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쉬지 않고 촉촉히 대지를 적시는 토요일,
이맘때 쯤 야생화 보기엔 '천마산이 최고'라는 성오를 잠실역에서 만났다.
34년전 천마산을 가보곤 이상하게 정감이 안 가서 외면 해 온 그 산이었기에 그동안 얼마나 변했나도 보고싶었다.
그러나... 역시 천마산은 나와는 인연이 안되는 산인가 보다. 대신 오늘 준비된 인연은 따로 있더라.
거짓말 같은 다음의 얘기-
꼼꼼히 계획했던 천마산의 진입로를 애초부터 놓쳐버리자 "그렇담 불암산 갈까? 수락산은? 의정부쪽 소요산은 어때?" 하며 성오와 난 행선지를 함부로 막 바꾸는 것도 그랬고, 비가 이렇게 쉬지 않고 오는데 그쪽은 암산이라 미끄럽네 뭐네 하며, 어찌 산행의 의지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 노원구 쪽의 시내를 빙빙돌다 난 성오에게 이런 말을 했지.
" 이럴줄 줄 알았다면 차라리 불광동에서 오르는 쪽두리봉이나 갈 걸 그랬나? 그곳이 말야~ 한비야가 글을 쓰다가 글이 잘 안써지면 오르곤 했다던 곳이거든?" 그렇게 한비야 얘기를 시작했는데~
거 정말 이상하데. 전혀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우린 국민대 옆 북악터널 매표소쪽에 딱 멈춰 서서 안개에 휘감긴 북한산을 바라본 후, '여길 오늘의 목적지로 하자'며 우의를 챙겨입고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목표는 대성문으로 정한다. 최초 천마산으로 잘 짜여진 계획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무계획이 오히려 정해진 계획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비 오는 탓에 축축히 젖은 산길은 등산객도 없어 오히려 걷기에 좋다. 들머리가 순하고 착한 곳. 그러나 세상일이란 너무 순조로우면 탈이 나는 법인가? 코스를 만만히 본 게 잘못이었다. 주위가 온통 안개에 가득차 아무것도 안 보이는 탓에 길을 잃는다. 예전에 와 봤던 코스인데도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알바를 하고서야 온 길 되돌아 가 결국 제대로의 길을 찾는다. 능선에 올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비로소 안도감에, 저쪽 돌계단에서 물 한 모금 마시자 하곤 배낭을 막 내려놓는데~
눈썰미 좋은 성오가 내게 속삭이듯 뭐라뭐라 한다. "뭐? 뭐라고? 저 여자.....한비야....? "
앗! 그렇네. 우의로 얼굴을 푹 뒤집어 쓰고 있지만 분명 한비야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내가 좋아하는 열정의 화신 한비야를 여기서 만나다니... 그렇담 우리가 오늘 천마산의 진입로를 놓치고 다른 여러 산들을 떠올리다 북한산을 택했고 특히 한비야 얘기를 했던 것, 또한 북한산에서 길 잃고 알바를 한 것은 모두 그녀를 만나기 위함이었나? 이건 우연이 아니고 인연인가?
난 오래전 부터 한비야의 팬인지라 그녀가 현재 국제구호 개발기구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서 최근 그녀의 활동들을 잘 알고 있는데다 6년간 오지 여행을 하며 저술한 <바람의 딸,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비롯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등 그녀가 쓴 책들은 다 읽었고 그녀의 강연도 여러번 들었기에 한비야와 대화는 스스럼이 없었다.
대뜸 다가가 "한비야씨죠?" 하자 "네에~" 하며 반갑에 활짝 웃으며 씩씩하게 악수를 청한다.
"쪽두리봉은 놔두고 왜 이리 오셨나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거긴 우리집 뒤에 있는 산인데..." 하기에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2차 질문 바로 들어간다. "이란의 애인과는 아직도 만나나요?" 그러자, "그 분과는 연락이 끊겼어요~" 하며 자칫 슬플 수 있는 답변도 명랑하게 응수한다.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얘기들이기에 생전 처음보는 사이인데도 이런저런 과거 배경의 말은 전혀 필요없다. 그녀가 이번은 우리에게 묻는다. "대성문을 가신다고요? 지금 대성문쪽은 눈이 쌓여 있구요~오늘 비가 오니까...제가 추천 해 드릴 하산 코스는요~ 구파발쪽 계곡을 추천 합니다" 우리의 질문도 없었는데 정상 쪽의 상황 설명에서 하산코스까지... 군더더기 없는 대화, 씩씩하고 화통하다.
