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전 확인해야 하는 환자 투약 정보 부족
코로나 치료제 전담 약국도 제한적
처방·조제 기관 확대, 대국민 홍보 필요
처방환자 정보 연계 미흡, 처방 의료기관·조제약국 부족 등으로 인해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처방이 차질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DB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방역당국이 중증화·사망 예방 효과가 입증된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또는 MSD의 '라게브리오' 등 코로나 경구용 치료제를 적극적으로 처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17일 11시 기준 먹는 코로나 치료제의 처방률은 약 20% 수준이다. 지난해 초 처방률이 4%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높다고 보긴 어렵다.
먹는 코로나 치료제는 출시 당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모았다. 그럼에도 처방률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고는 충분, 유효기간 만료 폐기 걱정할 상황
먹는 코로나 도입 초기 처방률이 낮았던 이유는 물량 부족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효기간 만료로 인한 폐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고가 쌓여 있음에도 처방률이 낮다.
팍스로비드 재고는 이달 11일 12시 기준 61만 9543명분, 라게브리오는 11일 18시 기준 6만2711명분이다. 정부가 8월 초 팍스로비드 80만명분, 라게브리오 14만2000명분을 추가 구매하기로 결정해 재고량은 더욱 증가할 예정이다.
현재 먹는 코로나 치료제는 유효기간 만료로 인한 폐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팍스로비드의 경우, 유효기간이 12개월로 일반 경구약보다 짧은 편이라 당장 6개월 후인 2023년 2월부터 유효기간 만료 물량이 발생한다. 라게브리오는 유효기간이 24개월이라 팍스로비드보다는 여유가 있으나 초기 도입분의 유효기간은 2023년 9월이다.
낮은 처방률로 인해 재고가 쌓이면서 보건당국은 팍스로비드의 유효기간을 6개월 연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화이자는 경구용 치료제 유효기간 연장 관련 안정성 시험을 진행 중이다. 질병청은 화이자와 팍스로비드 사용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팍스로비드 재고 물량은 2023년 2월에서 2023년 8월로 연장된다.
◇깜깜한 처방환자 정보, 찾기 어려운 코로나 약국… 난감한 현장
현장 의료진들은 코로나 중증화 고위험군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먹는 코로나 치료제 처방을 희망한다. 그럼에도 처방을 망설이는 이유는 정부의 미흡한 시스템 때문이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환자에게 안전하게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처방 후 심평원 사후 보고, 한 번에 진료를 봤더라도 다른 약과 코로나 치료제를 분리 처방해야 하는 절차 등을 폐지했음에도 여전히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하나이비인후과 장규선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이전보다 처방 절차가 간소화된 건 맞지만, 여전히 처방은 힘들다"고 말했다. 장 전문의는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의 주 처방 대상인 60세 이상은 기저질환이 많아 복용하는 약도 많은데, 정부가 처방에 활용하라고 하는 DUR(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에선 병용 금기 약물밖에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팍스로비드의 경우, 병용 투약을 할 때 모니터링이 필요한 약, 용량조절이 필요한 약물 등이 있는데 DUR에는 이런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환자가 투약하는 모든 약을 확인할 수 있는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알아보기' 서비스가 심평원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되고 있으나, 처방 대상자인 60대 이상이 이를 아는 경우는 없다. 의사가 이를 이용해 일일이 확인해 처방하면 15~20분 이상이 소요돼 전반적인 코로나 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긴다.
상급병원의 경우, 코로나 환자 진료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는 일단 병원에 들어올 수 없어 진단을 놓치고, 확진자는 반드시 별도의 격리실에서만 진료를 받고 먹는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받아야 하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격리시설이 여유롭지 않다.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는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선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려면 일반 환자와의 분리를 위해 격리장소, 인력, 환기시설이 모두 갖춰져야만 진료가 가능하다 보니 진료부터 어려워 처방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긴급해 응급실을 통해 병원을 찾은 확진자에게도 처방은 불가능하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김봉영 교수는 "어떤 행정적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원, 외래환자에겐 처방 가능한 치료제가 응급실을 통해 방문한 확진자 또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에겐 처방대상임에도 처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껏 처방을 해도 환자가 약을 받아가기가 어렵다. 리앤홍 이비인후과 이현종 원장은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는 코로나 치료제 조제를 전담하는 약국에서만 약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대학병원이나 몇몇 대형 병원 주변 외에는 전담 약국이 많지 않은데, 코로나 확진자에게 이 약을 받을 수 있는 약국을 찾아 헤매게 할 수 없으니 처방을 적극적으로 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12일 기준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 조제가 가능한 약국은 전국에 2175개소뿐이다.
◇처방·조제 기관 확대, 적극적 대국민 홍보가 우선
그렇다면 진료 현장이 요구하는 개선사항은 무엇일까? 현장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처방기관과 조제 약국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 처방이 가능한 진료기관의 수는 매우 적다. 진단부터 투약까지 가능한 '원스톱 진료기관'은 1만 개소가 있으나, 이 중 야간에도 이용 가능한 종합병원급 이상에서 먹는 치료제를 처방하는 곳은 274곳, 상급종합병원은 7곳뿐이다.
천은미 교수는 "대학병원의 경우, 일반 외래 환자 진료가 끝나는 4시 30분 이후에 코로나 환자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해주는 방법 등을 이용하면, 일반 환자와 분리한 외래진료가 가능하다"라며 "특히 고위험군 환자는 대학병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기에 이 방식을 이용하면 중증화·사망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진과 국민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봉영 교수는 "처방 관련 절차조차도 너무 자주 변경돼 전문가인 의사들조차 혼란을 겪는다"라며 "최소한 처방하는 사람이 혼란스러워 처방을 못 하는 일은 없게 해야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규선 전문의는 "경구용 치료제 투약대상인 70대 이상은 두 약의 존재를 몰라 거부감 때문에 약 처방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라며 "약이 필요한 대상에게는 정부가 더 적극적이고 세밀한 홍보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DUR 개선 등을 통해 의료진이 보다 처방 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시스템이 변경되어야 한다"고 했다.
◇처방대상 확대는 불투명
보다 적극적인 중증화·사망 예방을 위한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 투약 방안 중 하나로 처방대상을 50대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거론되고 있다. 4차 접종 대상자인 50대 이상까지 경구용 치료제 처방대상을 확대하는 게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방역당국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질병청은 팍스로비드 처방 대상 확대 계획과 관련한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의 서면질의에 "팍스로비드 처방 대상은 식약처 긴급사용승인 사항 내 유효성 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중증으로의 진행될 위험요인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설정했으며, 이는 설정된 처방 대상자 군에서 팍스로비드 효과가 유효하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이들까지 처방대상에 포함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팍스로비드는 기저질환 등 위험요인을 가진 50대를 포함한 12세 이상 환자에게만 처방이 가능하다.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