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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파티마의 예언
그가 사라졌습니다 어젯밤 한 시경으로 추정됩니다. 모두가 잠들
었을 때 홀연히 없어 저버렸습니다.
사도광탄이 없어져 한바탕 법석을 떨고 난 오후 서 원장은 두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형사였다.
사도광탄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서 원장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없어지자마자 사
람들이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죠?~
우리는 정보과 형사인데, 그 사람의 동정을 보고하게 되어 있
습니다.
글쎄 무슨 이유로 그 사람의 동정을 보고하게 되어 있느냔
말이에요?'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다구요? 그렇다면 나도 말할 수 없어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실 만한 분이 도와주셔야지 이렇게 비
협조적으로 나오시면 됩니까?'
서 원장은 의아했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나 있을 수 있었
던 일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나가라고 소리
지르려던 서 원장은 순간 주춤했다 혹시 사도광탄이 무슨 일을
저질렀다면 그의 엉뚱함으로 보아 그랬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
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닙니다. 통상적인 동향 조사입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는 왜 한 번도 오지 않았죠?'
그건
그제야 서 원장은 깨달았다. 경찰은 간호사를 매수해 두고 있
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도광탄이 없어지자마자 경찰이 알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로 경찰은 그를 감시하고
있단 말인가.
쓸데없는 건 묻지 마시고 그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잘 알잖아요, 그 사람이 없어진 것을.
어디로 갔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까?'
대화 나눈 적 없어요.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얘기할 수 없어
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사람을 감시하는지를 알기 전에는.
두 사람의 형사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눈을 껌벅하자
젊은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다.
그 사람은 인터폴에서 감시하고 있어요.
뭐라구요, 인터폴?'
서 원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폴이라면 국제경찰 아
닌가. 사도광탄이 도대체 무슨 일로 국제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
단 말인가.
그가 무슨 국제 범죄라도 저질렀나요?'
그거야 모르죠. 우리는 그냥 감시 요청만을 받고 있으니.
수배되지 않은 것을 보면 범죄 행위가 드러난 것은 없는 모양
입니다. 범죄의 가능성이 농후하거나 혐의를 받고 있겠죠.
나이가 든 사람이 한마디 거들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몰라요. 아무 말도 없이 가버렸으니.
이 말을 하면서 서 원장은 한 줄기 섭섭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
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다니, 가겠다
고 말을 했다면 안 보내지 않았을 텐데.
사실이 그랬다. 비록 자신의 환자로 남들과 같이 엄중한 감시
밑에 있기는 했지만 그가 가겠다고 나설 때에 붙잡아둘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우선 자신이 치료를 한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증발이 안타까운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
도광탄에게 차츰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이성에 대한단순한 이끌림이 결코 아니었다 같은 인
간 존재로서의 이끌림 이었다. 그에게는 내면으로부터 울려오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공허한 이론이나 휴머니즘 같은 원리가 아
니었다. 서 원장은 요즘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도 겪을 수도 없는
사도광탄의 괴이함을 좋아했고, 그 괴이함 속에 있는 삶과 우주
에 대한 통찰을 존중했다.
비록 의사와 환자 사이지만 서 원장은 사도광탄에게서 삶의
깊이에 대해 배우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까짓 병원비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닌데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다는 사실이 야속하
게 생각됐다.
알겠습니다. 만약 연락이 오거나 하면 여기로 전화 부탁드립
니다.
파리 경시청의 국제형사과 드파이유 경부는 한국의 경찰청으
로부터 날아온 한 장의 팩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인물 번호 19HOKOROO09 감시 이탈.
팩스는 짧은 내용이었다. 미국 FBI의 협력관으로 오래 근무하
다가 새로 부임한 그는 인물 번호를 보자 호기심이 솟았다. '감
시 이탈'이야 이제 곧 다시 '행적 포착'全으로 바뀌어 날아오겠지
만 어떤 인물이기에 20년 가까이 감시 해제가 안 되고 있는지 궁
금해진 것이다. 더군다나 인터폴 수배 인물로는 극히 드문 한국
인이 아닌가.
