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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쌍요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나쁜 사람이 나를 물들이는 것은,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 하는 것처럼
조금씩 유혹되어 허물을 익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사람이 된다.
어진 사람이 남을 물들이는 것은, 마치 향 종이로 향을 쌌던 것처럼
착함 실천하고 지혜 익혀서, 그대로 실천하면 청정해진다.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우리모두가 완전한 불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과연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도 일생을 통해 수없는 장애와 시련이 많으셨지만, 그때마다 누구에게 빌고 기도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하나 피하지 않고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며, 공평하게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해 슬기롭게 교화하셨던 삶이 더욱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여기 한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불도를 이루시고 성인이 되신후, 석가족의 다른 왕자들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 집안에서 거룩한 부처님이 나셨으니, 우리들이 이렇게 있을수는 없다. 우리가 부처님을 직접 받들도록 하자 하고는 이발사인 우팔리를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향하다가 얼마 안가서 생각을 합니다.
출가를 하면 세속의 욕락을 맛볼 수 없을 것 같으니, 출가하기 전 몇일 이라도 즐겁게 놀다가 가자 하고는 우팔리에게 자신들의 보석을 떼어서 보내고는 즐겁게 놀게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팔리는 생각을 합니다.
저렇게 존귀한 왕자님들 같은 분들이 세속의 욕락을 떠나서 출가를 한다고 하는데 나같은 천한 사람이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나도 출가를 하고 싶다 그러나 나같은 이를 부처님께서 과연 받아 주실까? 한참동안 생각을 하다가 일단 가서 말씀을 드려보자 하고는 부처님을 찾아가서 말씀을 드립니다.
"부처님, 저같은 천인(그때 당시 이발사를 천인으로 취급함.=천한사람)도 출가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에는 귀천이 있을수 없으니, 출가를 하겠다는 바른 마음만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우팔리가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출가를 합니다.
1주일뒤 마하나마, 아누룻다, 아난다, 바구왕, 킴빌라, 제바닷다 왕자등이 출가를 하고자 와서는 먼저 출가한 비구스님들께 절을 하다가 쳐다보니 자기들의 이발사였던 우필리가 끼여 있는 것을 보고는 부처님께 말을 합니다.
"부처님, 우리들은 왕자이고 우팔리는 천인입니다. 저희들은 천인인 우필리에게 절을 할 수 없습니다." 하자
우팔리도 당황을 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고, 대중 또한 당황스러움을 느낄때,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4해의 물이 바다에 들어오면 모두 한 맛을 느끼게 되듯이, 밖에서의 4성 계급(바라문 (귀족), 찰제리 (왕족), 바이샤 (평민), 수드라 (천민)이 존재해도 우리 출가문중에 들어오면 누구나 다 같은 한가지인 석씨가 되느니라.
이 한마디가 그당시 인도 전체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초지 일관 더 큰 것을 보시며 지켜 나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바라문이나 찰제리라도 살생을 하고 도둑질하며 간음을 하고 산다.이를 귀한 이라 보겠는가? 오로지 불법문중에는 귀한 종족과 천한 종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존귀함은 그 마음씀에 달려 있는 것이고, 오로지 열반의 법만이 가장 귀한것이다. 말씀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에 왕자들도 고개를 숙이고 먼저 출가한 우팔리에게 선배스님의 예로서 절을 하고 출가를 합니다.
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지금 가난한 자신의 친구가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아무렇게나 입고 찾아 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부처님의 이처럼 사람을 대하심에 인간적인 모습이 아함경에 모두 있으니 부디 꼭 읽어 보시도록 하시고 부처님을 닮아 가세요.
이보다 더 큰 사랑과 자비가 또 있겠습니까? '이로 인해 인도 사회의 평민과 천민들이 바라보는 불교는 하늘을 덮을 정도의 큰 희망이었음은 말 안해도 알것입니다.
