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은 선전포고이자 공격개시 나팔.
"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쌀지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에스겔23:24) 하신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이후부터 가나안 복지에 이르는 동안 주변의 이방 나라들과 민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 남은 거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폐습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꾸짖어(공격해) 정결케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폐습에 정복당하여 심령이 이방인으로 적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이 그 배신에 대한 심문권(공격권)을 주변국들에게 넘겨 주어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늘날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의 권능은 모세가 가르쳐 주신 율법의 권능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막강한 공격권(심문권), 곧 세상의 빛과 소금 노릇을 하여야 할 직분을 갖고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처럼 목숨을 걸고 세상 불신 죄인들의 악습을 공격(질책)하지 못하고, 다만 교회당 안에서만 빛과 소금으로 자처하며 육적인 천국(부귀영화)만 꿈꾸었습니다. 세상의 악습을 질책하여야 할 공격권(심문권)을 가지고도 빛과 소금 노릇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또다시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공격권(심문권)을 그들의 대적(주변국)들에게 넘겨 주십니다.
온 인류는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인입니다. 이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망의 후예들, 곧 죄인들이 온 지면에 퍼져 살고 있을 때에 최초로 육신의 목숨을 갖고 영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한 사람이 태어났으니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온 땅의 사람들은 이미 사망의 법에 걸려들어, 육신을 입고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만 진리로 알고 있는 터이라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의 도를 가르치고 전하는 예수님을 다만 단순한 종교 창시자나 사상가, 아니면 한낱 기이한 수도승 정도로만 가볍게 인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대의 국법과 기득권자들의 권위에 큰 위협이 되지 않거나 또 사회혼란에 큰 지장이 없는 선에서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한낱 기인으로 취급할 수 있었겠지만, 의외에도 그의 언행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중대한 변혁을 야기할 수 있는 요인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모든 언행이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행위를 심히 악하다고 단죄(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천태만상의 사상(이념)으로 갈라져 서로 싸울지라도, 사망과 생명의 사상만큼 철두철미하게 편이 갈라져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상(종교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왕은 악(마귀 사단)이요, 생명의 왕은 선(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치 빠른 사망의 괴수 사단이 예수님의 등장과 성공은 곧 자기의 패망과 실패임을 알고 가나안 복지의 원주민들처럼 사생결단하고 그리스도의 교훈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보호하고 방어하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앞세우고 출애굽 할 때부터 가나안 땅 거민과 천하만민들이 불안공포에 떨면서 자기들의 지역을 사수하는 것과 같이, 마귀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무후무한 생명의 공격자가 자기를 믿는 자들을 대동하고 온 땅의 인류를 잠식해 오는 것에 놀라 그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2천 여년 동안 거세게 항전하면서 쫓기다가 드디어 과학과 민주와 여론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무기와 이론과 인적 자원을 배경 삼고 지금 이 시점에서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미 인간의 선과 의와 분수와 도리를 무시하고 짓밟은 채, 오직 지혜와 기술과 능력 그 자체에다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악마(김일성 일가들)로 변하였으며, 민주주의도 이미 선악의 잣대를 버리고 손익(생사)의 잣대를 기준 삼고 죄악된 이기주의 사상을 숭상하고 있으며, 세상 여론도 이미 하나님께 긍휼을 얻을만한 인간미, 곧 순진한 인간성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마적 떼거지 같은 인권을 앞세우고 폭력으로 무장하여 노조 활동이나 펼치고, 촛불시위를 하고, 붉은사상이나 선전선동하는 완악한 패거리들로 변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와 같은 불법불의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불거져 나오는 비인간적, 비도덕적, 비윤리적 추행을 덮기 위해 그들은 또 기존에 전해 내려오는 조상들의 전통적인 무속 신앙(단군상 숭배, 토정비결, 사주, 풍수지리 등등)이나 풍습(굿, 고사(告祀), 권모술수 등등)을 민족 종교로 추켜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불을 놓고 차단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민족종교인 풍습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부강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하며,외래종교의 공격자(그리스도의 사상)들을 죽기 살기로 몰아내려고 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뜻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공격(심문권)자의 자질(빛된 행실)을 갖추었더라면, 모세가 지녔던 권능보다도 더 막강한 진리의 철장(鐵仗)으로 이런 죄악들을 쉽게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12:5) 하셨으며 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요한계시록2:26~27) 