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간 딸네 식구와 함께 갈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중 부녀간에 조용히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아빠, 월반(越班) 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보기에는 별로 찬성할 만한 일이 아닌듯 하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지난 학기에 베키(나의 외손녀)의 성적이 떨어졌기에 깜짝 놀라 담임선생님과 상의를 했다니, 워낙 뛰어난 아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지금은 아이가 학교공부에 싫증을 느껴서 그런다고 오히려 월반을 시키면 마음에 도전을 받게되므로 더 열심히 공부 할 거라고 하는데요..." "그래? 미국에서도 월반을 시키는 일이 있는가보구나! 내 주 휴가 중에 좀 더 차분히 얘기해보자. 아이 얘기도 좀 들어보구."
문득 내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나는 1945년 5월에 해방동이로 출생하여 6.25 사변을 지내고 일곱 살이 채 안 되어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우리 집의 형편이 위로 누나가 하나 있고 아래로 누이동생이 셋이나 되어 외아들이었는데,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주변에 모여살던 광산김씨(光山金氏) 가문의 대를 잇는 종손(宗孫)이었으므로, 필경은 어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셨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 증조부, 조부, 아버지와 나, 이렇게 네 남자들이 아침마다 같은 상에서 식사를 하던 기억이 난다.
화초에 정성껏 물 주듯이 금이야 옥이야 길렀으니 초등학교 1학년 성적이 무척 좋았을 것이다. 하기사 부중부고 출신으로는 당연한 일 아닌가. 하나뿐인 아들을 하루라도 빨리 기르고 싶은 마음에서 아마도 어머니가 '이 아이를 월반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하는 의견을 내었으리라. 결국 모든 어른들이 좋게 여겨서 2학년을 거르고 3학년으로 월반(越班)을 했다.
원래 초등학교 1, 2학년에서 배운다는 것이 한글 읽고 쓰며, 구구법 외워서 간단한 산술을 공부하고, 사회생활의 기초예절을 배우는 정도였을테니, 월반을 해도 학사(學事)로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월반한 그 해에만 2등을 하고 그후로는 다시 줄곳 1등을 했으며, 초등학교 5년동안 개근한 걸 보면 몸은 가늘어도 강단이 있어서 무탈하게 자란 듯 하다. 그러나 월반(越班)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손실을 내게 가져왔다.
한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같이 놀며 자라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나도 모르게 서먹해졌다. 아무래도 1년 후배가 된 옛 친구(?)들과 같이 놀면 안 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가끔 길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면 외면을 했더니, 그중 어떤 아이는 뒤따라 오면서 "야, 김XX, 너 정말 우리를 무시하고 안 볼 셈이야?" 하고 큰 소리로 떠들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그렇게되어 지금에 와서는 그들중 어느 하나 가깝게 기억되는 친구가 없다.
새 친구들과 사귀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한 동네에 살았어도 나보다 웃학년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동급생이 된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고 못 본척 하기가 일수였고, 또 당시에는 6.25 사변 뒷 끝이라 이재민(罹災民)들이 많았는데 그 자녀들은 전에 알던 아이들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생활환경이 달라서 친근히 교제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보통 나보다 두세 살, 혹은 너댓살이 더 많아서 형이나 누나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문제점을 덮고 새로 출발한 부속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월반의 비밀을 내 가슴속에 감추고 시침을 떼며 지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불의의 사고로 어머님이 별세하시고, 법과대학에 진학하려는 마음을 바꾸어 공대로 들어가는 등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사건들과 함께 월반사건도 시간이 가면서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내가 속으로 좋아한 부고 15회 여자동창이 하나 있었다. 어떤 기회에 내 자신에 관하여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사랑과 비밀은 물과 불처럼 공존하지 못하기에 내 속을 다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 월반한 일도. 여동창의 안색이 흐려졌다. "나는 나하고 같은 나이인 줄 알았는데..." 지난 일에 대하여 후회는 없다. 어차피 '날씨와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일과 지나간 과거일은 바꿀 수 없다' 하지 않는가.
근래에 딸을 필라델피아로 유학시키게 된 15회 남자동창을 48년만에 만났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위이다. 서로 지난 얘기를 주고받는 중에 나의 월반사건을 자수했다. 그러나 막상 말 하고보니 이제는 그 일도 사뭇 싱겁다. 자랄 때는 세 살이 큰 차이였는데, 지금은 69세나 66세나 그게 그것 아닌가!
