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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개설 대한기독문인회 카페박지현시인방시편들.hwp
2016년 9월 개설 대한기독문인회 카페
박지현시인방 시편들
(2013년 제4시집 시 20편)
1. 2월 강가에서
내게 오는 것은 모두
언어마다 무게와 깊이 넓이를 두고 온다네
봄날이 온기로 살갑게 흘러가기 전
해마다 두껍게 찾아오는 몸살 아닌 몸살
더불어 사는 새들의 합창 벌레들의 발 빠른 움직임도
그냥 떠밀려 온 것은 하나도 없었지
빙어 축제 때 쓰인 얼음 바다 그 언저리
눈 고개 썰매타기로 볼 붉어진 아이들 함성
불꽃 피우며 녹인 손바닥에 새긴 깃발
오감 열리며 쏟아지는 거대한 산 빛 강물 빛
거기 그림자 하나 서서 빈틈없이 듣고 있구나
12월 1월이 함께 몸 푸는 소리
강 밑바닥 근근이 사는 생물들 숨통 트며 트럼펫 부는 소리
이 밤도 3월 다치지 않게 온 몸으로 준비하는가 그대는
2. 소금밭에서
나의 본 얼굴은 사나 죽으나 짠 맛
소금이란 이름 걸고
맑음과 흐림 번개 폭풍 사이에서 연명해 왔지
각종 호칭도 붙여주고 별명도 때론 꿈틀거리기도 했지
태어나기 전부터 짠 내에 쩔어 녹여낸 공간 시간 속에서
내게 보여지는 구름 한 장 산맥 한 줄기도 고맙지 않았어
처음엔 탄생 자체부터 내 운명이라 여겼고
수 해가 스쳐 날아가고
내 몸뚱이는 세계로 팔려 나가며 희고 굵은 나날 메꿔갔지
나 없인 시시 분분도 살아갈 수 없다고 거센 줄 잇고 있는 현장
반짝 이벤트로 빛바랜 투정도 받아 주느냐
목 디스크 허리 관절까지 뻐근했어
물 되어 흐르고 응어리 지면 고체로 녹여나오고
내 안에 갇힌 힘 맨 하늘 걷어내고 뛰쳐 올랐지
배 밑창부터 차오른
기둥으로 밭둑 언덕으로 서고 공터로 나앉으며
나를 폭폭 익혀 달아오른
외마디 쓴 소리였어라
바다는 이미 강물 여울 내려다 보며
한 말씀 건져 내고 듬성듬성 우단 짜내며
한 소리 치고 자정도 넘긴 검붉은 기억으로 촉촉히 차있었네
3. 간이역에서
사람들 눈 밖에 나버렸구나
어느 날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동화 속으로 소설책으로 밀려났느냐
너로 인해 받았던 것은 슬픔이런가
핑크빛 회색빛 뒤섞여 온통 빈 하늘 적시고
어린 날 언니와 자주 오르내린 기찻길 여행
봄날 울렁거렸던 유채꽃이랑 연산홍으로 귓속도 부풀고
여름날 가족들과 첨벙대던 물놀이 기다린 시간들
가을날에는 떠나간 연인의 눈물로 구멍 뚫린 낙엽
흰 눈 쌓인 산등성이 틈새로 역사는 얼고 녹고
네 이름자 새긴 철길 정거장 대합실마다
아직도 그 날의 기적 소리 울리는지
4. 악기에게
온통 구멍 뚫린 내 몸뚱아리
무엇으로든 채우려 발 동동 구르고
바람 들어와 잠시 머뭇거리다 빠져나가고
햇살도 이따금 찾아와 문자 보내기도 하지
요즘은 카트리나도 요동치고 베트남 열대야도
문 두드리고 돌아가네
남극이 엘리뇨 현상으로 헐떡이고
폭설로 가득 채워져 눈 돌리며
폭풍 전야 때도 거칠게 준비하지
잔잔해진 바다 기다리다 지쳐 깊은 잠 속에 빠져들면
소리내는 게 내 일상이라고 녹아 없어져야 살아난다고
담금질도 환영하는 땅속에서 솟아나는 신바람 난 작업
5.겨울 산맥
작은 목소리 내기 위해 눈밭 얼음 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겨울 산맥이여
