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 '엘 시드'(El Cid, 1961), '셜록 홈즈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Sherlock Holmes, 1970)에서 열연한 프랑스 여배우 제네비에브 페이지가 14일(현지시간)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손녀이며 여배우인 조이 기예마우드는 할머니가 파리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AFP 통신에 밝혔다.
50년 이상 영화계에서 활약한 고인의 주목할 작품은 '팡팡 튤립'(Fanfan la Tulip, 1952), 로버트 미첨과 열연한 '배신'(Foreign Intrigue), 데이비드 니븐과 함께 한 'The Silken Affair'(이상 1956),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그랑 프리'(Grand Prix, 1966), 테렌스 영 감독이 연출한 '비우'(悲雨, Mayerling, 1968), 찰스 비도르 감독이 촬영 중 사망해 조지 쿠커로 교체된 '끝나지 않는 노래'(Song Without End, 1960) 등등이다.
1967년 스페인 감독 루이스 브뉘엘은 고인을 조지프 케셀의 1928년작 소설을 각색한 '세브린느'에 고급 홍등가 소유주이며 운영자인 마담 아나이스로 캐스팅했다. 영화는 성생활 없는 결혼 생활 때문에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만 성매매에 나서는 세브린느 세르지(카트린 드뇌브)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페이지는 세르지에게 별명 'Belle de Jour', 거칠게 옮겨 '그날의 미인'을 붙이게 된다.
아나이스 부인은 요구도 많고, 어리석음을 용납하지 않는 여성으로, 드뇌브의 캐릭터를 향해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설정돼 영화에서는 둘이 아주 짧게 입맞춤하는 장면이 나온다. 페이지는 국립영화평론가협회로부터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됐고, 이 작품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일 년 전에 고인은 '그랑 프리'에서 페라리 드라이버 장피에르 사르티(이브 몽탕)와 소원하지만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아내로 짤막하게 얼굴을 내민다.
이탈리아와 미국 합작의 중세 이야기 '엘 시드'는 고인을 교활한 우라카 공주로 완벽하게 캐스팅했다. 찰튼 헤스튼과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이 영화는 제작비 600만 달러가 투입된 스펙터클로 인터미션(막간 휴식)을 포함해 3시간 이상 상영됐다. 예고편은 “위대한 모험, 위대한 러브 스토리, 대 스타들”이라고 주장했다.
197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빌리 와일더 감독은 로버트 스티븐스를 명탐정으로, 콜린 블레이클리를 왓슨 박사로 기용한 영화 '셜록 홈즈의 사생활'을 공개했다. 고인은 사라진 엔지니어 남편을 찾아달라고 홈즈에게 부탁하는 의문의 벨기에인 의뢰인을 연기한다. 이 영화 제작은 주요 장면으로 만들어진 9m 길이 네스호의 괴물 모델이 보트로 견인되다 호수에 가라앉자 중단됐다. 고인은 1969년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우리는 네스호의 괴물을 잃어버렸지만, 그(와일더 감독)는 그렇게 많이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자신이 제작자인지, 감독인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냥 넘어가고 그것을 만들고 사라진 것에 대해 놀란 남자를 다독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고인은 1927년 12월 13일 파리에서 제네비에브 본진이란 본명으로 태어났다. 부친 자크 폴 본진은 예술 중개상이었으며 크리스천 디오르와 협업하는 갤러리를 개관한 컬렉터였다.
초기 출연 작품 중에는 프랑스 모험 영화 '팡팡 튤립'으로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제라드 필리페가 주연했다. 고인은 허세를 부리고, 버릇 없는 육군 자원병 팡팡에 의해 강도 일당으로부터 구조되며 감사의 표시로 튤립을 팡팡에게 준다.
그녀의 영화 이력서에는 블랙코미디 'Buffet Froid'(1979), 끌로드 밀러의 'Deadly Circuit' (1983)과 로버트 알트먼의 'Beyond Therapy'(1987) 등이 있다.
고인은 또 도드라진 연극 여배우이기도 했다. 주요 연극 출연작으로는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The Bitter Tears of Petra von Kant, 1980)가 있고, '콜롱브'(Colombe)로 1996년 몰리에르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기업인 장끌로드 부야드와 1959년 결혼해 남편이 2011년 세상을 뜰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