(사도광탄)
1955년 11월 14일생.
르루케 하이재킹 사건의 주범 다우니와의 연관 추정
(중략)
이자는 결국 다우니의 정신을 지배하여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심증이 있음.
물증 없음
지속적 감시 요망
* 바티칸 특별 요청.
드파이유 경부는 마지막의 바티칸 특별 요청이라는 별도 표시
에 주목했다. 그는 다시 한 편에 붙어 있는 르루케 하이재킹 사
건의 번호를 찾았다. 사건은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하
이재킹 사건의 기록이 늘 그렇듯이 여러 각도에서 재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시계를 봤다. 20분 후면 점심 시간인 것을 확인하고는 전
화기를 들어 사건 당시의 팜당 수사관이었던 데스탱 경부의 번
호를 돌렸다.
내가 먼저 사야 하는 걸 이거 미안하게 됐네.
아니야 자넨 이혼한 부인에게 돈을 부쳐야 되잖아.
제기랄, 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인생이 그렇지 뭐. 근데 자네 그 르루케 하이재킹 사건을 수
사했더구먼.
그랬지.
그 당시의 얘기를 들려주게, 낱낱이 말이야.
참, 자네 다시 국제형사과로 발령 받았지?~
팔자인 모양이야.
데스탱은 포도주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
으로 구성하여 설명 했다
캔터 베리 상공이군.
더블린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잉글랜드를 가로질러 막 영불
해협에 들어서기 직전에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스
튜어디스는 도버 해협 건너편의 칼레를 바라보며 좀 이상하다
싶었을 때 미리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자신을 질타하고 있었다.
사나이는 처음부터 말이 없었다. 이 사나이처럼 타서부터 지
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음료수 접대
나 식사 메뉴를 물었을 때도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스
튜어디스는 사나이의 기분을 풀어보려고 일부러 사나이와 시선
을 마주치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나이는 가슴에 걸려 있는
굵고 낡은 은십자가를 만지더니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독실한 가톨릭 이군:
스튜어디스는 괜히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생각하면서 통로를
지나쳤다.
그로부터 10분 후 비행기의 후미에 앉아 있던 그녀는 이 사나
이가 비행기의 앞쪽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금 신경이
쓰였다. 화장실을 그냥 지나쳐가는 사나이의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결코 작지 않은 검은
봉지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스튜어디스는 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기장님 지금 앞으로 걸어나가는 사람이 어딘지 마음에 걸려
요 혹시 조종실문을안닫았다면
그러나 스튜어디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비행기
의 맨 앞에까지 걸어나간 사나이가 몸을 돌리고 뱉어낸 한마디
에 그녀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비행기는 지금 이 순간부터 납치되었습
니다.
말의 내용과는 너무나 딴판인 조용하고 점잖은 목소리였다.
이 점잖은 목소리가 승객들로 하여금 기묘한 혼동을 일으키게
했다. 마치 일요일에 신자들을 모아놓고 설교하는 신부나 목사
의 것으로나 알맞을 이 목소리 때문에 승객들은 도저히 자신들
이 처해 있는 상황을 깨달을 수 없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온화해 보이는 얼굴 역시 평생 남과
한번 다투어 보지도 않았을 것처럼 보였다. 몇 사람의 승객은 무
슨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앞뒤를 두리번거리며 흥미
있는 표정으로 사나이의 다음 동작을 살폈다.
