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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몰고 다니시나 봐요. 잘 다녀오세요. 당신과 이렇게 인사말을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휴가 길에 비 오기를 바란 것처럼 들렸을까봐 당신은 미안한 듯 살짝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을 덧붙였습니다. 그 웃음의 여운이 당신을 바라다 준 그날 저녁부터 지금까지 가시지 않고 있군요.
불행히도 당신의 말처럼 저는 이번 휴가기간 동안 비를 몰고 다녔습니다. 6일간의 휴가동안 투명한 햇빛을 본 날이 하루도 안됐습니다. 온종일 흐려있거나 혹은 장맛비보다 더 거센 빗줄기가 종일 유리창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당신에게 말했던 2박3일간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잠깐 날이 개인 틈을 타 반나절 해이리에 가서 사진을 찍고 책을 읽었습니다. 몸이 아픈 후배를 집까지 바라다 주고 온 날도 있었군요. 이렇게 휴가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집에서 가까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안의 스타벅스입니다. 창 밖으로는 비와 어둠에 젖고 있는 북한산 인수봉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결국 휴가의 끝날 까지 비를 피하지 못한 셈이 되는군요. 휴가 전 당신의 인사말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제 마음의 탓이라기보다 온전히 비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혼자 민망하여 몇 분간 글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커피 한 잔을 거의 다 마셔버렸군요.
당신은 올해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휴가를 간다고 하자 어디로 가시나요? 라고 묻더군요. 변산반도로 갈 예정입니다 지난해는 어떠셨는데요? 지난해는 고흥반도로 갔다 왔죠. 훌쩍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자 당신은 부러워했습니다. 괜히 미안해져 휴가 중에 비가 와서 휴가답지만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비를 몰고 다니시나 봐요. 당신은 장난스럽게 말했고 결국 그 말대로 제 휴가는 비로 시작해 비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휴가 중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은 많이 어긋났지만 비를 핑계로 당신과 이야기를 더 이어갈 생각을 하니 손해 보는 느낌만은 아닙니다. 휴가가 끝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 한 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당신 때문에 휴가 중 비가 왔어요.” 라며 장난스럽게 당신을 책망할 겁니다. 난데없는 저의 책망에 당신은 그게 왜 제 탓이에요 라며 눈을 크게 뜬 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보여주겠지요. 여자의 웃음을 호감으로 등치시키는 남자들의 착각을 저 또한 모르지는 않지만 어차피 착각에 따른 민망함과 아픔은 제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니 당신 탓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변산반도
그 때 그곳은 저에게 별세계였습니다. 개강을 1주일 남기고 무작정 떠난 곳이 바로 변산반도였습니다. 아는 신부님의 여름휴가 길동무로 따라나섰지요. 신부님께서는 서해안 일주를 하시겠다면서 안면도를 시작으로 변산반도까지 우리 일행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이번 휴가의 목적지를 변산반도로 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 훗날 내가 차를 산다면 첫 여행지는 이곳이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변산반도를 감싸 안고 있는 30번 국도의 굽이마다 숨어있는 바다. 은빛 서해바다가 보여주는 해질녘의 풍경, 곰소만의 통통배 소리와 밤 갯벌에서 조개를 잡은 뒤 마셨던 소주 한 병. 그 한 번의 여행만으로는 변산반도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에 부족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휴가 첫 날 12년 지기 친구 녀석과 차를 몰고 변산반도로 향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하늘은 어두워지더군요. 그러나 대학시절 다짐했던 것을 실행한다는 설렘은 그 자체로도 충만했습니다. 세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 부안에 도착했고 이어 30번 국도를 타고 변산반도로 들어섰습니다. 공교롭게 그 때부터 빗줄기가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들이 낯익게 들어왔지만 내리는 빗줄기를 보니 설레던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때는 없었던 새만금 방조제에 가서 가던 길을 잠시 멈췄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삼보일배를 하고 서울까지 올라왔을 그때 시위대 분들의 모습이 잠시 떠올려지더군요.
애초 계획은 변산반도의 모항에서 낚시를 하며 일박을 한 뒤 내변산과 내소사에 올라 산내음을 맡고 광주에 있는 동창 녀석을 만난 뒤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비로 인해 말 그대로 계획으로만 끝났습니다. 비가 오는 항구의 모습은 청승맞기 그지없어 친구와 나는 고창 선운사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변산반도에서 머물까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남자 둘이 여행 온 것은 우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복분자에 장어나 구워먹자며 예정에 없던 곳으로 간 것이지요. 남자들끼리만 가도 민망하지 않을 곳이라며 의기투합을 했거든요. 선운사 입구까지 갔다가 남자 둘이 어둑한 저녁 우산을 함께 쓰고 절내를 구경하는 것 또한 청승이다 싶어 바로 절 아래 동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원 없이 복분자와 장어를 먹은 뒤 서른 둘 총각 두 명은 모텔에서 코를 골며 잤습니다. 이렇게 휴가 첫 날이 지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는 호남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렸다고 하더군요. 식당 아줌마의 말대로 징허게 비가 오는 휴가 두 번째 날을 맞이했습니다.