이로 인해 똥치기 였던 니이타등도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발제왕 같은 존귀한 왕도 머리 깎고 똑같은 스님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오로지 이와같이 잘못된 제도와 습관과 업연의 인연들을 가르치기 위해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시대는 변했어도 귀천을 가림은 변하지 않았으며, 생각함에도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의 불자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수용하고 사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가 더 많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잘 알것입니다.
절이라는 성스러운 곳에서 조차 자신을 내세우거나 남을 하대하는 사람이 많고, 기도나 수행을 하면서도 부처님 말씀대로 한다는 말만 입으로 하지, 기도 하는 불자가 집에서는 가정에 식구들에게 조차 자비심이 없고, 누구를 위한 다는 기도를 한다면서 정작 나 자신의 마음 공부는 뒷전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자기가 부처님이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부처라면 절대 가족이 그리고 남이 나쁘게 보이며, 나를 괴롭힌다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의 눈에는 다 부처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제도하고 이끌어서 함께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함에도, 힘들게 한다고 해서 막말하고 짜증내며, 성격이 안맞는다 하여 이혼하고, 학대하는 것은 부처가 할 짓이 아닙니다. 입으로 경을 외우며 공이라 말하면서 그런 상황에서는 공은 안나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면 그 무슨 경을 읽고 염불하며 참선을 배운다 하리요,
배운다면 안 배운이 보다는 나아야 하며, 내가 부처라는 것을 배우고 알았으면 왜 그 부처답게 말하는 것처럼 살지는 못하는지 나로써는 이해가 안갈때가 많습니다.
난해한 경전에 시간 보내는 것보다 좀더 현실적인 공부와 수행 그리고 자비행을 가정에서 부터 직장 그리고 이 사회에 불자로서 부처님을 욕먹이지 말고 헤쳐서 극복해 나가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시절이라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인간다운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아함경을 꼭 사서 읽으시길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여러분의 행동이 부처님을 이롭게하여 가정과 세상을 평화롭게 행복하게 만들수도 있고, 아니면 지옥과 아귀 축생의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삼악도의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부디 온건한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나의 존재가 가정과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며 욕을 먹이지 않고 보살행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때라고 사료됩니다.
남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자비행을 실천할 때, 부처님께서 함박 웃음을 지으며 여러분의 인생을 최고의 값진 인생이 되도록 도울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기독교인 들이 못하는 것을 하나라도 더 해야 믿음이 없는 이들이 바라볼때 우리 불교를 정말 부처님이 위해하시구나, 나도 불교를 믿어서 저렇게 되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가정에서 부터 자비심을 가지고 가족을 돕고 이해하며, 사랑하여 은혜로운 손길로 이어져야 하며, 당연히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같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꿀먹은 벙어리 마냥 자기 종교에 대해 말한마디도 못하고는 한다는 소리가, 남과 다투기 싫어서 라는 변명아닌 변명을 해 댄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며, 이는 부처님의 가피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 불교에서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불교의 핵심은 전법입니다. 부처님이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아함경에서도 말하듯이, 전법하지 않으면 이는 불자가 아니다 라고 말하셨듯이, 이제는 정적인 것을 즐기고 자만할 시기는 지났습니다.
자꾸 전하려고 노력할 때 부처님의 증명과 또한 나의 불성의 발현을 이룰수 있습니다.