사나이의 동료들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안심도 되었지만
사나이가 들고 있는 봉투도 세탁물 봉투같이 부드럽고 푹신해
보이는 것이어서 그 안에 위험한 총기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나이는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모두의 고개를 숙이게 하거나 손을 들고 눈을 감게 하지
도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승객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나이
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 봉투 안에는 매우 민감한 폭발물이 있습니다. 만약 승무원
이나 승객 여러분 중 누구라도 저를 제지하거나 무기를 꺼내는
분이 있으면 우리 모두는 공중에서 몰살하고 맙니다 심지어는
제가 넘어지기만 해도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
러분께 진심으로 협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승객들은 자신들이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 생생하게 깨
달을 수 있었다
하이재킹 .
비행기는 납치된 것이다. 매우 점잖아 보이는 그 점잖음으로
인해 더욱 기묘한 느낌을 주는 한 사나이에 의해.
납치범의 신원은 밝혀졌나요?'
내무장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수화기를 좀더 가까이 귀에 갖다
댔다. 아일랜드에서 이륙한 비행기라면 필시 IRA의 행위일 것이
다. 그렇다면 자신은 또다시 그 목소리조차 듣기 싫은 영국 친구
들과 지루하고도 복잡한 대책 회의를 끝없이 반복해야만 한다.
장관은 벌써 몇 개비째 연달아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이름과 신분은 알아냈습니다.
뭔데요?'
다우니라는 이름의 아일랜드 출신 수도사입니다.
뭐요, 수도사라구요?'
그렇습니다.
어느 종파의 수도사랍니까?'
가톨릭.
허허, 저런! 세상이 이제 드디어 말세로 가는구먼 그래 가톨
릭의 수도사가 비행기를 납치했단 말이오?'
내무장관은 혀를 끌끌 찼다. 이것은 그야말로 미증유의 사건
이었다. 수도사라면 바로 신부가 아닌가 아니 성당의 봉직 신부
보다도 오히려 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 사는 인간이 아닌가. 그런 수도사가 비행기를 납치했다
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요구 조건이 뭐요?'
그 요구 조건이라는 것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뭔데요, 우리더러 성당 건립 자금이라도 내놓으라는 건가?'
그게 아니고
뭐요?'
납치범은 교황청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에?'
그렇습니다.
흐음, 가톨릭의 수도사라면 교황청에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
겠지 . 그런데 하필이면 왜 우리 나라에 비행기를 착륙시키고 그
런답니까?'
납치범의 요구 조건이 프랑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장관은 적이 안심이 되는 모양인지 여유를 찾은 음성으
로 약간의 농담이 밴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맞은편의 경시청장
은 여전히 긴장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일단 르루케 비행장에 내린 이상 모든 책임은 우리에
게 있습니다. 특히 우리 경찰에게 말입니다.
그야 그렇지만 어쨌든 정치적으로는 크게 곤란할 문제가 없
단 말이오. 그런데 그 납치범이 교황청에 요구하고 있는 조건은
무엇이오?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수도사가 비행기를 납치
하고 조건을 내건단 말이오?'
그 수도사가 교황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어떤 비밀을 공표
하라는 것입니다.
뭐라구, 비밀을 공표해?'
장관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껏 비행기 납치범의 요
구란 것은 언제나 돈이 아니면 과격파 테러단의 석방 같은 것이
었다. 그런데 이번에 생긴 사건은 납치범의 정체도 이해할 수 없
었지만 그 요구 조건은 더 더욱이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교
황청에 비밀을 공표하라는 것은 비행기 납치범의 요구 조건으로
서는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그거야말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로군. 그래, 도대체 무
슨 비밀을 공표하라는 거지?'
이제 장관은 자신의 업무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지대한 관심
이 생겼다
파티마의 제3의 예언이 란 것입니다.
뭐라구, 파티마의 제3의 예언?'
그렇습니다.
시종 투정 섞인 목소리로 물어나가던 장관의 목소리가 여기서
딱끊겼다 아니 끊긴 것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장관은 자신도
모르게 탁자에 뻗었던 두 다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이것은 세상
에서 늘상 일어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장관은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이오? 파티마의 제3의 예언이란 것은?'
그것은 마리아의 예언입니다.
