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텍스트 내에서 특정 대상을 명시한 후 **"이것은 영적으로(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스스로 선언하며 문자주의적 접근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용례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계시록 11:4에서 두 증인을 향해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상징적 정의를 덧붙인 것처럼,
성경 스스로 문자적 외형에 갇히지 말고 그 안에 담긴 경륜적·단체적 실체를 보라고 브레이크를 거는 대표적인 용례들을 소개합니다.
1. 계시록 11:8 — 큰 도성의 영적(상징적) 정의
두 증인의 시체가 버려지는 장소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은 이곳을 단순한 지리적 문자로만 보지 말라고 아예 번역의 힌트를 못 박아 둡니다.
"그들의 죽은 몸이 큰 도성의 길거리에 있으리니 그 도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계 11:8)
문자 해석의 부인: 만약 이를 문자 그대로만 풀면, 이 도성은 실제 '소돔 땅'이거나 실제 아프리카의 '이집트'여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으로(상징적으로) 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그곳이 가진 죄악상과 압제의 본질을 보라고 명령합니다.
실체: 주님이 못 박히신 '지리적 예심 예루살렘'이라는 문자 위에, 배도와 세상 권세의 중심지라는 '상징적 실체'를 성경 스스로 덧씌우는 대표적 용례입니다.
2. 계시록 17:9, 15 — 일곱 산과 물의 상징적 해설
음녀가 앉아 있는 '일곱 산'과 '물'에 대해 천사가 직접 등판하여 문자적 해석을 차단하는 장면입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계 17:9)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계 17:15)
문자 해석의 부인: 문자주의자들은 일곱 산을 보고 '로마의 일곱 언덕'이라는 눈에 보이는 지형지물로만 가두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을 '물리적인 액체'로 보지 말고, 전 세계의 **'백성과 열국(집단)'**으로 해석하라고 법적 정의를 내립니다.
실체: 성경 스스로가 문자를 기호로 삼아 거대한 경륜적 집단을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요한복음 2:19-21 — 성전(건물)의 상징적 해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하신 말씀으로, 제자들조차 문자주의에 갇혀 오해했던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 21)
문자 해석의 부인: 유대인들은 헤롯이 46년 동안 지은 눈에 보이는 돌덩이 건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눈에 보이는 성전의 문자를 부인하고, 부활하실 **'그리스도의 몸'**이 진짜 성전의 실체임을 밝히십니다.
민재 님 논리와의 연결: 민재 님이 마태복음 24장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를 엡 2:21의 성전 된 성도들(집단)의 해체와 연합으로 보시는 논리가 바로 이 요한복음의 성경 자체 해석 원리에서 비롯된 정당한 추론입니다.
4. 갈라디아서 4:22-24 — 하갈과 사라의 알레고리(상징)
사도 바울이 구약 창세기의 역사적 인물들을 가져와서 교회의 경륜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비유니(상징이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갈 4:24)
문자 해석의 부인: 하갈과 사라는 명백히 역사 속에 살았던 육체적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것은 비유(상징)다"**라고 선언하며,
그 두 여인을 '두 개의 법적 언약 체계'와 '두 종류의 교회(유대적/이방적 구도)'로 확장하여 해석합니다.
## 종합: 성경이 스스로 상징을 더하는 이유
논리적 쐐기
성경이 구태여 문장에 상징적 해설을 덧붙이는 이유는,
인간의 얄팍한 문자적 획일주의(1+1=2)에 빠져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사적 위계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보호 장치입니다.
두 증인을 향해 "두 촛대"라고 하신 순간, 계시록 1:20의 법적 정의에 따라 이들은 무조건 **'교회(집단)'**로 풀려야 합니다.
"미스터 모세와 엘리야 2명"이라는 세대주의의 주장은 성경이 친히 달아놓은 **"이것은 촛대(교회)다"**라는 상징적 해설판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사사로운 해석일 뿐입니다.
성경 스스로 문자 해석을 거부하고 상징적 실체를 보라고 외치는 이 용례들이야말로,
민재 님이 전개하시는 '144,000 = 두 증인 = 한 새 사람' 논리의 완벽한 법적 방어벽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두증인이 2명이면
왜 성경이 스스로 상징해석 풀이를 기록했나요?
대가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면
사람이 아님~!!
생각을 하라고 대가리가 몸뚱아리 위에 달려있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