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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2009 국가직 행정(우정)에
합격한 제주도에 사는 남학생입니다.
합격기를 써두고
지난 11월 공무원교육원 다녀오고
바로 출근을 하게 되어서 여차여차 하다보니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최종 발표가나고 수험기간 동안 힘들 때마다
썼던 일기를 읽어 봤습니다.
혼자서 밥먹고 혼자 공부하면서 스스로에게 힘내자고
써내려간 일기들을 보니
웃음이 피식 났지요. 생존본능 같은 것이 느껴져서..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그 때에 맞춰 힘내라고
격려해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었기에
혼자 웃고 혼자 열정을 품던 그 수험생의 마음을 되살려
부족하나마 조촐한 수기를 쓰려고 이렇게 타자를 두드립니다.
이글을 읽는 수험생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수험생활(2007.1.2~2009.9.25)]
1. 시작과 시행착오기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다가
그 다음해 복학을 포기하고공무원 시험준비를 준비하기로
작정하여 동네에서 한적한 독서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원인모를 자신감과 열의로 가득해서
5,6개월 후에 있는 시험에
붙는다고 생각하고 달려 들었습니다.
의자에 제대로 앉는 자세를 만드는 데에만도
한 달은 족히 걸리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때는 이론강의를 듣고나면 반드시 그다음
문제풀이를 들어야 한다는 식의
수험생들 사이에 떠도는 막연한 말을 따르고 있었습니다.(인터넷강의)
자기 자신의 수준이 아닌 공고된 시험 날짜에 맞춰서
꾸역꾸역 진도를 나가던 때였습니다.
2. 준비방향 수정
물론 그해 지방직 커트라인에 30점 씩이나 밑도는 점수를 받았고
특히 영어는 과락 수준이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막장 영어실력에 고민을 하며
합격기를 뒤져 읽기 시작했고
거기서 알게 된 영어 강의(밑에서 소개)에서 제시하는
용두사미식 공부 순서에 따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용두사미'인 이유는
영어와 국어를 시험과 먼 때에 집중 투자했다가
시험이 다가올수록 암기과목에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국어->그 외에행정학, 국사, 행정법 등 암기과목 순으로)
나중에 시험의 당락을 좌우하는 영어, 국어에
먼저 집중적으로 시간 투자를 해서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그 위에 집을 쌓아나가는 방법이었죠.
이 방식에 공감했던 이유는
제가 첫시험을 앞 두고 뒤늦게 부족한 영어 국어실력에
부랴부랴 난리를 떨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달쯤 후에 동영상강의로 듣고 있던 영어강의를
실강으로 듣고 질문도 하고 싶어져서
고향을 떠나 광주로 향했습니다.
한번의 실전(시험)을 경험해보니
가장 시급하고 큰 문제는 영어과목에 대한 자신없음이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떠날 결심을 했었죠.
(불합격한 시험이 끝나고 멍~때리는 시기에
공부하러 떠난 것은 타이밍이 아주 적절했다고 느껴지네요)
그렇게 07년 여름은 영어공부만 하면서
가장 취약한 과목을 다졌습니다.
아침에 눈 떠서 잠들기 전까지 영어공부를 했고
도서관을 오고 갈 때는 영어문장을 외우고 다니곤 했죠.
당장은 답답하고 느린 방법 같아 보이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이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쥐약이었던 영어과목에 자신감을 얻었고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데에 필요한
성숙기 같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가을부터는 국어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끓어 오르기 시작한 조급한 마음에
계획과 달리 행정학과 행정법을 병행했고
곧바로 국사까지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한꺼번에 한다고 해서
아무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다섯과목을 한꺼번에 잡으려 하다보니
시간과 노력이 너무 쪼개지고 과목 당 공부 양이 줄어
빨리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만 가득해져서
효과적으로 성적을 올리지 못했죠.
어찌됐든 수험생활이 1년하고도 반 가까이
되어갈 즈음일 때여서
승부를 보자는 마음으로 일요일이고 명절이고 없이
독서실에 갔고 휴일엔 도서관에서 준비했습니다.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준비 한 때였지만
5과목에 두루두루 균형있게 투자를 못한 때라 그런지
마음이 초조하고 급박 했었습니다.