마리아? 성모 마리아 말이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예언을 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언제?'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합니다 20세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20세기에? 아니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는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파티마
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것입니다 마리아는 세 명의 어린 목동
앞에 나타나서 인류의 미래와 관련한 예언을 했답니다.
이봐요, 총감 세상에는 뭐가 나타났다, 누가 어떤 예언을 했
다. 마리아를 보았다. 예수를 보았다 하는 등의 얘기가 너무도
많지 않소? 그런 것을 어떻게 일일이 믿는단 말이오?'
물론입니다. 그래서 그런 보고가 있을 때마다 로마의 교황청
에서는 일일이 조사를 한답니다. 거의가 허위로 밝혀지지만 이
파티마의 성모 출현은 교황청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습
니 다.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마리아의 출현과 예언이 검증되었고 교황청은 파티마를 성지
로 정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많은 교인
들이 파티마를 찾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황은 아그자의 총격을
받고 기적처럼 살아나자마자 완치도 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바
로 파티마를 찾아 성모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래요? 출현은 인정을 받았다니까 그렇다 치고 도대체 어떤
예언이 검증되었다는 거지요?'
소르본느 법학부 출신인 내무장관은 시간을 다투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꼬치꼬치 물어갔다. 그는 자신이 납득되지 않는 일
에 대해서는 어떤 중요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미카엘 천사가 먼저 나타나 5월 13일 세 명의 어린 목동 앞에
마리아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답니다. 과연 그날이 되자
마리아가 나타났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어린 목동들 앞에
한 줄기 강렬한 광채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그후에도 매달 같은 날 여섯 번에 걸쳐
나타났고, 마지막 발현 때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약 7만 명이
희한한 기적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아이 중 둘은 마리
아의 예언대로 곧 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두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 예
언이 맞았다는 얘기요?'
법학을 전공한 내무장관은 이런 종류의 문제를 가지고 설득하
기에는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총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장관은 총감이 가톨
릭 신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런 것은 사소한 것이지만 파티마의 예언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제 1 예언은 제1차 세계대전이 예언 당시로부터
1년 반 안에 끝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전
쟁이 언제 끝날지 몰라 절규하고 있었는데 마리아는 이제 1년
반 후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린 목
동들 중 하나가 '그러면 이제 세계전쟁은 끝입니까'라고 묻자
'아니다. 이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지나면 또 한차례의 세계대
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히는 20년 1개월
후에 2차대전이 일어났습니다. 마리아는 전쟁의 자세한 양상과
원자폭탄도 예언하셨습니다. 어린 목동들 중 하나에게 환상으로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이것을 제2의 예
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3의 예언은?'
장관은 자신도 모르게 내처 물었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수도사가 로마 교황청에 공표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납치해 가면서까지요.
이상한 일이군 교황청에서는 왜 그 제3의 예언을 이제껏 공
표하지 않는 거요?'
그것은 성모마리아의 계시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예언을 세
어린 목동들 중 하나인 루치아에게 일러주며 제3의 예언은 아무
에게도 얘기하지 말고 오로지 로마의 교황에게만 알려주라고 했
던 것입니다.
그래서요?'
장관은 이제 강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루치아는 이 예언을 글로 작성하여 교황에게 보냈습니다. 그
리고 두 아이가 죽자 칼멜의 기도원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은둔
생활을 하면서 오직 기도로만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3의 예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
군요.
얼마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단 두 사람밖에는 모릅
니다.
두 사람이 라면?'
바로 루치 아 수녀와 교황입니다.
