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그 산책길로
간밤 창원종합터미널에서 고현행 버스를 탔다. 일곱 시를 앞둔 시각 버스를 탔더니 좌석이 거의 채워졌다. 막차가 하나 더 남아 있는데 그 차는 표가 매진이라고 했다. 거제 경제가 힘들다고 하는데 조금 회복될 기미가 있으려나. 일요일 저녁 버스는 거제공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러 탔다. 이들은 일요일 저녁에 기숙사로 복귀해 금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가 나와 동선이 겹쳤다.
고현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연사 원룸으로 돌아왔다. 주말 이틀 불 꺼진 창이고 방이었다. 불을 켜고 방을 데웠다. 아내가 볶아준 새송이버섯은 냉장고에 두고 내일 아침밥을 지을 쌀을 씻어 불려 놓았다. 집에서 세탁해 온 와이셔츠를 달려 놓고 노트북을 켜 메일함을 살피고 뉴스를 검색했다. 텔레비전으로도 뉴스를 잠시 보다가 내일 일기 예보만 확인하고 리모컨을 눌러버렸다.
새벽녘 잠을 깨도 별스레 할 일이 없었다. 노트북을 켜 놓고 지인 블로그를 들리고 네 시가 조금 지나 전기밥솥에 전원을 눌러 두었다. 부엌에서 멸치 맛국물을 우려내는 사이 감자 껍질을 벗기고 두부를 잘라 놓았다. 땡초와 대파도 다듬어 다지고 잘랐다. 우려진 맛국물에 재료들을 넣고 된장을 두 숟가락 떠 넣어 간을 맞추었다. 고춧가루도 조금 넣어 맑은 된장국을 면하게 했다.
서안을 겸한 다과상에다 조촐한 아침 밥상을 차렸다. 기름기가 적은 찬이다 보니 설거지도 간단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세면을 하고 나도 다섯 시가 조금 지날 때였다. 베란다 건조대에 씻어 말려둔 양말을 걷어와 정리했다. 공중파 뉴스 기상캐스터가 날씨를 전했다. 아침은 쌀쌀해도 한낮에는 기온이 제법 올라갈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상태가 보통 수준이라 마음이 놓였다.
출근 채비로 겉옷으로 잠바를 껴입고 방을 나섰다. 골목을 나서니 저만치 학교가 보인다만 그쪽을 향하지 않았다. 연사삼거리로 나가니 나와 같이 원룸에 머무는 조선소 근로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녹색신호를 기다렸다. 나도 그들과 같이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들을 옥포로 가는 통근버스를 탔고 나는 연사교 방향으로 걸었다. 볼에 스친 공기가 쌀쌀하게 와 닿았다.
내가 보내는 아침 시간이 좋기로는 식전에 산책을 나갔다가 되돌아와 밥을 먹고 출근함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사는 동네에서 아침 산책을 나갈만한 적당한 코스가 없다. 마을을 비켜 오비마을로 가는 산마루가 있기는 하나 왕복하기엔 단조로운 코스다. 연초천 산책로를 따라 중곡지구 아파트까지 다녀올 수도 있으나 그 역시 단순하다. 산책 코스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사는 동네 주변 여건이 이렇다 보니 나는 식전 산책보다 식후 출근길 시간을 산책과 겸하고 있다. 원룸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면 불과 오 분 남짓 걸린다. 그래서 곧바로 학교로 향하지 않고 골목을 빠져나가 반대 방향 길로 접어든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거제대로 건너편 연사 들녘으로 나가 연초천 둑길을 빙글 둘러 걷는다. 둑길에는 인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간혹 산책을 나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햇살이 비치지 않은 들판이었다. 미세먼지가 없어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얼마 전 흡족한 비가 내려 하천엔 물이 제법 흘렀다. 왜가리 한 마리가 주변을 경계하면서 먹잇감을 찾았다. 그 주변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대개 오리들은 쌍으로 짝을 지어 놀았다. 며칠 전엔 쇠백로도 몇 마리 보였는데 어디로 파견 갔는지 자취를 감추었다.
둑길을 느긋하게 걸어 연초천 산책로 사장교에 이르렀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저만치 고현 시가 수월지구 아파트 일부가 드러났다. 내가 둘러왔던 연사마을 뒷산에는 아침 햇살이 비치길 시작했다. 연초에 둥지를 틀어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아침 출근길 날마다 걷고 걸을 연초천 둑길이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면 철마다 천변 풍광은 달라지지 싶다. 1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