3. 슬럼프와 고민
그렇게 08년 4월 시험을 맞이했고
국가직에서 7점 차 낙방,
5월에 지방직에서는 마지막 행정법 마킹을 밀려서 표시하고
새 답안지로 고치다가 종쳐서 뺏겼고
그 후 여름에 있는 서울직을 향해 밤을 세워가며
(이때 무리를 해서 그랬는지 원형 탈모
증상까지 나타나서 스트레스에 휩싸임.)
이 악물고 준비하고 갔으나
3점 차 낙방...
서울시 시험 성적을 확인하고 엄청난 무력감에 휩싸여서
이틀 간 천장만 보고 멍하게
누워 지냈어요.
스스로가 하찮고 불쌍하게 여겨져서 천장을 보다가
흐느껴 울기도 했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젊음이
날아가 버리는 듯한 상실감..
친구들 다하는 대학 생활도 못해보고..
세상은 잘만 돌아가는데 저만 홀로 모르는 동네에서
길을 헤메면서 엄마찾아 우는 어린아이 마냥
혼란스러웠습니다.
혼자 안쓰럽게 몸부림 치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가엾었고
점점 자기연민에 빠져 들것만
같았었던 때가 있었더랬죠.
이때의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매일 매일
자전거를 타고 먼 곳까지 운동을 했고
시험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이때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공무원 시험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한다면 돈도 벌고
사람들도 만나고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공뭔셤을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번듯한 직장은 아니더라도 일을 하면서
연애도하는 친구들을 보니
그 친구들은 젊음을 즐기는 듯이 보인 반면에
나는 공무원에 집착하면서
젊음의 에너지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게
스스로를 작은 세계에 가둬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핸드폰 판매를 하는 친구 녀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을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설움을 받는다며 비정규직의 썰렁한 현실을 알려줬고
오히려 공부하는 너가 부럽다는 이야기로
위로해준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친구들 덕에 생각을 다시 고쳐 먹었죠,
(얼마 전 요놈들한테 한턱 쐈습니다^^)
4. 마지막 6개월
결국 미련이 남아서 나중에 접더라도
마지막으로 후회 없이 도전해보고
접기로 결론을내렸죠.
아들과 약주하시길 좋아하시는 환갑이 되어 가시는 아버지께
술잔을 따라드리며
마지막 6개월만 도와 주십사 말씀드렸습니다.
자전거를 수리하시는 상처 투성이의 아버지 손을 보며
말씀드리기가 정말 죄송스럽더군요.
이날 아버지 앞에서 한 다짐이 남은 6개월을
성실하게 보내는 데에 좋은 동기가 되었다는생각이 드네요.
어차피 2년 반 정도 하게 된 공부 조급함을 버리고
한 과목 한 과목 정성을 쏟기 시작했죠.
한 달씩 중점적으로 공부할 한 과목 씩을
정해서 오전에는 영어 국어를 꾸준히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중점과목을 반복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이때 부족하다고 느끼던 행정학을 한 달 동안 파면서
모의고사 90점대 점수를 확보하게 되었죠.
점차 순환 주기를 한 달에서 2주 1주
이렇게 줄여나가서
시험전날에는 전 과목을 보고
갈 수 있도록 역산해서 계획을 잡고 매진했습니다.
<과목별 이야기>
[국사] 김윤수 탐구한국사
행정법과 함께 고득점을 노리던 과목으로 동강을 듣고 복습은
문제를 풀면서 했어요.
인과관계를 설명하면서 하는 강의가 저한테 잘 맞았죠.
특히 빠르게 돌아가는 근현대사에서 해방이후 부분은
2차대전과 함께 연결해서
중얼 중얼 강의를 따라했습니다.
그리고 통독을 한번 했으면
한번은 발췌독을
(ex.시대별 경제사, 일본과의 관계, 여진과의관계, 시대별 건축문화사, 시대별 전쟁사 등)
번갈아 하니 보다 집중이 되더군요.