교황청의 간부들도 모르고 있다는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오직 교황만이 그 예언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
은 성모 마리아의 계시입니다 교황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그 예
언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관은 그제야 이 우스꽝스러운 하이재킹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 납치범의 요구 조건이 이제껏 있어 온 그
어느 조건보다도 까다롭고 실현되기 어려운 것임을 깨달았다
같은 시각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의
표정은 엄숙하다 못해 삼엄한 분위기까지 감돌고 있었다. 시스
티나 대성당 옆의 교황궁으로 급히 모이라는 연락을 받은 추기
경들은 국무장관인 비오 추기경으로부터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왜 그토록 급히 와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국무장관의 설명을 듣고 난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위기감이 나타나 있었다. 아무도 말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교황청이 그토록 감추고자 했던 비밀이 이제 세상에 노
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재킹이라면 세계 언론으로부터 제1급의 주시를 받게 마
련이다. 아마 지금쯤 바티칸 광장에는 세계의 언론 기관으로부
터 구름같이 몰려온 기자들이 이 회의의 결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당황한 추기경들은 이 회의의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하여 미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삐 머리를 돌리고 있
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더러 귓속말로 의견을 나누었다.
수도사가 이런 짓을 하다니 고통스럽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껏 수천 번이나 예언의 공개를 거부해
왔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쉬울 것 같지 않군요.
차제에 아예 예언을 공개하도록 진언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은 안 될 말입니다.
혹시 장관께서는 예언에 접촉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없습니다. 아직도 루치아 수녀와 교황 성 하께서만 알고 계십
니다.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지요. 바오로 6세 성하와 요한 바오로
1세 성하의 경우를 미루어보면 말입니다.
바오로 6세는 교황이 되어 파티마의 예언을 꺼내 보다가 너무
나 놀란 나머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실신했다 그리고 무엇보
다도 심약했던 요한 바오로 1세는 즉위한 지 한 달 만에 심장마
비로 숨졌다.
그의 죽음을 놓고 이런 저런 말이 많았지만 파티마의 예언을
보고 그 중압감에 숨졌다는 견해가 유력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
는 파티마의 예언을 본 날 밤 홀로 미친 듯 기도를 하다가 죽었
다는 얘기도 있었다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교황과 루치아 수녀만이 알고 있지만
바티칸 깊은 곳에서 일하는 몇 사람의 핵심적 추기경들은 그 예
언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언
의 내용이 매우 무시무시하다는 것과 가톨릭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교황 성하께서 드십니다.
이윽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나타나자 추기경들은 모두 일
어나 그를 맞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기도로만 살아온 사람, 그리하여
성령의 축복을 받아 비이탈리아인으로서는 5백 년 만에 처음으
로 교황이 된 이 사람은 즉위하는 그날부터 참으로 정열적으로
일해 왔다 그는 이제까지의 구태의연하고 권위적인 교황청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신도들과 살갗을 맞대며 진심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기도를 요구했다.
원칙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철저히 고전적인 가치를 고
집해 온 그는 요한 23세 시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의
전례에 대한 혁신적인 헌장을 발표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
다 그 헌장의 요체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장은 효계 제도보다
중요하다는 것으로 가톨릭 의식의 새 장을 여는 것이었다.
교황이 자리에 앉자 추기경들사이에 토론이 시작되었다.
최악의 사태는 우리가 그 예언을 공표하지 못하겠다는 결론
을 내리고 그 사실에 대해 납치범이 폭탄을 터뜨림으로써 결말
을 내는 경우입니다. 전세계의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교황청을
비난할 것입니다 피범벅이 되어 나구는 시체들을 보여주며
그사람들의 목숨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았던 우리를사정없
이 매도할 것입니다.
공의회에 모여든 추기경들의 대부분은 교황청의 지위에 대해
염려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적으로 가톨릭
의 신도 수는 급감하고 있었으므로 교황청은 전세계의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경우 자연히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문제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곧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의식하고 있
는 추기경들과 교황의 측근들에 의해 묻혀버리고 말았다
예언은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성모님의 계시
입니다.
추기경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청의 입장을 구태여 따질
필요도 없이 예언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성모 마리아
의 계시였다. 전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성모 마리아의 예언이라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만의 종교에 극도로 충실한 추기경들
의 원칙이었다.