거기 나도 하나의 악기줄 되어 연주하고 있네
잠잠하게 그대 보고 웃네 탈춤을 추네
갈비뼈 하나하나 조립되는 시간 뒤
찬서리 궂은 비 한 몸에 받고 있네
고속도로 닦을 때 한 발짝 비켜서서
제 살 깎이는 아픔 참고 참더니
살아나는 풀잎 그 위 벌레 소리 듣길 원해
그 소리 다 끌어안고 앉아 있느냐
6. 일기예보
오늘 내 마음의 일기 예보는
흐린 뒤 추적추적한 비
뭉개구름 비구름 소낙비 구름 관현악단 이루며
서툰 악기줄 앞뒤에서 툭툭 건드리네
구름에 대한 명상곡 한 줄 뽑고
바람에 대한 이미지가 퍼뜩 떠올라 숨 죽이며
하늘 리듬 타니 걸작품 그림 되고
이슬 눈 얼음에 대한 일기 주르륵 써나가니
낙엽 한 장 떨어지는 것
얼음 속 빙어 살아 퍼득이는 것
새들 날개짓하며 비행기 따라붙는 힘도
당신 간섭 없인 한 발짝도 못 가는 자연의 법칙
어느 덧 회색빛에서 맑음 헹궈 낸 기지개 켜는 빈 하늘이네
7. 육거리 시장에서
이따끔씩 구름 한 두장 얹혀 와
회오리바람 들썩거리네
육해공군 뒤섞여 햇살 껴안고 살아가는 비좁은 골목길엔
제 아이세끼들 눈에 밟혀 귓속만 푸득푸득 부어 오르고
한 귀퉁이 헐렁해진 치마폭에다 나이 깁는 것은 누군가
마디 굵은 손으로 썬 손두부랑 막국수 가닥에 김 솔솔 오르고
집에서 기른 콩나물 물뿌리개질로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주름진 네 손등 꺾여 욱신대는 굽은 허리 등이여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며 손짓 발짓하는 닭살 돋구는 푸줏간
불황에도 얼굴 표정 안 바뀌고 루미나리에 축제 빛들의 나들이
오늘따라 걸걸한 시장터에서 인정 한 줌 수 놓네
황소 개구리 몰아내자 발 부치지 못하게 우리 하루살이
8.가을 편지
누가 두 손 탁탁 틀고 달려 오는가
하늘서 가을 편지 훌렁훌렁 꽃혀 내려왔지
바지런히 논 갈아 이모작 할 때면
어김없이 누워 죽는 대파들 행진곡
볏짚은 산촌 전원마을 지붕으로 다시 태어나
올핸 검정 비닐로 패인 상처 덧씌우네
속옷 속으로 스며드는 큰바람
빛바랜 원피스 처녀 시절 기억해 내는데
변신하는 그대 중년 언어로 짜릿한 말 건져 올리네
당신 위해 소리 지를 때 노래 한 줌 통하는 지름길
성큼 몰라보게 키 큰 옥수숫대 깻잎 대 옆으로 누워서
울타리로 가뭄 타던 날 한 통의 설레는 붓글씨 되어
상큼한 바람 일렁이는 농익은 사과나무곁 사과 껍질이고 싶었어
9.가로수야
낮잠 자다가 두 눈 부릅뜬 건 누구더냐
길 건너는 마디마다 굵어진 근육 그대 가로수
지붕개량도 몇 차례 현대식으로 퍼머도 했구나
유행따라 염색과 브릿지도 구별해 넣었어
나중엔 숏커트 셋팅 퍼머 촌스런 아줌마 퍼머로
땅심 축축하게 살아있으니 외면 당해도 좋아
늦가을엔 싹뚝싹뚝 잘려가는 너 찬 바람아
가끔 심한 몸살 치레도 피하지 못하는구나
낡은 다리밑동 과적 차량에 번쩍 소리지르며 뛰어들면
폭염 강풍 한파까지 거들어도 이름값 톡톡이 하는
당신이 붙여주신 이름 석 자 가로수
기다려다오 나무와 안개 구름까지 두 손 들며 되받아쳐도
또 다시 솟구쳐 날아갈 저기 땅 시퍼렇게 살아갈거야
10. 들에서
서리 한 점 늦은 비 녹은 눈 속에서도 숨통 트이느냐
숙성된 땅 언덕에서 구석구석 따끈히 보낸 계절풍
네 손끝 발끝까지 온통 뒤엉켜 때 안 놓치고 심길 대로 심겨졌지