외손녀딸의 월반을 생각하다가 내 마음이 갈 之 자로 많이 방황을 했다. 하지만 쓰고나니 샤워한 것처럼 시원하다. 카타르시스(Catharsis)!
사진 <淸凉> 12회 최윤현
■ 부고USA 에 실린 댓글입니다.
12 최윤현 김후배님! 뒤늦게 흥미있게 읽었어요. 월반하고도 그리 공부를 잘 했다니 재능도 많았고 더구나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어 원하는 대학 도 가고 대단하네요. 월반이 김후배님이 겪었듯이 성장기에 주위 벗들과의 사회생황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걸 많이 느꼈을 줄 압니다. 대학에서도 재수생들의 인간성이 더 성숙해 보이고 군대 갔다온 선배들이 더 그렇게 느껴지고. 어차피 인생이 일이년 차이로 세상살이 크게 바뀔 일도 아니고 나이에 따라 정서의 발달도 있고 하니 월반이 그리 바랍직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어떻든 일장일단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요. 그 손녀아이도 공부 대신 열중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무언가 그런 와중에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시 공부에 열중할 수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15 김호중 최윤현 선배님,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가까이 관찰하신 전문가의 입장에서 소재의 핵심을 잘 보셨습니다.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려면 지적 발달과 아울러 감성의 개발과 도덕성의 훈련도 같이 겸해야 하는데, 그런 성품은 월반의 편법으로 인해서 오히려 뒤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말씀 감사하며 잘 읽었습니다.
똑똑하면 자기자신에게 좋고, 똑똑하고 또 선량하면 주위사람들에게도 좋은데, 똑똑하고 또 선량하며 거기에 아울러 진실하여 솔선수범할 수 있으면 그가 속한 공동체가 크게 발전할 수 있지요. 월반시키는 것은 '똑똑하게 만드는 데 너무 치중하여' 더욱 중요한 성품으로 착하고 진실한 인격을 이루는데는 오히려 지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김호중 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월반'을 매우 자랑으로 여기던데... 이 글은 님이 갖고있는 어떤 틀에서 벗어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느낌입니다. 고백적 수기 형식의 이 글은 자신의 내부에 축적되어있던 '월반'의 억압에서 탈출 평등으로 돌아 온 자유를 나타내고 있군요. 유려한 글체 또한 감명을 주었습니다.
임수자 동기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이현복(10회) 선배님이 <부고USA>에 쓰신 글 "오늘을 사는 지혜"를 읽고 '이사 가는 사람처럼' 마음의 짐을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여행준비 가방에서 필요치 않은 것을 내려놓듯 내 삶의 짐을 덜어내며...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돌아볼 건 돌아보는..." 연습이랄까요? '월반후유증'은 60년 가까이 제 마음속에 끌어안고 다녔던 숙제중의 하나였지요.
옳은말씀 하셨네요. 즉 자식의 공부에만 치중한 부모들이 더욱 중요한걸 잊고 있는수가 많으니 ,공부도 공부나 사회에나가서, 아니면 가정에서도 영리한 ,인간다운 교육을 시키는걸 ,착하고 진실한 인격을 가르치는데 소월 한점이 있으니, 즉 공부잘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잘하는것도 아니며,그런데 이런점이 특히 한국인의 특성 같습니다. 여기사람들에게는 그리 자식의 공부에 정신 안쓰던데 ,아주 낙제하기전에는 한마듸로 머리와 정신과 심장이 저울로잰다면 비등해야 한다는 .....
솔직히 말하면 난 자식이 없기에 이렇게 남의 예기를 척척하나 ,내 아이는 나도 잘못 교육시킬지도 모르나, 난 여기서 친구들의 애들 주위의 사람들 유심히 관찰하며 속으로 하는생각입니다. 저런게 원숭이 사랑이지 진정한 사랑이라면 애들을 어듸에 가도 어떤일을 당해도 꿋꿋히 일어날수있도록 길러야지 저렇게 길르면 어느남자가 자기 아빠처럼 해줄까하며 저런 애들이 남의집 식구된후에 문안한 결혼 생활을 할까등, 그리고 엄마가 너무나 뒤쫏아다니며 다해주면 저런 ,자기가 넘어져서 아퍼야 다시는 조심할텐데하며, 허나 내가 자식이 없어서 하는 소리겠지요,
아이에게 독립심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도 참 옳아요. 우리 세대가 자랄 때엔 부모님이 방목(放牧)하는 말(野生馬)처럼 기르셔서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고 눈치껏 알아서 '독립적으로' 컸는데 지금 세대는 핵가족이고 또 사회적으로 범죄위험이 많은 환경이라서 부모들이 겁을 내며 자녀를 과잉보호 하고 품속에서 기르니 자연히 독립성의 결핍문제가 염려되긴 하겠지요.
