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궁남지. 부여 궁남지는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백제 무왕의 이름은 서동요로 유명한 "서동(마를 캐는 아이)"으로 어릴적 홀어머니를 모시고 마를 캐서 팔았으며 이 아이가 마를 캐서 팔아 살림을 꾸렸기에 사람들이 "맛동"이라 불렀다. 맛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매우 아리땁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경주로 달려가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동요를 지어 부르게 했다. 국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향가로 꼽는 "서동요"가 경주 도성 안에 쫙 퍼졌다. 이 소문이 마침내 진평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진평왕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겼고, 신하들은 왕실의 권위를 타락시켰다며 선화공주를 먼 곳으로 유배 보내자고 했다. 공주가 유배의 길을 떠날 때 왕비는 황금 한 말을 주었다. 서동은 공주를 호위하면서 길을 따라왔다. 결국은 서라벌에 서동요를 퍼트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했다. 서동이 백제 제30대 왕이 된 후에는 익산 미륵사를 건축토록 하였다.
※ 부여에는 백제 때 만들어진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는데 이 탑에는 멸망한 백제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 1층에 새겨진 "대당평제국비탑"이라는 글자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것을 기념하다"라는 뜻으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겨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