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 (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미국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14일(현지시간) 실린 글을 공유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옮긴다.
슬픔에 관해 전문가가 되는 일은 내가 철이 들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꿈꿨다. 정신건강을 추구하며, 난 우리 아들이 우울증, 자폐증, 불안감과 맞서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담 간호 수련생으로서 난 훈련이나 죽음과 슬픔을 알아내는 청사진을 내게 제공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전 남편 찰리가 마흔다섯 살에 극단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열아홉 살 아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잃었다.
두 비극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누구도 이런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대단한 두 남자의 삶을 존중함으로써 난 기쁨의 눈물로 바꿨다.
남은 아이들과 죽음과 슬픔을 논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찰리가 죽었을 때 우리 아이들은 각각 열여덟 살, 열 살, 일곱 살이었다. 아빠가 죽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해본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열여덟 살 딸에게 아빠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을 때 난 솔직 담백하게 했다. 열 살과 일곱 살 아들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많은 것을 흐릿하게 말했지만, 난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자살"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으며 그가 스스로 목숨을 거둔 방법을 묘사하지 않았다.
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으며, 답보다 많은 의문을 남길 여지가 있는 의학적인 은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 아이들은 내게 더 복잡한 질문들을 했으며. 난 기억을 되살려 질문한 것들에 관해서만 답했다.
아이들은 나이 들수록 더 특정한 후속 질문들을 했다. 아들들이 성인이 됐을 때 우리는 솔직히 터놓고 모든 자세한 것들을 논의했다. 우리 집에서는 어떤 토론도 제한 없었다.
이런 어려운 토론을 갖는 것은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나중에 다른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는 일에 뜀틀이 될 수 있다. 불행하게도 난 우리 아버지가 예기치 않게 돌아가신 지난해 6월 죽음에 대해 또 가족 토의를 해야 했다. 석 달 뒤, 우리 아들 재커리가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극단을 선택했다.
우리 사랑하는 재커리를 아빠와 똑같은 방식으로 잃은 것은 최악의 경험이었다. 최선을 다한 우리의 노력에도 난 우리 아들을 살릴 수 없었다. 난 남은 아이들을 다른 황망한 상실로부터 구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고통을 헤쳐나오는 데 도울 수 있었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슬픔을 함께 이겨냈다.
슬픔은 용서하지 않는 과정이다. 그것은 잠시 사라지지만, 복수심을 갖고 돌아와 우리를 더욱 뒤로 물러나게 한다. 내가 배운 것은 슬픔을 둘러싸거나 그냥 넘어가거나 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치유가 있기 마련이다. 수용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름길이란 없다. 누구도 가슴을 쥐어뜯는 슬픔에서 예외가 없다.
잭이 죽은 지 다섯 달이 돼 간다. 우리 모두는 치료를 받으며 암흑으로부터 천천히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영토에 다시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고통이 조금씩 물러서게 될 것이라고 계속 희망하고 있다.
우리는 하는 모든 일에서 그를 생각한다. 잭의 죽음은 트라우마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없을 복원력과 결단력을 우리에게 줬다. 그는 우리에게 변함 없는 목적을 갖고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