신혼부부 그리고 광주
고창 선운사에서 광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는 길에 군대 가기 전 떠났던 남도 여행길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었죠. 남도의 시뻘건 황토가 비에 젖어 더 선명해 보였습니다. 장사익의 봄비와 찔레꽃을 들으며 흔들리는 군내 버스를 타고 남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는 십년 후 자동차를 몰고 그 길을 다시 지날지는 생각지도 못했었지요.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은 무슨 생각에 혼자서 씨익 웃다 마냐고 타박을 하더군요. 운전을 하느라 전방을 주시했지만 머릿속에는 대학 때의 기억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광주에 도착해 결혼한 친구 녀석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2년 전에 결혼을 해 지금 9개월 된 딸과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녀석이었습니다. 동갑내기 부부인 친구 내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친구 녀석도 10년 가까이 연애 끝에 결혼을 했지요. 결혼하니까 좋은 것이 많다던 친구 와이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짝 부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허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게 우리 삶이겠지요. 서른 초반. 결혼하고 안정된 삶을 얻지 못했지만 아직 이렇게 자유로운 삶이 있으니 훌쩍 여행도 다닐 수 있는 거다. 스스로 위로를 했습니다. 친구는 광주에 놀러오면 기숙사를 싸게 얻어주겠다고 하더군요. 직장을 때려치우고 대학원으로 들어간 녀석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의 와이프 역시 행복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결혼은 먼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내 주변의 동기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 그러나 여기까지. ‘서른 즈음’의 연령대에서 너무나 많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바로 결혼이니 읽는 당신도 식상하겠지요. 결혼보다 아직 연애. 안정을 바라지 않는 대가로 그 정도는 챙길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에게 작별을 고할 때. 녀석은 다음에는 꼭 애인과 함께 오라고 당부를 하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은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를 만난 뒤 광주에 살고 있는 후배 녀석을 만나 차 한 잔을 마신 뒤 대전으로 올라왔습니다. 동행한 친구의 본가가 대전에 있어서죠. 호우경보가 내린 고속도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거세게 쏟아 부었습니다. 그간 여행은 혼자서 하는 거라고 주변에 많이 말하고 다녔지만 동행이 있는 여행길의 소중함을 대전으로 올라오며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옆에 친구가 없었으면 위험했을 순간이 여럿 있었거든요. 무사히 대전으로 올라와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계기판의 거리계가 900km 정도를 찍었더군요. 당신께 말했던 변산반도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처음으로 당신에게 그 말을
서울로 올라 온 뒤에도 날씨는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무렵에 휴가를 보내고 있는 지인들도 없어 심심하기 그지없더군요. 밀린 책이나 읽을 심산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었지만 끝까지 책장을 넘긴 책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시간을 내어주는 후배를 꾀어 내여 망원동 한강시민공원 근처에서 삼겹살을 먹고 한강 둔치에 가 맥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당신에게 우리 동네 자랑을 하며 말했던 그 곳입니다.
하루는 차를 몰고 파주의 해이리에 다녀왔습니다. 자유로를 달릴 때 잠깐 날이 개어 통일전망대 지나 차를 멈추고 사진 몇 컷을 찍었습니다. 아직 공사하는 곳이 많은 해이리는 생각보다 소음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사람 없는 풍경을 찍는 것에 아직 취미를 붙이지 못해 카메라 셔터를 많이 누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제 카메라에 관심을 가진 것을 알기에 샘플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습니다.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북하우스란 곳에 주저앉아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시 라는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물론 이 책 역시 끝까지 책장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곳의 책들을 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생기더군요.
글 쓰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 글에는 내 감정을 녹이면 안 되는 것이기에 어떤 갈증이 있었습니다. 허나 바쁜 일상은 그 갈증마저 잊게 만들지요. 이번 휴가에 얻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갈증을 되찾아 왔다는 것이지요. 그 말을 당신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 역시 남에게는 비밀이라 하며 저에게 글에 대한 속내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나의 마흔과 당신의 마흔 사이에는 그래서 둘 만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지요. 다른 만남에서 마주치지 못했던 떨림은 거기서도 비롯되었습니다.