억척스런 눈짓 발길질로 트랙터로
흙더미도 때론 거품되고 싶지 않았거든
짝 없는 나무도 밟힌 잡초도 함께 묶이면 제 갈 길 알아차리네
그래 내 본향은 들
들로써 잎 줄기 세우고 서툰 살림 내주며 뿌리 터 잡히걸랑
우렁이 골뱅이마저 논농사 밭두둑 즐겨찾는
지구촌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줄달리기하자꾸나
그대 부르며 찾아 떠나는 식도마저 길쭉이 늘어난 자리
갈참나무 한 그루 등 뒤 바짝 대면
음악 대안학교 국제학교로 옮겨지고
누구든 날아와 그대와 더불어 갖가지 화음 이루는 커다란 꿈,꿈
숲속의 모든 것 저마다 좋은 악기 되어
두드리는 대로 걸쭉한 건더기 되네
11. 사과 과수원
불붙은 여학생의 황금빛 날개
동화 속 소년의 생기발랄한 춤
늦잠자다 멈칫 선 갈대숲이었네
시집가기 전 신부의 단장한 가슴
아니 줄기 밑동 몸체가 하나 되어
강물 거쳐 바다로 가기 직전인가
산모퉁이 돌아가며
무언가 어김없이 따내는 꽃바구니
12. 밥
밥알 아물거리며 울컥 울리는 울림
어머니는 나의 손이었다
80번 손이 가야 밥 한 술 입에 들어간다는 소문
통일벼 일반벼로 탄생하고 때가 되니 흑미벼로 노래부르며 튀어나오네
그 속엔 우렁이마저 두 다리 쭉 뻗고 잔치 벌이고
살아있음을 알리며 툭툭 건드리네
벼속 깊이 응어리진 포기마다 퍼져 나오는 긴 노래
주름살 펴가는 은행잎도 짧은 작별 인사하고
향기 그득한 콩알 은행알 쏟아 내 놓을 때
따스한 식탁 눈물 담는 항아리
오장육부 후끈해지는 아침바다 산책길
풍어 한 마당 잔치로 눈알 벌개진 항구더라
13. 가을 편지
누가 두 손 탁탁 틀고 달려오는가
하늘서 가을 편지 훌렁훌렁 꽃혀 내려왔지
바지런히 논 갈아 이모작 할 때면
어김없이 누워 죽는 대파들 행진곡
볏짚은 산촌 전원마을 지붕으로 다시 태어나
올핸 검정 비닐로 패인 상처 덧씌우네
속옷 속으로 스며드는 큰바람
빛바랜 원피스 처녀 시절 기억해 내는데
변신하는 그대 중년 언어로 짜릿한 말 건져 올리네
당신위해 소리지를 때 노래 한 줌 통하는 지름길
성큼 몰라보게 키 큰 옥수숫대 깻잎 대 옆으로 누워서
울타리로 가뭄 타던날 한통의 설래는 붓글씨 되어
상큼한 바람 일렁이는 농익은 사과나무곁 사과 껍질이고 싶었어
14. 간이역에서
사람들 눈 밖에 나버렸구나
어느 날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동화 속으로 소설책으로 밀려났느냐
너로 인해 받았던 것은 슬픔이런가
핑크빛 회색빛 뒤섞여 온통 빈 하늘 적시고
어린 날 언니와 자주 오르내린 기찻길 여행
봄날 울렁거렸던 유채꽃이랑 연산홍으로 귓속도 부풀고
여름날 가족들과 첨벙대던 물놀이 기다린 시간들
가을날에는 떠나간 연인의 눈물로 구멍 뚫린 낙엽
흰 눈 쌓인 산등성이 틈새로 역사는 얼고 녹고
네 이름자 새긴 철길 정거장 대합실마다
아직도 그 날의 기적 소리 울리는지
15. 포도밭에서
내 삶은 당신이 손수 만든 포도밭에서
알알이 영근 포도알 뚝뚝 따먹으며
함박 웃음 빗살 뚫고 퍼져나가는 여정
향취 진동하는 여름 날에나
오래 숙성된 맛 짜내던 겨울 뜨락
너는 곱상하고 화창한 봄날 푸르른 울림
네 집은 오동나무 장롱 안 익어가던 건포도
시의 창문 열어 재치며 까르르 웃음 폭발한 여운
영감 솟아나는 나무들 뒤로 비껴선 골짜기 산의 맥박
잠든 동산 흔들어 깨우는 가지 잎새들의 그 진한 넋두리