작년에 슬럼프기간에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절에 다니시는 어머니께 국사강의에서 다룬 불교사를
강의 하듯 떠듬떠듬 떠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역사의 인과관계나 흐름을
입으로 중얼 중얼 떠들어보는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부기간이 더해 갈수록 문제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집중해서 이론을 보면서 약한 부분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어느정도 반복이 되고나서는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문제가 틀리는 부분의
이론을 읽고 요약했습니다.
[행정학] 위계점 알파행정학 +이권 행정학
강의를 다 듣기도 벅찰만큼 양도 방대하고
행정법처럼 술술 읽히는 것도 아니라서
많이 애를 먹었죠.
행정학 강의를 듣고 기본서에 있는 문제를 먼저읽고
이론을 봤습니다.
행정학은 반드시 문제와 함께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라
생각해요.
이론만 읽으면 내용이 추상적이고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해메곤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와 해설을 꼼꼼히 읽고 이론을 빨리 봤습니다.
기본서에 있는 문제는 거의 5번 넘게 풀었어요.
(정답 표시한 거 지우개로 다 지우느라
팔 빠질 뻔 했던 기억ㅜ.ㅜ 답 체크는 메모지에 하시는 게 어떠실지..)
아 참, 재무행정이 하도 머리에 안 들어와서
재무행정만 따로 동강 듣고
연속 3회독했던 것이 재무행정에
자신감 얻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어] 조병훈 프랙탈영어
영어과락 점수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합격기를 읽다 발견한 강의였죠.
강의에서 제시하는 방식대로 첫 시험에 떨어진 후
두 세 달동안 영어에 올인을 하면서
어린아이가 넘어지고 깨지면서 두발 자전거를 타는 법을
체득하듯이 영어 어순감각을 길렀고
그 과정에서 중, 고등학교 때 뒤쳐졌던
영어실력을 쌓을 초석을 마련했었지요.
이강의에서
영어문장을 볼 때 동사문형을 기준으로 보는 연습을 통해
동사들이 축약되어 준동사나 절 형태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배웠는데
마치 레고놀이 하듯,
동사문형을 뜯어내고 붙이는 영어 문장 독해연습을 통해
독해력이 많이 향상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행정고시 출신이셔서 시험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만한 공부마인드를 전달해 주셨죠.
처음으로 영어 모의고사에서 100점이 나왔을 때
혼자 고시원 주변을 뛰어다니며 좋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찌질하다고 놀리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과락으로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만큼 기뻤었죠.
무엇보다 영어공부가 지겹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과목이 지겨울 때 영어독해를 할 수 있게 끔
영어 실력을 늘리는 재미를 톡톡히 준 강의 였습니다.
(공부하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도 알게해준)
합격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과목이었어요.
[행정법] 김유환 삼봉행정법
초반에 쉬운 난이도의 2007국가직 점수에 우쭐해서
만만히 보다가(운빨에 95점)
2008 행정법 난이도에 쓴맛을 보고(65점) 삼봉행정법을 시작했어요.
이 선생님도 행정고시 출신이셔서 그런지 시험 점수를 높이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했고 그 방법대로 행정법을 할 수 있는 한
연속으로 회독 수를 늘렸습니다.
1회독 할 때마다 맨 뒷장에 날자와 사인을 적어서
(방금 보니까 12개 사인과 날자가 있네요) 일주일 걸려서 1회독하던 것을
3일 안에 볼 수 있도록 반복 했습니다.
그리고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이나 행정절차법 등
외워야할 법령 중 잘 안 외워지는 부분은 문자메시지로 저장해서
걸을 때나 버스에서 보곤 했습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외워?~"하면서
법령 외우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때가 있었는데요.
문제를 먼저 죽 보고나서 법령을 어떻게 비틀어서
문제를 내는지 감을 잡고
외우는 것이 머리가 덜 아프고 할 만 하더군요.
[국어] 김정진 정진국어
정진국어와 이재현 선생님 문제지를 많이 풀었습니다.
모든 수험생들이 반복해서 보는 한글맞춤법,
표준어 등 현대문법을 매일 오전 반복해서
봤고 그 부분은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빈틈을 매꿨습니다.
