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 왕태자가 함께 참석하였다.
예를 끝내자,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심순택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고유제(告由祭)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하였다.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壇)에 올라 금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았다.
심순택이 나아가 곤룡포와 면류관을 성상께 입혀드리고 씌워 드렸다.
이어 옥새를 올리니 상이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위는 《고종실록》 34년(1897) 10월 12일 기록입니다.
1897년 2월 고종이 아관파천(러시아공사관에 거처를 옮긴 사건)에서 환궁한 뒤
독립협회와 일부 수구파가 연합하여 임금을 황제라 부르고,
독자적인 연호 사용한다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추진, 8월에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쳤으며,
9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제단 곧 환구단(圜丘壇)을 세웠고,
드디어 1897년 10월 12일 황제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이 세워졌습니다.
▲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즉위식을 올렸던 환구단(圜丘壇)
고종은 환호하는 백성들 사이로 경운궁(덕수궁)에서 원구단으로 갑니다.
그리고 원구단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지낸 뒤 황제 즉위식을 열고
황제의 자리인 금의상좌에 오른 뒤 국호를 “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꿉니다.
고종은 그때까지 임금으로 입던 붉은빛 곤룡포 대신 황제가 입는 금색 곤룡포를 입고
흉배에도 사조룡이 아닌 발톱이 다섯 개의 오조룡(五爪龍)을 쓰게 되지요.
이렇게 고종은 광무개혁을 추진하며, 자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일제의 압박에 강제로 퇴위하였으며,
3.1만세운동 직전인 1919년 1월 21일 독살설이 퍼진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