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만 시간 내도 잘 먹고 잘 보고 다닐 수 있는 멋진 곳이 있으니 바로 부산이다. 그래서 1년에도 몇 번 발걸음 한다. 부담 없이 짐 꾸릴 것도 없이 기차나 버스에 몸을 싣고 바닷바람이 밀려드는 부산에 내렸다. 계절마다 매번 찾아 즐겁게 먹고 돌아본 기록들, 알려 주고 싶은 곳들이 많다.
도시의 Death and Rebirth! 문화적 도시재생 면면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더 망설일 것 없이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또한 피난민들이 만들어 먹다가 부산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반 백 년 넘는 맛집들, 허영만 식객이며 백종원, 수요미식회 등이 거쳐갈 만큼 무언가 있는 맛집을 순례하는 것도 재미다.
재탄생한 문화공간, 부산 F1963
* 부산 F1963 정보
- 주소 : 부산 수영구 구락로 123번 길 20 = 망미동 475-1
- 영업 : 테라로사 9:00-21:00, 프라하993 17:00-24:00
- http://www.f1963.org/ko/
반백 년 넘은 도시 어딘가에는 이미 늙어 철거되거나 보수되어야만 하는 시설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낡은 것들은 모두 사라져야만 할까? 아니다. 과거 모습을 온전히 잘 보존하면서도 현대에 맞게 새롭게 개보수하여 '되살아난', 재생한 곳들이 있다. 부산에도 있다.
부산 F1963은 흥미진진하다. 과거 공장- Factory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1963년부터 고려제강이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곳으로, 2016년 재단장해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이용되었다. 이때 옛 것은 기능적인 새것으로 재탄생했다. 공장 지붕 받치던 나무 트러스로 방문객을 위한 벤치를 만드는 등 한마디로 재생과 친환경을 추구하는 문화공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비엔날레 이후에 모두를 위한 문화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넓은 공장 건물 속에 방문할 만한 곳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스팅 커피인 테라로사 커피, 지역 손막걸리로 단단한 팬층을 쌓은 복순도가, 수제 맥주 프라하 999가 있으며 공연장도 있고 국제갤러리도 있다. Yes24 중고서점도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어 언제라도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만한 하다.
도서관이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F1963은 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재생과 친환경을 주제로 미술, 건축, 사진, 디자인, 음악 등의 책을 전문적으로 보여 준다. 과거 와이어 공장이었던 곳이 도서관으로 변모하면서 사람들에게 책을 통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F1963의 카페 테라로사.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손몽주 작가의 와이어 설치작품이 눈길을 끌며 반겨 준다. 공간이 정말이지 호기롭다 싶게 넓다. 시원시원하게 툭 트여 있다. 기존 공장의 구조물, 설비를 이용해 꾸민 실내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진다. 오래된 철판이 커피 바와 테이블이며 당시 와이어 감전 보빈이며 발전기가 그 어느 카페와도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강릉 커피 열풍의 중심인 테라로사 커피를 여기에서 맛볼 수 있다니 참으로 좋다. 산지별로 섬세하게 개성 살려 로스팅한 커피와 매일 굽는 천연 발효빵이 있는 곳. 넓은 공간 어딘가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떨어지는 조명 아래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넘긴다. 시간이 잠시 멈추는 듯싶다.
재탄생한 생활공간, 부산 감천마을
* 부산 감천마을 정보
- 주소 : 부산 사하구 감내 2로 203 감천문화마을 = 감천동 1-14
- 개방시간 : 3-10월 9:00-18:00, 11-2월 9:00-17:00, 마을 입구 유료 공공주차장 있음
- https://www.gamcheon.or.kr/
부산'스러운' 마을로 갔다. 산이 많은 부산인 만큼 바다를 향한 산비탈을 따라 전란 당시 내려온 피난민들의 집들이 세워졌고 당시 힘겨웠던 시간을 지나 오늘까지 사람들이 살아오고 있는 역사 있는 곳들이 많다. 반백 년 넘은 도시의 옛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이 잘 남아있는 마을 중 하나가 감천문화마을이다.
경사진 산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과 그 사이 미로같이 이어지는 골목길들. 그 길을 따라 숨 몰아쉬며 올라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 여느 곳과는 다른 면면을 가지고 있는 알록달록 예쁜 마을. 부산의 인기 있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물이 달고 좋다는 뜻의 감천. 4천 여 명의 태극도 신도들이 반달고개 주변에 모여 촌락을 이룬 것이 마을의 시작이었다. 감천마을은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남다르게 재탄생한 생활공간이 되었다. 지역 예술인, 지자체, 마을 주민이 모여 마을을 꾸미고 그렸으며 길을 정비했다.
