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수덕사
수덕사 일주문은 아담하다.
키 큰 어른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다.
예 고향 집 대문과 다름없다.
사액인 ‘德崇山 修德寺’가 눈높이에 있다.
소전 손재형(1902~1981)이 해서를 바탕으로
전서의 劃法을 담은 소전 특유의 행서이다.
運筆이 물이 흐르듯이 부드럽고 유연하다.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첫 글자인 ‘德’자에서 첫 획을 생략해 중복을 피한 솜씨에서 대가다운 소전의 기지를 엿볼 수 있다.
‘壬寅淸秋 素筌 孫在馨’이란 款識가 있다.
일주문 안쪽에 걸려 있는
‘東方第一禪院“도 소전이 썼다.
그의 글씨로는 흔히 볼 수 없는 전서다.
‘壬寅長月 素筌散人’이라는 관지와 2과의 도서가 있다.
長月은 9월이다.
이것은 소전이 1962년
寺額과 함께 쓴 것으로 보인다.
소전은 전남 진도 출신으로
書와 文人畵를 모두 잘했으며,
惺堂 金敦熙의 제자로 현대 한국 서예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회의원과 예총 회장, 국전 심사위원을 오랫동안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서예를 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전은 도쿄 우에노(上野)에 있는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가 세한도는
조선 땅에 있어야 하니
작품을 넘겨달라고 부탁했다.
손재형은 거액을 지불하고 세한도 등 추사 작품 7점을 찾아왔다.
추사의 ‘不二禪蘭’이란 작품도 이때 돌아왔다.
정인보는 세한도를 보고
이 같은 발문을 남겼다.
「국보 그림 동쪽으로 건너가니
뜻있는 선비들 처참한 생각 품고 있었네.
건강한 손 군이 한 손으로 교룡과 싸웠네.
반전되어 이미 삼켰던 것 빼앗으니
옛 물건 이로부터 온전하게 됐네.
그림 한 점 돌아온 것이
강산 돌아올 조짐임을 누가 알았겠는가.」
세한도는 우여곡절 끝에
2020년 손창근은 대를 이어 간직해 온
세한도를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대웅전은
‘圓譚’ 이라는 관지와 ‘眞性’, ‘圓譚’ 이라는 백문,
주문의 도서 2과가 있다.
고려시대의 목조건축의 優雅美를 잘 간직한 이 대웅전에는 1970년대 말까지 義昌君 李 珖(선조의 8남)의 글씨로 알려진 古格의 편액이 걸려 있었다.
圓譚스님은 修德寺 경내에 ‘冥府殿’, ‘圓通寶殿’, ‘梵鐘閣’, ‘普光堂’, ‘蘭若(예서)’. ‘黃河精樓’, ‘德崇叢林’ 등 많은 行草 편액 및 주련 글씨를 爛漫하게 남기고 있다.
전북 옥구 출신으로 7세에 벽초스님을 은사로 만공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당대 최고의 선필로 큰 글씨를 잘 썼다.
입적하기 전 보운스님과 작품을 받고 법문을 들었다. 그때 모습은 천진불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