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타오르며 질주하는 노이즈의 향연
100미터 주자의 속도로 42.195km를 달려가는 거센 숨결이 벌떡거리는 청춘의 소음들!!!
초강력 스페이스 게러지 록엔롤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 데뷔 이후 첫 번째 정규앨범 "NOISE ON FIRE"
별다른 홍보없이도, 화제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있다. 시의성이나 이슈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알맹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세상이 따라오게 하는 사람들.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중요한 분기점을 넘어오곤 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로모션 없이 신인이 이름을 알리기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주류 음악계 뿐 아니라 인디 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대중의 능동적 호기심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런 안 좋은 상황을, 숨어있는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 입소문을 불러 일으키며 정규 앨범을 내지 않았음에도 거물급 대접을 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이 갤럭시 익스프레스다. 현재 홍대앞 인디 신의 뜨거운 감자들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온도를 자랑하는 팀이다. 앨범 없이도 뮤지션의 전당인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 관객들의 넋을 뺐던 팀이다. 일신우일신, 오늘의 공연이 어제의 공연보다 언제나 좋은 몇 안되는 팀이다. 크라잉 넛을 비롯한 유수의 밴드들이 가장 함께 공연하고 싶어하는 팀이다. 현재 인디 음악계의 화두인 '다시, 뜨거운 록으로의 회귀'를 설명함에 있어 단연 엄지 손가락의 위치를 차지하는 팀이다.
럭스, 게토밤즈를 거친 이주현(베이스, 보컬)과 바셀린의 원년 멤버였던 윤홍구(드럼)가 2005년 3월 의기 투합한게 밴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뻔한 펑크가 아닌 보다 강력하면서도 원초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구상만 있었을 뿐 상황이 구체적으로 진척되지는 못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띈게 박종현(기타, 보컬)이었다. 그 전에 ‘모글리’라는 신생 펑크 밴드에서 활동하던 그는 밴드가 해체하면서 ‘기타 모글리’라는 이름으로 바다비등의 클럽에서 홀로 활동하고 있었다. 평소 그의 무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센스와 끼를 눈여겨봤던 이주현이 그가 솔로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취했고, 밴드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박종현이 흔쾌히 응함으로써 2006년 초,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결성됐다.
2006년 4월부터 공연을 시작한 그들은 곧 홍대앞 오피니언 리더들의 화제가 됐다. 인디신에서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파워풀한 사운드에 어떤 장르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으로 무대를 압도했던 것이다. 이들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음악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좀 힘든데, 에너지가 장난 아니다.’ 정말이지, 누구나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한달 평균 40회씩의 공연을 하며 무대를 불살랐다. 완전 연소하는 이들의 공연은 그대로 장작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기존 펑크나 하드코어 팬뿐 아니라 록 그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까지도 몰려들었다. 한 번 이들의 공연을 본 관객은 반드시 다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두 장의 EP를 냈다. 듣는 순간, '앗 뜨거!' 비명을 지를만한 순도 높은 에너지가 들끓었다. 당연히,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멤버가 바뀌었다. 박종현의 고향친구인 김희권이 새로운 드러머로 가입한 것이다. 실용음악과에서 타악기를 공부한 그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음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주다스 프리스트가 스코트 트래비스를 맞이하여 걸작 <Pain Killer>를 낼 수 있었듯, 보다 정교하고 보다 박력 있는 김희권의 드러밍은 팀의 굳건한 다리가 되기 충분했다. 그리하여 튼튼히 허리를 받치는 이주현의 베이스, 근래 보기 드문 박종현의 정통 샤우팅 창법과 자유분방한 기타 플레이와 함께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사운드는 삼국정립의 천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된 라인업으로 이들은 2007년 한 장의 EP를 더 냈다. 