인도의 총리를 지내셨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마하트마 간디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기독교의 성경을 배우면서 감동하여 "아!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숭고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이롭겠구나" 하면서 즐게 말을 하셨는데, 인도로 돌아와서 불교를 접하면서 보니까, "기독교의 사랑이 마치 접시물이라면 부처님의 자비는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아예 비교조차 안되는구나" 하셨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중생제도에 일생을 바치셨던 부처님의 모습을 돌아보며 인도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으며 결국 성공했고 수상이 되셨으며,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당시 바라문들이 비를 청하기 위해 하늘에 천제를 지내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없이 많은 양과 소, 돼지 등 가축을 어마어마하게 죽여서 바치기 위해 제단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오로지 깨치신 부처님께서 막아서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에 이 귀한 생명들을 죽여서 도대체 어떤 이로움이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겠느냐? 이는 오직 어리석은 행동과 업만 더할 뿐 전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그 당시에도 생명은 다 같이 귀하다는 것"을 중생들에게 인식하게 하셨던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이 같이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체 모든 삶들이 다 함께 공존공영하는 것이 세상에 행복과 평화로움이 깃드는 것임을 강조한 부처님의 자비는 정말 위대하다 아니 할수 없습니다.저 또한 이러한 말씀을 접하면서 불교의 위대함 그리고 자비의 크기는 울타리 안의 사랑과는 그 차원자체가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겪고 있는 이들의 모든 아픔이 있는 곳이면 그 곳이 수천리가 되어도 그 중생들을 건지시기 위해 찾아가셔서 제도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이 같은 자비행의 적극적인 실천행을 지금 우리들이 미욱하여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따라 실천하여 세상으로 이끌지 못함이 너무 아쉽고, 또 그것이 불제자 로서 부처님께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불교는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중국선을 통해 들어와서 앉아 있다보니 우리가 그것이 맞는 줄로만 알고 한 동안 망각한 것입니다.
신라때의 원효 대사 처럼 온 나라 중생들을 위해, 그곳이 어디든 장소와 사람에 구애없이 아픔이 있는 곳이면 찾아가서 함께 나누고 돕고 불교로 이끌었습니다.
이제는 그와 같은 인연이 있어야 정말 부처님께 욕을 안먹이고, 불자다운 밥값을 하는 것이지 호구지책만 연명하려 한다면 이는 부처님도 욕먹고,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세상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없다며 욕을 먹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어느날 연못에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물에 어느 누가 돌을 던졌다고 치자 그래놓고 신이나 부처에게 빌면 과연 저 돌이 떠오르겠느냐?
옆에 있던 제자가 말하기를,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저런 것을 믿고 어리석게도 그것을 반복하고 있구나. 하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나에도 예전에 한 목사님이 지장암의 암자에 올라와서는 한다는 말이,
이 암자에다가 기도원을 지으라고 하느님께서 계시를 내리셨으니 비워달라고 말을 합니다.
하도 기가 안차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말일뿐 그것을 누가 증명하겠는냐? 하자
전에 자기가 있던 기도원 근처에 암자가 있어서 찾아가서 그 스님에게도 똑같이 말했더니 그 말에 콧방귀도 안뀌다가 산사태가 나서 암자가 떠내려 갔다면서 안믿으면 죽습니다. 합니다.
내가 말해주기를, 나는 바보가 아닌데 그런 허무 맹랑한 말을 믿지도 않을 뿐더러, 생각해보시요, 정말 당신이 믿는 하느님이 천치를 만들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왜 나같은 중을 만들었으며, 어리석게 속좁은 당신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 하느님을 욕먹게 합니까 하였더니,
그럼 천상 천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이상한 막말을 합니다.
기도 안차서 말해주길, 나는 워낙 우둔해서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하느님이든 천신이든 모든 귀신을 나는 출가하면서 부터 내 발밑에 두고 살아왔지 당신처럼 머리 위에 떠받들고는 산적이 없으니, 그런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은 본인의 교회에 가서 추종자들에게나 써먹으세요.
그리고 나같으면 자기를 욕먹이는 목사는 제일 먼저 혼줄을 내줄것이요. 당신 같은 분으로 해서 하느님과 전체의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다 욕을 먹을 것이 아니요.
정말로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신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돕고, 세상 사람을 평화롭고 안락하게 하실 태지 교회에 안오면 지옥이고, 거기에 가야 천당간다면 이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말이며, 교회안이 천당가는 구심점이라는 말인데 참 우습네요.
또한 천당은 죽어서 가는 곳이지요, 그런 곳이라면 나는 여기가 더 좋으니 당신이나얼근 빨리 죽어서 그 좋은 천당에 먼저 가세요.
멍청히 쳐다본다.
