필요하냐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고 하시더란다! ^^;
이외에도 많지만 두 가지만 써도 이렇게 길게 되어 그만 쓴다.
이번 민경이 결혼식은 내가 그동안 보아온 몇 번의 주례 없는 결혼식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대부분 양가의 아버지들이
주례 대리를 하거나 신랑신부에게 당부하는 글을 읽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아버지들은 나서지 않았다.
신랑의 어머니는 신랑신부에게 전하는 글을 읽었고, 신부의 어머니는 축가를 불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민경이 친구의 축사였다. 본인도 즐거워야할 결혼식에 아무래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정말로 친구는 축사를 하면서 친구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 매우 섭섭했는지 차분하던 축사 분위기가 차츰 울먹울먹
거리더니 결국 눈물 콧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민경이 친구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도 그 친구처럼 울고 싶었다.
아무리 기쁘게 축하 해야할 결혼식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얼마간 지분이 있던 민경이의 사랑이 이제 완전 회수가 될 것이
뻔한데 바보가 아니라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으리오?(고로 '민경이 친구와 나는 바보가 아니다'라는 학설이 성립)
쉽고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 ‘민경아, 용석군과 새로운 인생설계 잘 하고, 타고난 대로 똑똑하고 야무지게 잘 살아라!’.
▲ 결혼식에 가기 위하여 전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걸어가던 도중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작 쌓아놓은 풍경이
이색적이어서 찍어 봄!
▲ 예식장 전경. 민경이가 성균관대를 졸업하여 여기로 식장을 정했나?
▲ '금주초등학교 제27회' 화환이 제일 앞에 눈에 띈다
▲ 스튜디오 사진
▲ 여기서 부터 결혼식 당일 현장 사진(식전 촬영)
▲ 평소 내가 알던 민경이보다 훨씬 더 예쁘네, 진짜! ^^
▲ 이제 제자의 결혼식에 가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
▲ 식장 내부
▲ 식장에서 만난 다른 옛 제자. 신부 이름은 이민경, 여제자는 김민경! 김민경은 내가 이민경이를 4학년 때 담임 하던 중
전학을 왔다. 이민경이는 예리한 편이고 김민경이는 다감한 편으로 둘을 구분하기 위하여 이민경이는 보통 때는 짠경(작은
민경이라는 뜻), 놀릴 때는 깜경(피부가 약간 어두워서), 김민경이는 큰경(크니까), 뚱경(뚱뚱한 편이라)이라고 불렀다.
큰경이는 야무진 짠경이와 달리 몸집 처럼 마음씨가 푸근한 편이었다. 박상훈이라는 남자 아이는 내가 금주초교를 떠나고 난 후
5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나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다음 해에 내가 찾아 갔을 때 마침 무슨 행사 준비로 아이들이 운동장에
있어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었는데, 아마 그때 보고 인상 깊었었나 보다. 직접 제자도 아니면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온 아이가
바로 이 젊은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 신랑 친구인 사회자의 개식 선언으로 결혼식 시작
▲ 좌-신부 이민경의 어머니, 우-신랑 이용석의 어머니 촛불 점화하러 사이좋게 나란히...
▲ 신랑의 깜짝 등장. 식장 뒤편 높은 곳에서 부터 유명 가수의 컨셉으로 갑자기 출현!
▲ 신부는 식장 전면 정 가운데가 양쪽으로 열리면서 우아하고 신비한 컨셉으로 입장
▲ 아버지 이승선님의 인도로 신랑을 향하는 신부 민경!
▲ 결혼 서약 순서
▲ 예물 교환. 농담을 좀 하자면 사실은 예물이 아니라 자유라는 몸에서 부부라는 벗기 어려운 굴레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
▲ 신랑 신부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 가는데 속마음은 어떨지? ^^
▲ 신랑의 어머니 신승옥님으로부터 당부를 듣는 두 사람
▲ 신부의 어머니 장명옥님의 축가. 신부의 어머니가 축가로 부르는 것을 나는 처음 본다.
▲▲▲ 민경이 엄마의 축가 동영상
▲ 축가를 듣고 좋아하는 두 사람
▲ 신랑 친구의 축가
▲ 민경이의 부모님
▲ 이제 99% 부부가 되어간다!
▲ 신부 친구의 축사. 결혼 당사자들은 좋아서 죽을 지경인지 몰라도 안 그런 사람도 있다. 이 친구도 민경이의
결혼이 친구 하나를 잃은 듯 축사를 하던 도중 눈물 콧물을 흘렸다. 사실은 나도 울고 싶었다! ^^;
▲▲▲ 민경이 친구 눈물의 축사
* 결혼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식장을 나와 피로연장으로 갔기 때문에 이후의 사진은 없다.
다른 뜻은 없고 나 같은 존재가 신랑 신부나 잘 아는 민경이의 부모 눈에 자꾸 띄면 큰 부담이 될 것은 자명하다.
식이 끝나기 전 얼른 자리를 뜨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피로연장에서 민경이 아빠를 잠간 마주치기는 했다!
<최근 민경이와 같이 했던 사진>
금주초교 4학년 부터 내가 찍어준 사진, 같이 찍은 사진이 100장도 훨씬 넘을 텐데, 우리 이사오면서 버리기도 했고 있어도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찾으려니 못 찾겠다.
▲ 2021. 05. 12 양재 청계산 맑은숲공원에서
▲ 2022. 07. 02 북한산 청담와폭 가는 중 쉼터에서 나의 산우들과
▲ 2022. 07. 02 북한산 청담와폭에서의 시크한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