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 위치. 사비문은 백제의 수도 부여(사비)로 통하는 관문이다. 지금의 부여에 있는 사비성은 백제 때 도읍 자체의 명칭이기도 한다. 백제 때에는 부여 일대의 평야를 사비원(泗沘原)이라 하고, 금강을 사비하(泗沘河)라고도 하였다. 백제가 협소한 웅진(熊津)을 버리고 넓은 들이 있는 곳에 보다 큰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천도한 것은 538년(성왕 16년) 봄이다. 무왕은 수도의 건설을 위하여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장(工匠)ㆍ화사(畫師) 등을 청하였다. 사비성은 이때 새로 쌓은 것이 아니고 수축만 하였다. 이 성은 부소산을 감싸고 있고 양쪽 머리가 낮게 둘러져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반월성(半月城)이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성터의 길이가 13,000여척이나 되며, 치소가 성 안에 있었다고 한다. 백제는 멸망하기까지 120여년을 마지막 수도 부여에서 마감했다.
※ 백제의 건국과 유래 :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이 오자 그를 태자로 삼자, 비류와 온조는 열명의 신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비류는 미추홀(인천)로 갔으며, 온조는 하남 위례성(몽촌토성 또는 풍납토성)에 도읍을 정하고 기원전 18년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 열명의 신하들과 건너다)로 정한다. 비류가 죽은 후 백성들이 위례성으로 돌아와 즐겨 따르므로 나라이름을 백제(百濟)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