"당신의 머리와 내 심장을 받는다면 똑똑하고 인정 많고 잘 생긴 아이일텐데..." "나의 이렇게 뭉퉁하고 큰 코에 당신의 작고 땅땅한 몸매를 닮으면 얼마나 슬프겠소?" "당신은 왜 나쁜 것부터 생각해요? 좋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일을 가지고! 나의 예쁜 코와 다정함, 연초록색과 회색이 섞여 매혹적인 당신의 눈, 그리고 당신의 큰 키... 아, 생각만 해도 멋져!" 부미씨 부부가 나누신 얘기로 재미 있는 글 한 편 쓰실 수 있겠습니다. ㅎㅎ
농담도 젊어서는 마음에 기운이 넘쳐나니까 무엇이나 재미 있게 듣는데 같은 얘기도 나이 먹으면서는 자격지심 때문인가 귀에 거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함께 늙어가는 부부처럼 다정한 친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가능하면 정(情)을 담뿍 담아서 따뜻하게 존중해주는 표현이 피차에 안전합니다. 말을 하다보니 자꾸 설교하는 것 같아서, "직업은 못 속이는구나!" 혼자 피식 웃습니다.
첫댓글 똑똑 하셨구려.
똑똑하면 자기자신에게 좋고,
똑똑하고 또 선량하면 주위사람들에게도 좋은데,
똑똑하고 또 선량하며 거기에 아울러 진실하여 솔선수범할 수 있으면 그가 속한 공동체가 크게 발전할 수 있지요.
월반시키는 것은 '똑똑하게 만드는 데 너무 치중하여' 더욱 중요한 성품으로
착하고 진실한 인격을 이루는데는 오히려 지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김호중 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월반'을 매우 자랑으로 여기던데...
이 글은 님이 갖고있는 어떤 틀에서 벗어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느낌입니다.
고백적 수기 형식의 이 글은 자신의 내부에 축적되어있던 '월반'의 억압에서 탈출
평등으로 돌아 온 자유를 나타내고 있군요.
유려한 글체 또한 감명을 주었습니다.
임수자 동기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이현복(10회) 선배님이 <부고USA>에 쓰신 글 "오늘을 사는 지혜"를 읽고
'이사 가는 사람처럼' 마음의 짐을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여행준비 가방에서 필요치 않은 것을 내려놓듯 내 삶의 짐을 덜어내며...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돌아볼 건 돌아보는..." 연습이랄까요?
'월반후유증'은 60년 가까이 제 마음속에 끌어안고 다녔던 숙제중의 하나였지요.
옳은말씀 하셨네요. 즉 자식의 공부에만 치중한 부모들이 더욱 중요한걸 잊고 있는수가 많으니 ,공부도 공부나 사회에나가서, 아니면 가정에서도 영리한 ,인간다운 교육을 시키는걸 ,착하고 진실한 인격을 가르치는데 소월 한점이 있으니, 즉 공부잘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잘하는것도 아니며,그런데 이런점이 특히 한국인의 특성 같습니다. 여기사람들에게는 그리 자식의 공부에 정신 안쓰던데 ,아주 낙제하기전에는 한마듸로 머리와 정신과 심장이 저울로잰다면 비등해야 한다는 .....
부미씨,
"머리와 정신과 심장이 저울로 재서 비등해야 한다"는 얘기 참 멋지네요.
지능(知: 머리, cognition), 감성(情: 심장, emotion), 의지력(意: 손발, volition)의 균형개발!
그래요. 지능지수(IQ)가 높으면 공부를 잘하고, 감성지수(EQ)가 좋으면 사회생활이 원만하다고 하지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으니 실천하는 의지가 결국은 지도력의 바로메타가 되겠군요.
부미씨 덕분에 잠간동안 인생철학 공부 잘 했습니다. 감사 그리고 꾸뻑!