성경은 이미 하느님에게 자식을 제물로 내놓는 아브라함의 이
야기를 실음으로써 이런 경우의 지침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
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역대 교황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
실에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이내 의견
을 정리한 후 두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교
황에게로 눈길을 모았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
나서야 교황은 눈을 떴다.
카를 보이티와, 즉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롭고도 부드러운
표정의 얼굴을 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깊이 들여다보았
다. 이것은 그가 1978년 교황에 선출되고 나서 모든 회의의 결론
을 내리기 전에 항상 해오던 버릇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눈동자만은 어딘지 모르게 생기를 잃고 있었
다. 추기경들은 교황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망설임
을 읽어낼 수 있었다. 원칙이라면 이 사나이 카를 보이티와는 돌
과 같은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고, 이 점
은 교황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결론은 결코 추기경들의 몫이 아니었다. 데체 교황청
안에서 교황을 제외한 어느 누가 파티마의 예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하이재킹은 바티칸이
아닌 교황에 대한 도전이요 시험이었다.
그동안 교황은 파티마의 예언에 대한 공표를 수많은 사람들로
부터 강요당해 왔다 거기에는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뿐
만 아니라 가톨릭의 성직자들, 심지어는 바티칸 추기경들의 보
이지 않는 압력도 있었다. 바티칸 성청의 핵심 간부들은 교황만
이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일종의 소외감을 느끼
고 있었다.
의례적인 미소가 지나간 교황의 얼굴에는 이윽고 고뇌에 찬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비록 정치적 교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긴 했지만 표정을 관리하는 정치 기술이 이 폴란드인 교
황에게는 없었다.
기실 교황은 크게 고심하고 있었다. 이것은 교황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원칙에 관한 문제에서는 양보할 줄 모르는 교황
이지만 오늘은 너무나 다른 문제였다.
이제 한 시간 후면 비행기가 폭파되고 승객들은 소중한 목숨
을 잃고 만다 그렇게 되면 결국 바티칸은 풀 한 포기라도 귀중
히 여기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어기고 대답 한마디로 살릴 수 있
었던 수많은 승객의 목숨을 잃은 원망을 홀로 들어야 한다. 그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결정은 가뜩이나 줄고 있는 신도들의
수를 격감시킬 것이다.
맨 처음 발언한 추기경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까
짓 예언이 무엇이기에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버려야 하느냐
고 묻는 그 추기경의 항변은 정당하고 인간적인 것이었다. 바티
칸은 명분을 잃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추기경들은 교황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잘 이해했다. 그들은
아무리 원칙의 신봉자라 하더라도 바티칸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
하지 않을 수 없는 교황의 입장을 알았고, 그런 시각에서 교황의
고뇌를 이해했다.
그러나 정작교황의 고민은 추기경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에서 벗어나 있었다. 교황은 최고 결정권자이고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성모 마리아의 예언이 아니라 하더라도
납치범의 협박에 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점은사건 해결에 있어 인도적 측면에 비중을 두는 추기경
들이 간과하고 있는 지도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교황의 격심한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협박에
대한 답변 때문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교황은 부속
기도실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기도를 올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이 안정되지 않았다.
하필이면 왜 파티마의 예언인가 기이하게도 증오와 더불어
비행기를 납치하면서까지 예언을 알고 싶어하는 그 수도사에 대
한 동정과 연민이 교황의 가슴을 무섭게 후벼대고 있었다. 한 번
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수도사였지 만 이 사람은 이상하게도 그
언젠가 만났던 엘살바도르 대주교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로메로.
그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에 와서 보름 이상이나 기다렸
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 불길처럼 타오르던 해방신학이 못
마땅했던 교황은 마지못해 그를 만나기는 했지만 이미 대화의
문은 철통처럼 잠겨 있었다.
