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사진 / 변해명
여권사진을 찍는다. 사용기간을 연장하는데 전자여권을 내어준다며 사진을 다시 찍어 오란다. 오랜만에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가다듬고, 옷을 챙겨 입고 사진기 앞에 앉았다. 사진관에서 이런 사진을 찍기가 얼마만인가 어색하다. “가슴을 펴고, 얼굴을 약간 우측으로 돌리고, 여기를 보세요.” 기사가 렌즈 속을 들여다보다 내게로 와서 얼굴을 고정시키고 움직이지 말란다. 내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져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사진이 내 모습보다 예쁘게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금보다 젊어 보이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모습이기를 바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찍지. 벽에 걸어놓을 사진도 아닌데…’ 먼저 여권에 붙여진 사진이 마음에 들어 그 사진을 들고 나가고 싶었지만 마음뿐이다. 그 사진은 지금 찍을 사진보다 5년 쯤 전에 찍은 사진이니 보기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내일보다 젊은 날이니 그날의 사진이 어찌 오늘의 사진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요즘 모습을 여권에 붙여야 함은 당연하리라. 그래도 나는 지난 사진들을 머리에 떠올린다. 컴퓨터 속에 들어있는 사진들을 골라 내 모습만 이리저리 뽑아본다. 그 속의 사진들은 정지된 시간의 틀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사진도 다 좋아 보인다. 그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 사진이 못마땅해서 버리고 싶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좋아 보인다. 그래서 골라보고 싶은 사진이 참 많다. 하지만 체념한다. 여권은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승인받는 증표다. 거기에 붙은 사진은 나를 대신하고 지금의 내 모습과 같아야 한다. 그런대도 나보다 훨씬 젊은 사진만 생각한다. 책을 만들거나 잡지에 글을 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현재가 아닌 한참 전의 모습의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진이 현실의 모습보다 젊고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학자 한 분이 타계하셔서 그분의 사진을 수집해 본 일이 있다. 그가 발행한 책에 실린 사진들이 책이 나오는 연도에 따라 사오십 년의 시간을 달리한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이르자 연륜이 묻어나는 사진인데도 한 모습의 사진만을 즐겨 사용한 것을 보게 되었는데, 비로소 그 사진이 그분을 대표하는 사진 같았다. 노년의 사진이지만 그 사진 속에는 그분의 삶의 여정이 담겨 있고, 인격과 인품이 베어 나와서 좋아 보이는 사진이었다. 그 후의 모습은 담기지 않은 것을 보면 더 이상 당신의 모습에서 연륜을 담아내기가 싫으셨던 것 같다. 노년에 접어들었으니 점점 더 초라해지는 모습을 담아내기가 싫으셨으리라. 나도 그런 기분인데 여권사진은 그런 주인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작가들도 책을 만들 때 쓰는 사진은 젊은 날의 모습이기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당시의 모습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그것이 그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오래도록 남겨지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어서다. 부부 중에 한 분이 젊어서 타계하고 한 분은 주름투성이의 노인으로 살아 계셨는데 그때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세상을 하직하고 남편 곁으로 가면 알아보지 못할 거라며 늙는 것을 서운해 하시던 걸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젊은 날의 모습을 삶의 정점에 두고 가장 빛나는 시기로 보는 경우도 있고, 활동이 완성한 시기를 정점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성모 마리아는 언제나 아기로 머물러 있는 예수를 품에 안은 젊은 여성으로 각인되어 있고, 예수는 성모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들 머릿속에 존재한다. 그처럼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은 모습은 모두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세월을 입지 않는다. 그처럼 모든 사람들은 비록 외형은 변하지만 스스로 인지하는 자신은 자신의 영상 속에 남겨진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남겨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5년 후 나는 여권 사용 기간을 다시 연장할 것이다. 그날의 내 모습에 비하면 오늘의 사진은 훨씬 젊어 보일 것이니 그날을 생각해서 오늘 사진을 예쁜 사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여권사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사진관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그 여권사진만은 젊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나를 잘 담아내는 사진으로 고르고 싶다. 모두의 가슴에 오래도록 좋은 인상으로 남겨진 사진이면 나를 기억하기에 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