솔직히 말하면 난 자식이 없기에 이렇게 남의 예기를 척척하나 ,내 아이는 나도 잘못 교육시킬지도 모르나, 난 여기서 친구들의 애들 주위의 사람들 유심히 관찰하며 속으로 하는생각입니다. 저런게 원숭이 사랑이지 진정한 사랑이라면 애들을 어듸에 가도 어떤일을 당해도 꿋꿋히 일어날수있도록 길러야지 저렇게 길르면 어느남자가 자기 아빠처럼 해줄까하며 저런 애들이 남의집 식구된후에 문안한 결혼 생활을 할까등, 그리고 엄마가 너무나 뒤쫏아다니며 다해주면 저런 ,자기가 넘어져서 아퍼야 다시는 조심할텐데하며, 허나 내가 자식이 없어서 하는 소리겠지요,
아이에게 독립심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도 참 옳아요.
우리 세대가 자랄 때엔 부모님이 방목(放牧)하는 말(野生馬)처럼 기르셔서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고 눈치껏 알아서 '독립적으로' 컸는데
지금 세대는 핵가족이고 또 사회적으로 범죄위험이 많은 환경이라서
부모들이 겁을 내며 자녀를 과잉보호 하고 품속에서 기르니
자연히 독립성의 결핍문제가 염려되긴 하겠지요.
내가 우리친구들 자식들 보고는 남편하고 우리애는 ,똑똑하고 인정많고 잘생겼을텐데, 너의 머리와 내 심장을받으면 했더니, 이사람왈, 우리애들이 나의 이렇게 뭉퉁한 큰코에 너의 작고땅당한 몸매 닮으면 ,얼마나 슬프겠냐해서, 내왈 넌 왜 나뿐것부터생각이니? 나의 예뿐코와 인정, 너의 연초록색과 회색의석인, 눈에다 너의 큰키 우와 상상만해도 미인에다 똑똑한 애들일테니 거기의 나의 교육, 참 섭섭 그런 애들을 못낳았으니 , 우리집 전화가 불이 났을텐데 그러고는 둘이 킬킬했답니다. 모든걸 유심히 보는게 습관이라 남의 자식들보며 나혼자의 생각....
"당신의 머리와 내 심장을 받는다면 똑똑하고 인정 많고 잘 생긴 아이일텐데..."
"나의 이렇게 뭉퉁하고 큰 코에 당신의 작고 땅땅한 몸매를 닮으면 얼마나 슬프겠소?"
"당신은 왜 나쁜 것부터 생각해요? 좋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일을 가지고!
나의 예쁜 코와 다정함, 연초록색과 회색이 섞여 매혹적인 당신의 눈, 그리고 당신의 큰 키...
아, 생각만 해도 멋져!"
부미씨 부부가 나누신 얘기로 재미 있는 글 한 편 쓰실 수 있겠습니다. ㅎㅎ
글쓰는 재주는 없으니 못쓰나,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놀리는 대화 necken (droll)가주로 이기에 여기남자들은 자기부인 칭찬하면 한목더하며 자랑시작,허나 이사람은 정반대, 전에 한국음식파는집 여자가 한번 이사람도 같이갔을때," 당신은참 행복하시겠어요"저렇게 상냥하고 예뿐 부인을 하니 이사람 당장하는말 그렇지요, 더 못난 여자들도 있을테니 아주 정색을하고,그후로는 그가계여자가 이사람과 농담하며 시시덕거리기 바뿌게, 당연히 독일남자의 입에서 나도 알아요 내부인 정말 매력있지요 할줄알았는데 , 글쎄 우리는 그리 서러 빈중대는데 선수들예요. 그리고는 킬킬이죠.
농담도 젊어서는 마음에 기운이 넘쳐나니까 무엇이나 재미 있게 듣는데
같은 얘기도 나이 먹으면서는 자격지심 때문인가 귀에 거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함께 늙어가는 부부처럼 다정한 친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가능하면 정(情)을 담뿍 담아서 따뜻하게 존중해주는 표현이 피차에 안전합니다.
말을 하다보니 자꾸 설교하는 것 같아서, "직업은 못 속이는구나!" 혼자 피식 웃습니다.
늦게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그런대 박원세씨가 69세 이라고요?
우리가 함께 자랄 때는 원세 형의 '체격이 형처럼' 무척 좋았는데
요즈음 우리 15동기들 대하는 것보니 '형답게 마음이' 과연 너그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