자신의 애원이 거절당하자 엘살바도르 대주교의 두 눈에 어리
던 그 고독하고 절망적이던 눈빛이 기도를 드리는 내내 교황의
가슴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3주일 후 로메로는 미사를 드리던 도중 가슴에 총을
맞고 운명했다
교황은 몇 날 밤을 고통과 회한으로 몸서리치며 기도에 매달
렸던가 그날 로메로를 지지하는, 아니 그의 수고를 위로하는 단
한마디의 말만 건넸더라도 기꺼이 민중 속으로 뛰어든 그 대주
교는 독재자의 테러에 그토록 무참하게 희생당하지는 않았을 것
이다.
그가 교황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
자 독재 정부는 그를 제거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는 미
사 도중 한 킬러의 총을 맞고 즉사하고 말았다. 교황은 고뇌했
다 자신이 로메로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로메로를 향한 연민의 정이 왜 비행기를 납치한 다우
니라는 이름의 수도사에게서 되살아나는지 교황은 이해할 수 없
었다 아마 이 사람도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몰랐
다. 예언은 공표될 수 없다는 자신의 한마디에 의해.
바티칸의 중요한 인물이 모두 회의장에 모여 있는 두 시간 동
안 정작 가장 중요한 한 추기경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회의의 엄숙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에 그는 바티칸의 깊숙한 곳에서 외부로 향하는 전화
기에 나직한 목소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교황청에서는 절대로 예언을 공개할 수 없소. 하지만 비행기
가 납치되고 승객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발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상황이 급해지면 예언은 공개될
수 있다고 보도가 나갈 것이오. 귄터,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 것이오.
프랑스의 특수부대 장 다르므가 비행기에 침투한 것은 납치범
의 요구 시한이 불과 30분 남아 있을 때였다.
창설 이후 단 한 번도 테러 진압에 실패한 적이 없는 이 부대
에게도 이번의 작전은 뜻밖에도 쉽지 않았다 그것은 납치범의
정체가너무도 낯설어 약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해진 바로는 그가 매우 민감한 폭발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그 무엇보다도 승객의 안전을 제일로
생각하는 경시청의 협상 전문가 크레망은 특수부대의 작전을 극
구 반대했다. 일단 예언을 공개하겠다고 수도사를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설사 그까짓 예
언쯤 공개하면 도대체 뭐가 어떻단 말인가. 그 예언이 공개된다
고 세상이 뭐가 달라지겠는가
크레망은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역할이 누구보다도 중요하
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유능한 협상 전문가는 갑자기 상황이 긴박하게 돌
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피납기의 착륙 초기 상황을 장악했던 자
신이 어느 순간 갑자기 잊혀져버리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위
험 천만한 상황에서 장 다르므가 갑자기 투입된 것이다
장 다르므는 소음 장치가 장착된 특수 용접기로 일등석 전용
의 문을 따냈다 등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
던 다우니는 다섯 명의 요원이 바싹 다가갔을 때에도 메인캐빈
의 한쪽에 승객들을 몰아놓고는 그들의 불편에 대해 사과하고
있었다.
그림자같이 다가간 폭발 전문가가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다
우니의 손목을 빡 붙잡자 또 한 사람의 요원이 번개같이 그의 손
에 들린 검은 봉지를 나꿔챘다. 그것으로 상황은 끝이었다
아무런 무기도 흉기도 없는 이 나약한 수도사의 양팔을 억센
요원들이 좌우에서 끼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었다. 실제 요원들
은 그의 양팔을 꽉 붙들었다. 위험은 끝난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승객들뿐만 아니라 요원들도 놀라고 말았
다. 몇 발의 총성이 들리면서 수도사의 허리가 푹 꺾여졌던 것이
다. 특공 팀장이었다
요원들은 그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작전 수칙을 위반
한 것을 알았다.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 범인을 살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다우니의 죽음과 함께 파티마의 제3의 예언도 급속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이것이 그가 전혀 무력한 상황
에서도 죽어야만 했던 이유였던 것이다.