"차를 가져와 원점회귀 해야 한다"는 우리의 말에 "어머나! 그럼 조금만이라도 그 곳 맛만 보세요 오늘 같은 날엔 그 코스 너무 환상적이랍니다" 한다.
사진을 함께 찍으며 "이 사진 우리 동창 카페에 올려도 되죠?" 물으니 "아~ 그럼요" 하며 전혀 거칠게 없다는 듯 밝게 웃는 그녀를 직접 보니 실제 얼굴도 예쁘고 매력적이며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녀가 진짜 아름다운 이유는 도전과 봉사정신이 배경으로 깔려있어서가 아닐까?
세상에서 자기 하는 일이 심장 뛰는 일이라면 행복한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녀. 그래서 심장 뛰는 일에 열정을 다 바치는 그녀. 어떤 연예인을 만난것 보다도, 한비야 만난 기쁨에 "룰루랄라~" 마음이 절로 신나고 즐겁다.
그녀 말대로 대성문 주변은 눈이 덮여있고 걸맞게 찬바람도 쌩쌩 불어대어 누각에서 추워 덜덜 떨면서도 싸간 밥 맛나게 먹고 하산을 하는데, 이제 슬금 걷히는 안개로 시야가 트여 음지쪽은 몽울지고, 양지쪽은 활짝핀 진달래가 눈을 즐겁게 해 주니 내려오는 발걸음은 축지법 쓰듯 마냥 가벼워 몸도 마음도 상쾌한 토요일 오후였다.
대성문 오르는 길에 만난 한비야
안개에 휘감긴 대성문
주변은 눈이 흩뿌려져 있다
첫댓글 한비야씨가 58년생으로 알고있는데 사진에서는 굉장히 젊어보인다.몇년전 사진보다 훨씬 이뻐진것같기도하고---- 내가 남미여행에 홀딱 빠지게한책의 저자를 명진이가 만났구나--- 명진아 부럽다.
좋은 만남과 즐거운 산행이었구나~ ㅎㅎㅎ
우리 마누라 동갑인데 굉장히 젊게 보이네. 명진인 다 방면에 모두 전문가 수준이여...부럽네! 그 열정이.
그랴~ 부럽쟈? 하하하~ 모두들 고맙다. 위의 글을 한비야에게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산행을 하자고 요청도 했다. 워낙 바쁜 그녀라 어떨지 모르지만... 혹시 또 알아? 기다려보자.
어이구~솔직히 난 저책들 읽어보지 못했고 당연 저자도 몰랐어.. 명진이가 열정적 팬이라니 저 책들 사서 볼께~귀한분을 만났네~ 근데 산행중 알바가 머야?
흐흐~ 정식등산용어는 아닌데 길을 잘못들어 땀께나 빼는일을 뜻함 ~ 아르바이트를 원용한듯
Okay~Thanks 기현!
한비야라는 야생화를 북한산에서 보았구나.. 정말 인연일쎄~
밴쿠버 사모님한테 허락받구 사진과 글 쓰느거야? 멀리서 괜시리 불안해.........
규섭 걱정 해 줘서 고마운데... 내 만수무강은 지장 없응께 괜시리 불안해 하지 말것
맹진아. 니는 복도 참 많다. 함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 여인중의 한 그 녀였는데---.
바지런하니 이런만남도 있구나...좋것다...
잠깐이었지만 바람의 딸과의 만남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하는 산행이었지~~ 수고했다 명진아.! .. 그리고 언제 쪽두리봉에서 만나기로 했냐 ?. !! ㅎㅎㅎ~~~~
한비야의 책에서 페르샤의 왕자 같은 풍모라는 이란 남자 얘기가 나오는게 생각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