다시 휴가의 마지막 날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3시간 정도가 지났습니다. 오늘은 휴가 마지막 날이라 그간 미뤄두었던 일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영화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기획 될 때부터 저에게 반드시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영화입니다. 바로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입니다.
많은 곳을 여행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곳을 꼽으라면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97년 가을 남도 여행길에 처음 갔던 곳이 5.18 묘역이었지요. 묘비 뒤에 있는 비문을 읽으며 눈물을 참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왜 그곳에 갔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설명할 말은 없습니다. 어떤 이유가 아닌 ‘당위’로서 그곳에 갔었기 때문이지요.
이번 휴가 길에 변산반도로 방향을 정한 이유 중에 하나가 오는 길에 광주에 들러 화려한 휴가를 그곳에서 보려 했던 개인적인 바람에서입니다. 변산반도로 떠나기 전 당신이 그곳으로 떠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거기까지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보고 온 다음 말하고 싶어서지요. 끝내 광주에서 보고 오지 못했지만. 오늘 영화를 봄으로서 어떤 부채의식을 덜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번 여름휴가는 나름대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며 자족하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이리 장황하고 두서없이 6일간의 휴가를 정리하고 글로 남긴 것이 이 순간 가장 뿌듯합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처럼 당신에게 이 글을 보여주며 인정받고 싶은 단순하고 유치한 마음을 속이지도 감추지도 않겠습니다. 그런 마음과 마주치는 일은 곤혹스럽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어렵고 힘든 일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일상은 재미가 없어지고 무의미해지고 권태로워지고 빛깔을 잃어가지요.
당신이 내 무채색의 일상에 여러 가지 빛깔을 덧칠해주고 있다는 것을 이번 휴가 길에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비를 몰고 다닌 휴가였지만 그 풍경이 마냥 잿빛이 아니었던 까닭은 거기에 있었지요. 모처럼 내 마음의 풍경은 여러 가지 색으로 물이 들었고 빛이 났으며 또 8월의 저무는 바람과 9월의 적조한 바닷가가 함께 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내일부터 다시 밥벌이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일상을 지키고 있는 당신을 볼 수 있겠지요. 당신이 휴가에 대해 물어도 잘 다녀왔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깝고도 먼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끔 서로를 보고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 하겠지요. 그렇게 머뭇거리다 인연이 어긋날 수도 있을 거구요.
다만 언젠가 한 번은 당신과 지금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저녁 늦게 카페에 앉아 문들 닫을 때까지 소소한 대화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지나가는 이야기로 내 서른 두 살의 여름휴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때 누군가 변산반도에서, 남도의 황톳길에서, 호우경보가 내린 밤의 호남고속도로에서 해이리의 북카페에서, 개성이 보이는 자유로에서, 혼자 글을 썼던 카페에서 내 마음과 함께 있었다고. 당신의 그 알듯 말듯 한 눈빛과 웃음을 간절히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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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메일, 아니 손으로 쓴 편지, 한번만 받아 봤으면 하는 소망이 문득..쿨럭.-.-
월영선생, 이곳에다 휴가기를 남기셨구만 그래ㅋㅋ 바빠 죽겠는데 이 글을 다 읽어줬으니 술이나 한번 쏴라 쏴라
와우. 멋져요
월영오빠, 나중에 책 한 권 꼭 쓰면 좋겠어요. 소설이든 에세이든... 내가 10권은 산다!ㅎㅎ ^-^ 그리고, 적극적으로!!ㅋ
잘 읽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글솜씨에 처음으로 답글 남겨봅니다. 멋지세요
월영님 어디 사시나요!! - 인근거주자
마지막 로맨티스트....ㅎ
글 진짜 잘 쓰시네요. 전업 소설가 하셔도 될 듯 싶어요. 이미 수필가나 소설가의 역량을 갖추신 거 같아요. 얼마나 많은 글을 습작해 보셨을까.
사랑한다는 고백은, 꼭 "그 말"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듯 합니다. 잠시 그녀가 되어 당신의 휴가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동안, 알 듯 말 듯한 미소, 저절로 지어졌습니다. 아름답네요, 참...
이젠 그 화살이 동종업계의 누군가에게로 꽂힌 모양이군요. 형도 참 -.-
이런 시선을 받고 있는 그녀가 부럽습니다. 글을 읽다가 문득 .. 우리 사무실에서는 나를 그런 시선으로 봐주는 사람은 없을까 싶어 뒤돌아봤는데.. 다들 유부남PD들이 가득~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