한두 해 짧게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로 끝낸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마을을 가꾸고 있다. 주민 스스로 마을을 살기 좋고 방문하기 좋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2015년에만 140만 여명이 방문하여 골목마다 보이는 흥미로운 벽화, 상점, 미술관 등을 누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다른 여행지와 다르다. 주거지 자체가 볼거리다. 혹시 나의 호기심 어린 방문이 이곳의 평화로운 시공간에 방해되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감천문화마을에 관광객이 어떤 의미일까. 알록달록한 골목을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사람들, 관광객들은 소란스럽고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들은 아닐까.
사이사이 골목 깨끗하게 청소하고 볼거리 즐길 거리 만들어 운영하는 마을 주민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조용 다니는 예의는 필수다. 그리고 감천문화마을 스탬프 지도(2000원)를 구매하는 것도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 되는 일이니, 여행 기념품 삼아 구매하는 것도 좋다.
부산 원조 국밥 하면, 부산 해운대 원조할매국밥
* 부산 해운대 원조할매국밥 정보
- 주소 :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 21번 길 27 = 해운대구 우동 612-2길
- 영업 : 24시간 연중무휴, 2인 이상 방문시 주차무료, 백종원 3대천왕 출연 맛집
- 메뉴 가격 : 소고기국밥 6000, 선지국밥 6000 등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가는 곳은 다름 아닌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다. 터미널 앞 해운대 소고기 국밥 거리는 반백 년 영업한 집들이 많다. 얇은 지갑임에도 무람없이 밥 한 끼 든든하게 먹을 만한 곳을 둘러보니 해운대 전통시장 소고기국밥거리. 버스터미널 앞 1962년 문 열었다는 원조할매국밥. 훈김 모락모락 거대한 솥단지가 날 부른다. 아직까지 문 닫지 않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들어간다. 다들 어찌나 손님을 오래 받았는지 탁자의 낡음에 세월감 잔뜩.
앉으면 알맞게 덜어먹을 빈 접시들을 주신다. 메뉴는 소고기, 선지 국밥이 전부다. 터미널 앞인 만큼 가격 저렴하다. 주문하자마자 뚝배기에 국물 한 국자 바로 담아 한소끔 부글부글 끓여서 금세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 손길. 재빠르다. 다 먹을 때까지 뚝배기가 뜨끈뜨끈하다는 점이 참 좋다. 따로 국밥으로 주문하면 밥 따로 내어 주신다. 소고기는 몇 점 없지만 무척이나 보들보들 푹 익은 소고기와 푹 무른 무와 시원한 콩나물이 더해진 시원하면서도 매콤한 국물이 좋다. 참, 벽을 둘러보는데 좋아해 마지않는 영화배우 오다기리 조가 들렀다가 맛있게 먹고 간 사인이 붙어있다. 반갑다. 은근 세계적인 우리네 맛집이라고 기억에 남긴다.
부산 돼지국밥 하면, 부산 범일동 할매국밥
* 부산 범일동 할매국밥 정보
- 주소 : 부산 동구 범일동 28-5 = 중앙대로 533번길 4
- 전화 : 051-646-6295
- 영업 : 일요일휴무, 가람주차장 30분 무료주차, 수요미식회 출연 맛집
- 메뉴 가격 : 순대국밥 5500, 내장국밥 5500, 따로국밥 6000 등
부산 토박이 지인에게 돼지국밥 맛집 딱 1곳 추천해달라고 하니 바로 여기를 꼽는다. 한 30년 다닌 곳이라고. 돼지국밥은 내 영혼의 음식이기에 기대하며 찾아들었다. 이름도 수더분하니 정감 있는 부산 할매국밥. 부산이 6.25전란 시 피난민들이 터 잡았던 곳인 만큼 이곳도 북한 출신 창업주가 그 당시부터 문 열어 대를 이어서 영업하는 집이라고.
역시 문 열고 들어가니 세월감 짙은 기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큼직한 고기를 턱턱 썰어 부글부글 끓이는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맛이 없을 수 없겠다 하며 자리 잡고 앉았다.
주문하니 부추며 고추, 김치를 빠르게 앞에 놓아 준다. 내장국밥을 주문했더니 뚝배기 가득 넉넉한 내장을 넣어 끓여 온다. 돼지국밥은 어려운 음식이라고 여긴다. 돼지 잡내가 날 수도 있고 기름기가 너무 많으면 느끼하기도 십상이다. 그러나 여기는 잡내도 없고 느끼하지도 않다.