길을 지나가면서 보이는 가게 간판이름도
합성어인지 파생어인지 구분하면서 다니곤
하던게 기억나네요.
한글맞춤법이나 발음법 주요문항과 예시 단어는
혼자 밥먹을 때 문자 메시지로 쓰면서
외우곤 했죠.(좀 궁상맞네요~그래도 식당에 책은 안 들고 갔어요~ㅎ)
참, 그리고 한자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시기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욕심을 버리고
하루에 10분만 투자하자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솔직히 하루보고 하루 빼먹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본 것도 시험 전5달 정도 였지요.
한자나 영어단어나 완벽히 대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고 조금 씩만 시간 내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에 익숙한 한자도 생기고
불안하지도 않더라구요.
<끝맺는 말>
수험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힘들 때 술 한잔 걸치며 무덤덤하게
수험생활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었죠.
수험 초반의 무모했지만 열정적이었던 초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진 않을까..
무서웠습니다.
중간에 저보다 2년쯤 먼저 서울시 일행에 합격한 동창생을 보며
자극도 받았고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매일 아침 옥상에 올라가 펄쩍펄쩍 뛰며
'나도 합격한다'라고 소심하게 작은 톤으로 외쳤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형식적일 뿐,
저의 정신력이 유달리 강인 했던 것은 아니랍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오락실에 가서
동전 넣고 사용하는(200원짜리)
노래방기계 앞에서 소리치고 오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노래방가서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없겠습니까마는
수험생활은
그렇게 시간을 아껴야 하는 것이었기에
일주일만에 소리라도 치고 나왔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며 혼자 터벅터벅 독서실로 돌아오던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으로 수험생이 겪게 되는 자초감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자초감(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감정. 제가 만든 신조어랍니다~ㅎ)
간만에 연락한 친구가 애인과 함께 주말 데이트 중이라
짧게 전화를 끊게 되더라도
자초감에 휩싸일 필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말을 즐기는 것은
목표로 한 시험 뒤에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친구가 지금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처럼
성실한 주말을 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기합격 문자를 받은 날 아버지는 대장 수술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셨고
저는 아버지 대신에 가게를 보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가게 문을 닫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아버지는 닝겔 주사를 꽂은 채 일어나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아드렸습니다.
1월 25일 첫월급을 받아서
부모님 내복을 사다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준 내복도 입어보네' 하시며
웃으시고 바로 입어주시더군요.ㅋㅋ
어머니는 연금보험을 가입시켜 드렸더니
아들 키우길 잘했다'한마디 해 주시네요~ㅎㅎ
직장 생활 만만치 않지만 이런 점에는 뿌듯할 뿐입니다~ㅎ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모두 빠이팅 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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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처음 글을 썼을때에 비해서 프랙탈영어 이야기는 거의 1/10로 줄여서 올린 수기입니다~ ㅋㅋ
구꿈사에 올렸다가 프랙탈까페에 그대로 옮겨서 올립니다.
잘봤습니다. 바이킹님 정말 축하드리고 수고하셨네요~!저는 작년부터 시험준비하고 이제 막 프랙탈을 알게됐는데..후회되네요 작년부터 미리 알았더라면 ㅠㅠ
저는 영어 50~60점 정도 나오는데 믿고 열심히 하면 고득점 할 수 있겠죠?
잘 근무하고 있다니 흐뭇합니다. 이젠 바이킹님에게 추억의 한페이지가 될... 광주 프랙탈영어유학(?) ㅎㅎ 결단과 노력에 다시 박수를!! 그리고 진행중인 다른 일도 잘 마무리 되길 바랍니다.
ㅡㅡㅋㅋ전 이분 글 구꿈사에서 보고 이 강의 알았어요 ..ㅎㅎ 지금 듣는중
저도 바이킹님 글보고 프랙탈을 알게 되었어요 ㅋㅋㅋ
바이킹~ 멋지다~!! ㅋㅋ
내용에서 많은걸 배워갑니다~저도 힘낼게요.ㅋ 암튼 바이킹님의 인내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
용기와 힘을 주는 수기..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바이킹 멋지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