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오해♡♡
전동차 속에서였다.
아직도 한낮엔 무더위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3호선 전동차 안
은 쾌적할 만큼 서늘했고 승객
도 과히 붐비지가 않았다.
기술의 발달 때문인지, 경제
성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1호선
보다는 2호선이 더 쾌적하고
2호선 보다는 3,4호선이 더
쾌적한 걸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늘 2호선을 이용 하기 때문에 약간 샘도 났다.
내 옆자리가 비자 그 앞에 서있
던 청년을 밀치고 뚱뚱한 중년
남자가 잽싸게 엉덩이를 들
이밀었다.
넉넉하던 자리가 꽉 차면서
내 치맛자락이 그 밑에 깔렸
다. 약간 멋을 부리고 나간
날이라
나도 눈살을 찌푸리면서 치
맛자락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꼼짝도 안 했다. 여간 무
신경한 남자가 아니었다.
나는 별 수 없어 그 남자를 툭
툭 치면서 내 치맛자락이 그의
엉덩이 밑에 깔린 걸 알려
주었다.
그제야 몸을 조금 들썩했을 뿐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워낙 몸이 뚱뚱해서 그랬겠지
만 반소매 밑으로 드러난 끈끈
한 팔로 양쪽 사람을 밀치는 듯
그의 자세 때문에 여간 거북
하고 불쾌하지가 않았다.
일어나버릴까도 싶었지만 갈길
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고, 승
객은 자꾸만 불어나고 있었다.
그가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하품을 하려면 그냥 할 것이지,
호랑이가 우짖는 것처럼
‘어흥!’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
며 가락까지 붙이니까 졸던 사람
까지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
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이야 그러건 말건 그는 자기
집 안방에서처럼 거침도 없고
눈치도 없었다.
나는 그런 남자 옆에 앉아 있다
는 불쾌감을 잊으려고 방금 탄
젊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부가 맑을 뿐 순수한 여자였
는데, 아주 화려한 모자를 들고
있었다.차양이 달린 하늘색
모자였는데,
차양 위에는 다시 금줄이 든
순백의 프릴이 달렸고 망사 베
일까지 늘어진, 좀처럼 시중에
서는 보기 힘든 환상적인
모자였다.
그 여자가 쓰기엔 너무 작았고
인형의 모자치고는 너무 크고
정교했다.
그 모자를 들고 있음으로써 그
여자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
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모자가
아니라 액세서리 인지
도 몰랐다.
그때였다. 내 옆에 앉았던
그 무신경한 남자가 엉거주춤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모자를 든 여자에게 손짓
을 했다.
그 여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그 남자도
그 여자가 보기 좋았던 듯했
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여자
에게 아부를 하다니.
오십도 넘어 보이는 남자가
20대의 젋은 여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습은 암만해도 부자연
스러워 보였고
흑심까지 있어 보이는데도
남자는 그 방면에도 여전히
무신경했다.
마땅히 사양할 줄 알았는데
여자는 고개만 까딱하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나는 그 여자가 만삭
의 몸임을 알았다. 나는 화려한
모자에만 정신이 팔려 그것
도 모르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라 그 여자 에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깜찍한
딸도 딸려 있었다.
자리에 앉은 여자는 딸을 끌어
당겨 무릎에 앉혔다. 그 여자는
딸에게 그 모자를 씌우지 않고
여전히 들고만 있었지만,
그 환상적인 모자를 쓴 여아
를 상상하는 건 뱃속이 간지럽
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더 즐거운 건 내가 여지껏 그
뚱뚱한 남자를 공연히 미워하
고 오해한 게 풀려서였다.
그 남자가 뻔뻔하고 무신경하
다는 건 순전히 나의 오해였다.
다시 한번 쳐다본 그 남자는
듬직 하고도 근사해 보였고
매우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한 몸이
자리를 내줌으로써 세 식구를
앉힐수 가 있었 으니 흐뭇할
수 밖에.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
도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겉보다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자가 멋있는 사람이 아닐까 ?
아니 ~
난 겉과 내면이 함께 아름다운
진짜 멋있는 사람으로 ~~
욕심일까 ~
- 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