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모두 편 모습과 움켜쥐는 모습은 무척이나 다르다.
주욱 펴서 손바닥을 내보이면 손바닥 위에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고,
웅크리면 손바닥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지를 알 수 없다.
살며시 쥐고는 나는 고향 텃밭을 떠올린다.
고사리
위 사진은 고사리이다.
손가락을 살며시 움켜쥔 듯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일 때 고사리 밑자락을 움켜쥐고는 뚝 부러뜨려서 꺾어야 한다.
고사리나물을 뜯어야 하기에.
손가락을 폈네... 고사리가..
서해안 내 텃밭 가운데 위밭에는 고사리가 자꾸만 번진다.
몇 해 전 산에서 고사리 뿌리를 캐다가 밭에 심었더니만 이게 해마다 영역을 넓혀서 자꾸만 퍼진다.
때 맞춰 고향집에 내려가면 어린 고사리 순을 꺾어서 나물하고 국 끓여서 먹을 수 있다.
바깥창고 뒤편에 고비(고사리 종류)도 자란다. 씨앗이 바람에 날려왔을 것 같다.
왜그리 솜털이 많은지...
마치 털장갑을 낀 손 같다.
아무것도 안 보여줄 것처럼.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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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땠을까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 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시덤불을 제치고 들어가 거미줄에 걸려있던 나비를 구해 주었다. 나비는 춤을 추듯 훨훨 날아갔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그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왔다. 천사는 자기를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때 천사는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소근거리고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또 할머니가 되도록 늘 행복하게 살았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우러러 보았다.
세월이 흘러 예쁜 소녀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죽기 전에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입을 열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지, 그 대가(代價)로 천사는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구해주어서 고마워요. 소원을 들어 드릴께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하게 될 거에요'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더니 정말 평생 행복했던 거야.
"사실 천사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야, 누구든지 만족한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 할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위 글은 <5060....> 카페에서 임의로 퍼왔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나는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
또 힘든 일이 생겨도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없거나 부족해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해 봐. 새롭게 바꿔 봐, 새로 만들어 봐.'
등의 생각을 지녔다.
나한테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내다버려야 할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재활용하느냐 하는 방법을 찾으니까.
내 나이 일흔세 살.
세상 얼추 대충 살았다. 앞으로의 삶을 크게 기대하지도 않고, 지나간 시간을 그다지 후회하지도 않는다.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내 인생 가운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에.
오늘은 아내가 말했다.
'바깥에 나가지 말아요.'
나도 안다. 코로나-19를 걱정해서이다. 한강변에 나가고 싶은데도 일요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 놀러왔을 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 까짓것이다. 한강변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뭐 내가 손해 볼 일은 없다. 다음에 가면 되니까.
내 마음은 서해안 고향으로 내려가 있다.
갯바람 불어오는 바닷가 어항으로 나가고 싶으니까.
텃밭에는 지금쯤 산나물이 많이 나왔을 것다.
돌나물, 엄나무순, 두릅나무순, 산뽕나무 잎사귀, 오가피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 식물 이름도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까짓껏 어떠랴 싶다.
서울 송파구 잠실 고층아파트 실내에 화분 120개를 올려다놓고는 화분-농사를 짓는다.
컵농사, 티스푼농사이다. 작은 풀씨 한 알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지난해 가을에 감을 먹고는 씨앗을 뱉어서 화분 속에 묻었더니 싹이 하나 나왔다.
제법 잎사귀가 크고 있다.
감씨는 잔뜩 보관 중이다. 시골로 가져가 텃밭에 묻어둔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쉽게도 코로나-19때문에 시골로 내려가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감씨는 수분이 말라서... 싹눈이 죽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그냥 열매씨앗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내 마음인 것을.
감씨야 해마다 숱하게 나올 터.
알로에 다육식물을 포기나눠서 증식하고.
삼붕냐와 외국식물 줄기를 잘라서 꺽꽂이를 하고...
티-스푼을 흙을 파서 식물을 가꾼다.
전문 영농인이 이런 나를 보면 비웃을 게다.
아무렴 어떠랴 싶다. 도시 고층아파트 안에서 사는 나로서는 이게 최고, 최선의 일이기에.
첫댓글 고사리 꺾다가 실종된 노인의 뉴스가 생각이 납니다
예.
욕심이 지나쳤다는 뜻일 것이고. 또 자기 마을이 아닌 타동네이라는 뜻이겠지요.
자기네 산이라면 길 잃어버릴 이유는 전혀 없을 터. 본질은 남의 산에서 ....
또 나들이 할 때에는 함께 해야지요. 서로 소리쳐 부를 수 있는 거리에서요.
시골에서 건달농사꾼이었는데.. 지금은 서울에서 살자니 정말로 무기력합니다.
식물 이름도 자꾸만 잊어버리고...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 전락했으니...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