"그리고 정말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이 아니라 확실히 있으며 반드시 나중에 당신은 심판을 받을 것이요?
"그래요. 그럼 어디 그 하느님인지 뭔지가 정말 있는지 실험을 해 보십시다."
뭘 하자는 것입니까?
뭐 그리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자 내가 이제 이컵 안에다가 이 숫가락을 넣을태니, 목사님이 기도를 하셔서 하느님이 계시면 분명 기도를 들어 주셔서 이 컵안에 있는 숫가락을 꺼내 줄것이요, 안계시면 당신의 허무 맹랑한 거짓말을 한 것일태니 어디 한번 기도해 보세요."
그러자 가만히 있더니, 얼굴이 달아 올라 빨갛게 된다.
내가 말해주기를, 보세요. 나는 이처럼 금방 꺼낼수 있지요. 그런데 당신의 그 하느님인지 하는 분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꺼낼수 있을 까요?
한시간. 아님, 두시간. 아니면 전국의 목사님을 불러다가 하시든지.... 내가 얼마나 시간을 주면 꺼내주시겠습니까? 하였더니,
그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 버린다.
가는 길에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하면 나보다는 목사님이 하느님에게 먼저 벌을 받을 것이니, 부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마시고, 불쌍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큰 사랑을 펼치세요. 내가 다른 이에게 안하는 사랑을 누가 따라 주겠습니까?
그목사님이 가더니 몇일이 지나자 다시 와서는 말하기를, 스님 저 암자 뒤쪽에서 기도를 해도 됩니까? 한다.
하시고 싶으면 하세요.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일주일 동안 산에 와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전도를 하더니, 한달뒤에 교회를 접고 이사를 갔다.
우리 불자들은 최소한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는 안할 것이다.
불자라면 최소한 부처님을 욕먹이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해서도 안된다.
아무것도 안한 것이 전혀 모르거나 안배웠다면 모르지만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이 또한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남에게 이롭게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하지 않았기에 양심에 무거움을 주어 몸과 마음이 무겁게 된다.
나 하나가 모여 모두가 되어 세상을 이루듯이, 작지만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나 하나 있는 곳의 쓰레기를 치워도 그곳이 깨끗해지듯이, 아픔이 있거나 불편이 있는 곳에 힘이 되어 준다면 남도 이롭고 나도 이롭게 되어 행복을 이루게 되며 그것이 불자의 기본적인 실천 덕목이다.
그래야 믿음이 없는 이들이 그것을 통해 불교의 자비와 희생, 모범적인 행동을 받아 들일것이며, 부처님께 귀의하며 더욱 크고 평화로운 부처님의 큰 뜻이 세상을 밝게 비출 것이며, 당연히 나의 자성불 또한 그림자 없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세 황금문(데이)*
1.첫째= 참다운 말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근거없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자기가 말할 때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2.필요한 말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진실한 말이라 할지라도 필요없는 말은 안해야 한다.)
3.친절한 말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말이 온유한가? 말할 때 사랑스런 표정으로 했는가? 필요한 말이라도 친절하게 할때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
불자라면 희망을 주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랄프 바톤페리*
노인은 얼굴을 들고 큰 소리만 쳐서는 안된다. 그 대신 노인의 주름살은 풍부한 경험과 인격의 상징이라는 것을 세상에 가르쳐야 한다.
여러분의 후덕한 마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더 큰 자비로 이어져서 세상의 그늘진 곳과 아픔이 사라져 행복하고 평화롭게 이어질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금씩 마음을 내서 나아가길 기대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더운 여름, 몸의 열기가 아닌 마음의 열정이,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한 철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긴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하여 더 없는 기쁨과 행복이 되기를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지장사 주지 승현(합장)
감사합니다.. 나날이 행복한 날 되시고, 지장보살님의 가피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인연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스님 감사드립니다 늘~건강하세요 ()()()
감사합니다. 나날이 복 많이 짓는날 되시기 바라오며. 가정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법문 너무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