이 앨범 역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들은 이미 이 단계에서 거물급 밴드가 됐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비롯, 국내 유수의 록 페스티벌에 줄줄이 섭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준비과정이었을 뿐이다. 올 초, 이들은 본 게임을 시작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첫 정규 앨범 레코딩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3년간 쌓아놓은 적지 않은 자작곡들로 그들의 위상을 정립할 채비를 한 것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그 동안 모든 레코딩을 라이브로 녹음해왔다. 드럼, 베이스, 기타 등 각 악기를 따로 녹음 한 후 하나로 합치는 게 현대 레코딩의 관례이자 상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늘 모든 멤버가 한꺼번에 스튜디오에 들어가 한꺼번에 녹음한 후 그 결과물을 앨범으로 내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이들의 최대 무기인 라이브의 박력을 100% 끌어내기 위해서다. 첫 정규 앨범인 <Noise On Fire>도 그런 방식으로 녹음됐다. 박종현,이주현,김희권이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연주를 했다. 그리고 여기에 몇 차례의 오버더빙을 하고 보컬을 덧입혔다. 그렇게 녹음한 곡이 총 스물여섯곡. 그들은 그 모든 곡을 앨범에 담았다. 데뷔 앨범을 더블 앨범으로 제작하는 얼핏 무모한 짓을 감행한 것이다. 음반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는 지금, 이해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의 시작에서 말했듯, 이들은 세상을 따라가는 밴드가 아니다. 자신의 욕망에 120% 충만한 음악으로 인디 음악계의 입소문을 견인해왔다. 그런 태도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첫번째 CD에는 펑크와 개러지 록 등 보다 날 것의 사운드가 담겨있다. 이 CD의 보컬은 주로 이주현이 맡고 있다. 그렁그렁한 저음으로 카랑카랑하게 질러대는 그의 보컬은 10년 넘게 펑크 씬에서 활약해온 관록의 결기가 용솟음친다. 기타 리프와 베이스 리프가 뒤섞여 꿈틀대고 100미터 주자의 속도로 42.195km를 달려가는 거센 숨결이 벌떡거리는 첫번째 CD에서 읽을 수 있는 건 21세기의 록이다. 연성화된 록에 반기를 걸고, 다시 70년대로 회귀하자는, 그 좋았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2000년대의 동시다발적 움직임은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첫 정규 앨범에서도 여과없이 확인된다. 'Jungle The Black' 등 기존 EP에 담겨있던 곡들은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통해서 음질은 더 업그레이드 되었으되, 에너지는 더 증폭됐다.
하드 록과 블루스 록 등 보다 정통 록 성향을 띄고 있는 두번째 CD는 <Noise On Fire>를 '로큰롤 백과사전'으로 격상시키는 결과물이다. 박종현의 보컬을 주로 들을 수 있는 이 CD에서 우리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 록의 만신전에 이름을 새긴 거물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런 록의 클래식은 그동안 한국에서도 충실히 재현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운드다. 그동안 한국의 정통 록이 시대에 뒤쳐진, 화석화된 사운드를 들려줬다면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첫 CD에서와 동일하게 가장 원초적인 질감을 살림으로 인해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이것은 그들을 개러지 록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합주실이 아니면 밴드가 합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우리와는 달리, 서구의 록 키드들은 집의 차고(개러지)에서 굉음을 울리며 록 스타의 꿈을 키운다. 그 순수하고 원시적인, 풋풋하기에 거침없는 사운드를 최대화한 게 개러지 록이다. 그 어떤 장르를 해도 록의 초심의 살리는 아마추어리즘에 빈틈없는 연주와 드라마틱한 곡 전개로 프로페셔널리즘을 획득하는 것, 그것이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매력일 것이다. 그 매력이 최대화의 수치로 드리워진 작품이 <Noise On Fire>다. 첫 앨범 같지 않게 원숙한 앨범, 달인의 앨범 같지 않게 날 것인 앨범. 2008년 여름, 어수선한 시국에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뜨겁디 뜨거운 앨범 한 장을 내놓았다. 그 사운드만으로도 동시대의 에너지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어제를 돌아보지 않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청춘의 박력이, <Noise On Fire>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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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 루비살롱 레코드 공작단
첫댓글 일단 헤비 좀 와서 공연 보여줘요!
헤비 공연 안오면 불법다운로드 할꺼임!!
헤비 곧 가것습니돠~누님들도 보고싶구요!!
오옷~ ..헤비도한번꼭 공연하러오세요 ^^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