16. 못 생긴 나무가 산 지킨다
너의 모든 장애를 기회로 만들었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 하나가 절실하구나
송학 위 달 하나 수 놓고 밑동부터 싹 나게 하느냐
밤 깊고 어둠 진해질 때
비로소 제 이름값 하는구나
쓸 만한 나무부터 베어가도 배 하나도 안 아픈 흙무더기
산을 산답게 하며 나무를 나무되게 하네
자다가 깨서 잠결에도 노래란 노래 모두 찾아 부르네
사시사철 뿜어내는 언어 몇 마디로도
배 타고 대서양 횡단하는 것
비행기 타고 우주 한 바퀴 여행하는 것
내가 아닌 내 안에 당신으로 사는 것
17. 5월 바다에서
서해는 마음 추스르고 무엇을 조용히 꿈꾸나
잠 덜 깬 바닷고기들 주섬주섬 옷 갈아입는 소리
성급한 아이들 등살에 먼저 찾은 모래사장에서
계절 벗겨내는 허울 좋은 조개들 뒤퉁대고
설익은 횟집마다 타오르는 이색적인 초청장
시인은 말이 필요 없었네
끝없는 수평선이 안겨 주는 메시지
밀물따라 밀려 온 내 생애 빛나는 날
창 밖 햇살은 아까부터 파도 물결 잡아채 지휘하고
썰물은 오늘도 5월과 6월 사이 저울질하며
낚아채는 그대 앞에 무릎꿇고 찾아 다녔다네
18. 무지개
콩밭에 서리태콩 심어보고 배추밭에 배추씨 뿌려보았지
기계로 벼농사 밭농사 이모작도 해보았어
탈곡하는 뒷태 그을린 손때
밭두렁 논두렁 작은 생물 신음 소리에도 귀 기울이던 하늘
한국 넘어 미국 땅 러시아 땅 남아프리카 땅에도
민들레씨 날아가 심기고 나고 거두는 어김없는 순리
그 날 청천면 후평리 잣나무 뿌리 한 그루 뽑혀 나갔지
외쳐댄 하늘가 가없는 기다림
먹구름 속 무지개 빛깔 하나 걸러내더니
나 찾아 떠난 머나먼 여행길
그랜드 캐년 다닌 낙타도 수개월 쉬며 가며 이르른 땅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갯벌
소금기 걷힌 오후 느닷없이 날아든 유감 없는 메시지
19. 모과나무
나의 삶에 햇빛과 그늘 공존했을 때
그 사이 사이 가르고 신실한 약속되어
씨앗 알갱이 줄기와 잎새 가지로 굵어져 번져 나갔네
가장 걸맞는 향기와 모양 빛깔과 영양까지 허락하시고
누굴 위해 살아가야 생명의 울창한 숲 이루게 될 줄도 아셨지
타는 목마름으로 심한 갈증에 고비 사막 뒹굴던 양 한 마리
당신은 두텁게 쌓인 장벽도 한 방으로 허물어뜨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얼룩지고 배고픔 투성이인 날 향해 손 내미셨지
그 이후 애벌레 나비로 변신
썩을 대로 썩은 몸 새 살 돋는 아침
풀빛 사랑 알고 깨닫게 해주신 그 날
곁에 붙어 상수리 큰 나무 뿌리 뽑히기까지
당신 주소 몰라 동동거리다 못 부친 수많은 편지
20. 봄의 군단
그대 가슴은 이미 분출하는 봄
차가운 대지 긴 터널 동굴 속에서도
목숨 틔우는 일
길 되고 험한 산 높은 고개 다듬어가네
마른 가지마다 우렁차게 밀어 넣는 에너지
향기로운 연초록 변신하는 행렬
채우며 적시면 비워진 자리만큼 몰려든 파도
해산한 산모 막바지에 터져 나온 탄생의 긴 떨림이네
작은 것에 구색 맞춰가는 텃밭 사이로
그대는 시퍼렇게 살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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