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둘이서 단출하게 살았는데 건강이 나빠지자 어머니는 그를 공기 좋고 물 맑은 외삼촌댁으로 보냈다.
외삼촌댁은 시골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자신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외사촌 누나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알리사'였다.
'제롬'은 '알리사'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마치 운명 같았다.
'알리사'도 '제롬'이 싫지 않았다.
마음속에 그에 대한 호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이 그녀를 자꾸만 가로막았다.
사랑이나 결혼보다는 종교안에서의 경건함과 기도하는 삶이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길이라 믿고 있었다.
가끔씩 '알리사'도 '제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곤 했었다.
"'제롬', 나도 네가 좋아.
네 곁에 있으면 나도 행복하고 좋아.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행복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믿어."
"'알리사', 우리 인간들의 소망 중에 사랑과 행복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있지"
"그게 뭔데?"
"절제와 말씀, 즉 바이블에 기초하는 삶이지"
'알리사'도 '제롬'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종교적인 신념과 성스러운 삶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앙드레 지드'가 쓴 소설, '좁은 문'의 뼈대였다.
어느 주일날. 두 사람은 여느 성도들과 같이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졌다.
그러나 몇 줄 앞에 앉아 있는 '알리사'만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제롬'의 귓가에는 설교가 들어올 리 없었다.
살령, 목사님의 설교가 가끔씩 들린다 해도 '알리사'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환되어, 마치 그녀가 제롬의 귓가에 대고 조곤조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처럼 아득하고 조그맣게 들렸다.
"성도 여러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세요.
'멸망'과 '파멸'에 이르는 문은 본디 크고 넓어 많은 이들이 몰립니다.
그러나 '생명'과 '영생'으로 가는 문은 좁고 낡아 찾는 이가 매우 적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문으로 가시겠습니까?"
목사는 설교시간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이런 류의 메시지를 자주 전달하곤 했었다.
'좁은 문'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의지와 갈망 그리고 절제와 헌신을 의미했다.
또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며 신의 뜻을 간구하는 정금같은 신앙생활을 뜻했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다.
일생 동안 탐닉과 쾌락을 멀리하고 청빈과 고행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지난한 길이었다.
'제롬'이 주장하는 불타는 사랑과 소소한 행복.
'알리사'가 생각하는 경건한 신앙과 절제된 삶의 추구.
양자 사이엔 너무 큰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일 터였다.
'알리사'도 그녀의 가슴 속에 일렁이는 사랑의 감정 때문에 온갖 번민에 휩싸이이도 했었다.
하지만 끝내 '사랑'보다 '종교'를 선택했다.
'제롬'의 애틋한 청혼을 거절한 '알리사'는 엄격한 생활윤리를 강조하는 청교도적인 삶에 운명처럼 순응했다.
그리곤 흔들림 없이 매진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요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알리사'가 죽은 뒤에 발견된 그녀의 낡은 일기장.
그 안에는 '제롬'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과 종교적인 삶 사이에서 숱하게 갈등했던 그녀의 절절한 내면의 고백들이 빼곡했다.
냉철한 금욕주의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번민했던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일기는 여과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눈물겨운 감성이었고 가슴 먹먹한 외로움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허무과 공허의 심연이 살아 있는 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듯했다.
그것은 슬픈 침묵 속에 가려진 애절한 독백이었고 절대로 아물지 않았던 영혼의 상처였다.
사후에 발견된 '알리사'의 일기장을 통해 껍데기와 알맹이, 종교와 인간애, 격식과 실제, 이상과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종교와 사람, 신앙과 삶에 대해 근원적안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던 '앙드레 지드'.
그는 194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당대 최고의 문호였다.
하지만 그도 역시 소싯적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지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 역시 청교도적 금욕주의의 피해자였고 한평생 욕망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 볼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아니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환경적 영향 속에서 성장했다.
그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주변 환경을 통해 소싯적부터 심신에 각인된 종교주의적 교육과 생활패턴은 한 인간의 긴 생애에 강력한 멍에를 씌우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의 문은, 당신의 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욕망과 절제의 밸런스는 어떻게 유지하고 통제할 것인가?
'앙드레 지드'는 '제롬'과 '알리사'를 통해,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이 선택한 문은 무엇이냐고.
좁고 낡은 문인지, 넓고 큰 문인지 말이다.
꼭 20세기의 종교와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21세기의 물질과 정신, 소유와 나눔, 탐욕과 박애, 거짓과 투명 같은 디지털 테마까지 함께 아우르는, 큰 틀에서의 문을 묻고 있음을 본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그 무수한 선택의 묶음과 총체가 결국은 자신의 삶이자 라이프 스토리가 된다.
불변의 진리다.
길고 긴 인생길.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긴 세월 동안 매일 새벽바다 자신이 신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던 대로 각자 올곧고 투명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많이 웃음 짓고 한번 더 배려하며 내내 복된 시간이 되기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