왜 이 돼지국밥을 추천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부추 듬뿍 넣어 국물을 훌훌 넘겼다. 새우젓에 고기 몇 점 찍어 먹으니 잘 삶은 고기, 참 맛있다. 가격을 다시 본다. 이 정도 가격에 이만한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니. 길게 영업하시길 바라며 나왔다.
부산 밀면 원조하면, 부산 내호냉면
* 부산 우암동 내호냉면 정보
- 주소 : 부산 남구 우암 번영로 26번 길 17 = 우암동 189-671
- 전화 : 051-646-6195, 오후 2시 이후 아신 아파트 주차 1시간 가능
- 영업 : 10:30-20:00, 한국인의 밥상 & 허영만 식객에 나온 맛집
- 메뉴 가격 : 비빔냉면 9000(소)/10000(대), 물냉면 8000/10000, 비빔밀면 6500, 밀면 6000, 만두 5000 등
부산에서 밀면 먹을 곳도 딱 1곳 알려달라 했더니 100년 전통의 밀면집을 놓치지 말라고 귀띔한다. 시장통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우리나라에 1백여 년 문 연 집이 얼마나 될까 싶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것이라며 걸어들어갔다.
1919년에 문 열어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는, 부산 최초 밀면을 제조한 집이 바로 <내호냉면>이다. 6.25 당시 부산까지 피난 온 사람들이 북한 음식인 냉면을 메밀이 아닌 당시 수급 가능했던 미국 원조 밀가루로 만들면서 태어난 밀면. 그 뿌리라고 하는 집이다. 벽에는 3대를 잇는 주인장 얼굴들이 당당하게 붙어 있다.
보통 냉면집은 냉면을, 밀면집은 밀면을 팔지만 내호냉면은 북한식 냉면 조리법을 쓰는 냉면과 밀면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냉면에서 밀면이 태어나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집이 분명하다. 부산인 만큼 부산 음식으로 내로라하는 물밀면과 비빔밀면을 각각 한 그릇씩 주문하고 만두도 한 판 곁들였다.
수육이며 오이, 삶은 계란 반쪽 등 꾸미는 냉면의 그것과 다름없다. 넉넉하게 흘러내리는 양념장 맛이 면과 국물에 퍼진다. 양념은 많으나 맵지는 않은 편. 전분이 더해졌는지 면은 쫄깃한 편이다. 한우사골 우린 시원한 국물과 함께 별미로 맛볼만하다.
부산 음식점 1호 하면, 신흥관
* 부산 해운대 신흥관(新興館) 정보
- 주소 : 부산 해운대구 중동 1로 31-1 = 중1동 1394-32
- 전화 : 051-746-0062
- 영업 : 11:30-21:00, 월 휴무
- 메뉴 가격 : 짜장면 5000, 우동 5500, 짬뽕 7000 등
부산 해운대 거리를 걷다가 Since 뒤에 적힌 숫자를 보고 끌리듯 들어갔다. 1954년 개업한 곳으로 해운대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점이다. 노포란, 오래 자리하고 있는 곳이란 그만의 매력이 있기에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본다. 그래서 쉽게 끌려 한다.
들어가니 작은 가게에 사람들이 꽤 있다. 등을 보니 그 어느 옛 드라마 잘 사는 가정집에 꾸며 달았던 것 아닐까 싶다. 기물들이 적잖이 세월감 있게 느껴진다.
산둥성 출신 화교 부부가 세운 음식점답게 중국어가 들리는 주방과 카운터. 중국집의 기본 메뉴, 짜장면과 짬뽕을 주문했다. 간수를 넣어 반죽한 중국음식 면류는 노오란 빛을 띤다. 먹음직스럽다.
여기에 흥건하고 넉넉하게 부은 춘장 소스. 웍에 양파를 볶으면서 나온 그 특유의 달달한 맛이 좋은 짜장 소스. 입맛을 돋운다. 슥슥 면을 비빈다. 짜장면 한 그릇만큼 아주 든든하게 가성비 좋게 배 채울 수 있는 음식이 또 없다.
짬뽕에는 배추, 양파, 주키니 호박, 양배추, 부추 등 채소가 넉넉하게 들었다. 국물이 덕분에 시원하다. 칼칼하고 매콤한 기운이 잘 퍼져 있는 국물, 훌훌 마시니 속이 개운해지는 기분. 해물도 적당히 들어있다.
뜨겁고 맵쌀 한 국물이 속에 들어오니 얼굴이 발그레,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맛있는 한 끼 잘 먹었다. 부산에서 공식적으로 등록된 음식점 1호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들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