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는 방법
월호(행불선원장)
* 수행자 두 사람이 고통을 이기는 수행을 하면서 48년을 함께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한 수행자는 수행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결혼 후 아들을 낳았는데, 아내와 함께 아들을 데리고 과거에 함께 수행하던 도반을 찾아가 예경을 올렸다. 그때 수행자는 부부에게는 수명장수를 축원해주었지만, 아기에게는 축원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부부는 당황하여 까닭을 물었고, 그 수행자로부터, 아기는 단지 7일 동안 살 수 있으며, 자기로서는 운명을 바꿀 방법을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결국 부부는 부처님을 찾아가 예경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도 이들 부부에게는 수명장수의 축원을 해주셨지만, 아기에게는 축원하지 않으셨다. 잠시 후 부처님께서는 이 아기에게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운명을 바꾸려면 집 앞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 아기를 뉘인 다음 비구들로 하여금 7일 동안 경전을 암송하도록 일러주셨다.
그래서 비구들이 송경을 하였고, 마지막 날에는 부처님께서도 직접 참석하셨는데, 그때 천상세계의 천왕들과 천신들도 그곳에 모여들었다. 이때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가 아기를 데려가려고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위력 있는 천신들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켜주다 보니 마침내 12요자나까지 멀어지게 되었다. 칠일이 지나 팔일 째 새벽이 밝아오자 야차는 아이를 잡아먹을 수 없게 되었다. 부부가 아이를 데려와 부처님께 예경하자 부처님께서 축원하셨다. “오래 살아라!”
부부는 아이가 얼마나 살 것인지 물었고, 부처님께서는 아이가 120살까지 살 것이라고 대답해주셨다. 훗날 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그는 오백 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 이를 기억한 비구들이 부처님께 수명연장의 방법을 묻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덕이 높고 나이 많은 어른을 섬기고 받들면
네 가지 축복을 받는다.
수명이 길어지고 용모가 아름다워지며
행복이 늘어나고 심신이 건강해진다.
** 덕이 높고 나이 많은 어른을 섬기고 받드는 것은, 스스로 덕이 높고 나이 많음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명이 길어지고 행복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결국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의 언행이 현재를 만들었고, 현재의 행위가 미래를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欲知前生事)
지금 받고 있는 것이 그것이요, (今生受者是)
내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欲知來生事)
지금 짓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今生作者是)
우리는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정된 나가 없기에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단지 가능성으로만 머물게 할 것인가, 현실화시킬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자신의 운명과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과감하게 운명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참다운 불자인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여성 불자의 표본인 말리카 왕비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어찌하여 같은 인간의 몸을 받았어도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며, 어떤 사람은 아름답고 어떤 사람은 추하며, 어떤 사람은 고귀하고 어떤 사람은 천박하게 태어나는 것입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과거 생에 베풀기를 좋아하면 부유하고 인색하면 가난해지며, 화를 자주 내면 추하게 태어난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시기질투하면 천박한 가문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말리카 왕비는 답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화내지 않겠습니다. 보시도 더욱 많이 할 것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질투도 하지 않겠습니다.”
베푸는 것은 부유한 마음 연습하는 것이요, 화내는 것은 추한 마음 연습하는 것이며, 시기 질투하는 것은 천박한 마음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대로 마음을 연습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유한 마음을 연습하고, 아름다워지고 싶으면 아름다운 마음 연습하며, 고귀해지고 싶으면 고귀한 마음연습하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성취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인과설(因果說)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과설이야말로 불교의 핵심사상입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였던 사리자는 본래 외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녹야원에서 최초로 불법을 접한 다섯 비구 중의 하나였던 앗사지 존자를 만나게 됩니다. 앗사지 존자의 범상치 않은 거동을 보고, 그를 따라가 법을 묻습니다. 이에 대한 앗사지 존자의 답변은 매우 간단합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네.
여래께서는 그 원인에 대해 설하신다네.
원인이 소멸한 결과(열반)에 대해서도
여래께서는 또한 설하신다네.
이 말을 들은 사리자는 그 자리에서 수다원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인 목건련과 함께 부처님께 출가하게 되었고, 결국 삼칠일 만에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었지만, 그 후에도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앗사지 존자가 계신 곳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자신을 불법으로 인도해준 앗사지존자에 대한 감사함을 결코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은 인과설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현상의 원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불교는 진정 과학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똥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합시다. 다음 가운데 어떤 방법이 똥배를 들여보내는 가장 적합한 방법일까요?
1.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내 똥배가 들어갈 것인지 점쟁이에게 묻는다.
2. 신에게 기도한다. 제발 내 똥배가 들어가게 해달라고. 플리~즈.
3. 단식에 들어간다.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굶는다.
4. 원인을 분석한다.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린다.
1번답은 다름 아닌 숙명론(宿命論)입니다. 인간사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불교는 숙명론이 아닙니다. 앞서 게송에서 본 바와 같이 나의 미래는 바로 지금 나의 행위에 달려있다는 것이지요.
2번답은 신의설(神意說)입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달려있다는 믿음입니다. 이에 따르면 내 똥배가 나온 것도 신의 뜻이요, 내 똥배가 들어가는 것도 역시 신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똥배를 들여보내려면 신에게 구걸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3번답은 고행(苦行)주의입니다. 불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중도(中道)설입니다. 부처님 당시 대표적인 고행주의적 종교가 자이나교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극도의 단식수행을 하다가 굶어죽는 것을 참다운 수행자의 표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첫 설법은 고행에도 쾌락에도 떨어지지 말라는 중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4번답이야말로 인과설입니다. 똥배가 나온 원인은 다름 아닌 과식과 운동부족입니다. 그러므로 그 원인에 따른 처방으로서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정답은 4번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운명에 맡기거나, 신에게 구걸하거나,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낡은 믿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설하셨습니다.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과연 이 시대 귀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요? 아직도 낡은 믿음에서 헤매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로의 법륜을 굴려야하지 않을까요?
출처 : 행불선원
글쓴이 : 달빛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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