사건이 종결된 후 교황청에서는 일단의 사람들을 아일랜드로
보냈다 아일랜드 경찰보다도 더욱 깊숙이 수도원을 조사한 교
황청의 사람들은 다우니가 비행기를 납치한 것은 한 사람과의
오랜 교리 논쟁을 통해서 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몇몇 핵심적인 추기경들이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다우니의 배
후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다
우니가 가톨릭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교황청을 안심
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다우니
와 오랫동안 교리 논쟁을 벌여온 사람이었다. 현재로서는 그가
다우니와 어떤 내용의 교리 논쟁을 벌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충실한 가톨릭의 수도사이자 기독교 신비주의자였던
다우니가 그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신비주의에 대한 더욱 강렬
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듯했다. 다우니는 얼마 동
안 한국에서 봉직한 적이 있었고, 그때에 그 사람을 사귀게 되었
던 듯했다.
주변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최근까지도 무수한 서신 왕래를
통하여 그 한국인과 교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교황청의 우려는 다우니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그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그는 급작스레 교황청에서 주목
하고 감시하는 세계 각지의 제 1급 중요 인물들 중 하나로 떠올
랐다. 그가 바로 사도광탄이었다.
데스탱은 술잔을 놓으며 프파이유에게 말했다
다우니는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에서 특공 팀장의 총격을 밭
고 즉사했어. 특공 팀장의 이런 행동은 살인으로 求단될 수도 있
었지만 워낙 중요한 사안이었던지라 단 한 명의 승객도 다치지
않고 구조했다 하여 오히려 표창을 받았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가 살아 재판이 진행되었다면 세상은
온통 파티마의 예언 이야기로 떠들썩 했겠지 .
당시 바티칸의 입장이 매우 곤란했어. 윗선에서 거래가 있었어
그런데 다우니는 어떻게 해서 사도광탄이라는 한국인과 교리
논쟁을 벌이게 되었나?'
확실한 것은 몰라. 교황청에서 기록을 다 가져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탐문 수사 등에 의해 어느만큼은 알게 되었지. 다우니는
아일랜드 주교회의 추천을 받아 한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어. 거기서 그는 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 청년은 지극히
동양적인 방식인 자기 속으로의 몰입 이라나 참선이 라나 좌우간
그런 방법을 통해 깊은 정신 세계에 도달했다는 거지 어쨌든 그
청년은 다우니로서는 도저히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해할 수도 없
는 말을 하곤 했대 둘은 자연스럽게 신앙의 문제를 얘기하기 시
작했고 다우니는 차츰 가톨릭만이 세상의 진리가 아니라는 청년
의 사상에 빠져들었던 모양이야. 청년은 가톨릭이 독선에서 벗
어나 이제껏 전세계의 타종교와 각 민족의 고유 문화에 대해 저
지른 죄악을 회개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러면서 그
는 파티마의 제3의 예언이란 성모마리아가 직접 가톨릭의 죄상
을 질타하고 참회를 촉구하는 내용이지만 교황청이 은폐하고 있
다고 주장한 거야.
그 예언은 마리아가 교황에게만 공개하라고 했다며.
그 청년은 그것도 가톨릭의 속임수라고 했어 세상의 예언이
란 모두 공개되었지 은폐된 것이 없었다는 거지. 들으면 사람들
에게 전하는 것이 예언의 본질이라고 하면서, 가톨릭이 거듭나
기 위해서는 교황이 그 예언을 공개해야만 한다고 했지. 그의 말
과 인생에 영향을 받은 다우니는 그것이 종교인의 참된 자세라
생각하고는 아일랜드로 돌아와서 고민 끝에 결국은 범행을 결심
한 것으로 추정돼.
그러니까 엄밀히 얘기하면 경찰의 수사를 통해서는 사도광탄
이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거지?'
그렇지 그가 위험 인물이라는 것은 교황청의 결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