하셨으며 또,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요한계시록19:15)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격력, 곧 심문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개인과 나라와 민족이 될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은 참으로 홍해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이적보다 더 막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미 많은 영적 간첩(사단의 종)들이 침투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좌파 세력들 중에 활약하고 있는 간첩들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 간첩들은 대부분 출애굽 할 때에 같이 동행하였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같은 선전선동가들이며 또 발람과 같은 선지자들로서, 공격(심문권)자의 입장에서 믿고 듣고 지켜야 할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을 한낱 나약한 수도승들의 심신수련용 염불 정도로 비하시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비하 행위에 의해 심령이 나약해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완악한 짓을 책망하고 질책하여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지 못하고, 다만 예수님이 무슨 세상의 구세주로 당선되기 위해 출마한 입후보자인양, 만나는 죄인마다 굽실거려 저자세로 인기(표)만 얻으려 합니다. 즉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상실당한 채, 다만 죄된 인간들에게 인기를 얻어 예수님을 그들의 구세주로 당선시키려 합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을 전파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죄악으로 얼룩진 신도들로부터 받는 인기를 관리하기에 급급할 뿐, 만왕의 왕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권위와 능력과 진실은 추호라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세상의 절대적인 군주로서, 또는 세상 모든 일(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들에 대한 해결사(구세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주된 원인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권능이 미약하게 된 것은, 비기독교인들의 외부적인 적대행위보다도 기독인교인 내부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발람 같은 영적 간첩들, 곧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존의 유명 교역자들에 의해 더욱 예수님의 이미지가 한낱 종교적인 교주로서 그려지고 꾸며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용사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천지만물의 주제되신 하나님의 막강한 능력과 권위를 심령에 담고 교회 바깥에서도 세상 권세자(유명인, 지식자)들보다 더욱 당당하게 모든 죄악을 책망하고 공격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불법자들과 대결하도록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강력하심을 믿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어닥칠지도 모를 예수님의 십자가 같은 고난을 두려워하여 범죄와의 전쟁, 곧 이 세상 마귀들과의 한판 승부를 늘 회피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전사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례 요한보다 더 강경하게 세상 불의를 보고 꾸짖어 책망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류 최대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신자들이 세상 여느 종교의 수도승들과 같이 성경말씀을 다만 회막안 같은 교회당 안에서만 묵상하고 열심히 강론하는 것으로 일관할 뿐, 회막 바깥 곧 교회 바깥에서 범람하는 세상 범법자들에 대하여서는 한 말씀이라도 던져 싸워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약하고 비열한 교역자들에게 배운 평신도들도 결국 성경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여 빛과 소금의 성분으로 세상의 검은 때를 씻어내려 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장막 안에서나 바깥에서 전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나안 복지 인근 주민들에게 마치 선전포고하듯 외치고 전하였으며, 또 공격나팔 신호처럼 울려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보다 더욱 막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도 세상 죄인들을 향해 한마디도 바깥에서 큰 소리로 질책해 경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도승들은 원래 도 닦는 사람들이지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고요?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근본정신입니까?
이스라엘 거민들은 하나님이 배정해 주신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노약자와 부녀자들만 제하고 모두 목숨 걸고 여러 성읍들을 공격하여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모세 때보다 더 막강한 권능을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는 오늘날의 기독인들이 율법보다 더 강력하고 절대적인 심문권, 곧 빛된 복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상 죄악을 호되게 질책하여 그들을 공격해 이기지 못하다니... 얼마나 예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으면, 예수님이 이 시점에서 몰아쉬는 한숨과 탄식 소리를 느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하였을까? 가슴을 치고 눈물 뿌려 통회자복하여야 합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
첫댓글 이 글을 보니 그 동안 저도 마귀적인 사랑으로 나와 내 가족들을 대한 것 같아 심히 자책감이 듭니다. 좋은 대학 못 가고 돈 많이 못 번 것으로만 자책하기보다 이 카페에서 배운 '말다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해준 것에 대해 자책해야겠군요.
새롭게 수정 보완해 재등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