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 치도 안 되는
혀의 놀림에 곧잘 속아 넘어간다.
진정한 변설은 세 치 혀로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뒤집고
했던 말을 안 했다고 우기고
하지 않은 말도 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그것이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에서라면
무서운 세균과 무엇이 다른가?
한마디의 말이라도 생각을 거듭한 뒤에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엔 한마디 말로써 천 냥 빚을 갚는 사람도 있고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람도 있다.
말이란 것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사람의 혀는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와 같다.
혀를 통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칼을 보라 똑같은 칼이라 하더라도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면 아름다운 칼이 되지만
강도 짓을 하는 데 사용하면 무서운 무기가 되는 법이다.
말도 칼과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칼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말이다.
칼은 형체가 있어 용광로에 넣고
호미 따위로 바꿀 수 있지만 말은 형체가 없지 않은가?
형체 없는 말을 어떻게 다를 것인가?
왜 침묵을 두고 금이라고 했는지 깨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어떤 훌륭한 변설도 침묵보다 값질 수는 없다.
말은 한 번 뱉어 내면 주워 담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마음속에 상처로 남은 치명적이 독과 같은 것이다.
말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인격에 따라 달라진다.
뽕잎을 따 먹은 누에는 비단을 자아내지만
찬란한 아침 이슬을 머금은 독사는 독을 뿜는다.
신중한 말은 금이고
현란한 말은 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말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말은 비단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힘이 될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지독한 독설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아서
한마디 말이 사람을 이롭게 함은 소중하기가 천금 같고
한마디 말이 사람을 속상하게 함은 아프기가 칼에 베이는 것과 같다
혀에게 재주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비밀을 지켜라
혀를 움직이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아라 하는 말을
항상 혀에게 가르쳐도 혀는 어느새 그것을 잊고 만다.
그것은 혀에게 뼈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입안에 도끼가 함께 생긴다.
그것을 잘 간수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 몸을 찍나니
그것은 세 치 혀를 잘못 놀리기 때문이다.
말이란 모양도 없고 흔적도 남지 않지만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도저히 주어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이란 입 밖으로 내보내기 전에
반드시 돌아올 결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반대로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고 신세를 망치는 일도 허다하다.
화가 난다고 남을 비방하거나 질투하면
그 죄는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올 뿐이다.
입 안에서 생긴 도끼가 자기의 발등을 찍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입 안의 도끼로 자신을 망치려 하고 있다.
누구든지 발등이 찍히지 않으려면
입 속에 있는 도끼를 잘 간수해야 한다.
첫댓글 공감하는 좋은 글에
머물러 봅니다 ^^*^^
좋은 글에 공감함니다 죄는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 오게 되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