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시는 왜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을까.
사람의 욕망은 갖지 못한 것을 향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얼마나 보고 싶어했던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그 뒷모습을. 그러나 이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일 뿐이다. 우리가 질리도록 봐온 것은 가야 할 때를 개무시하고 끈질기게 들이밀고 버티는 이들의 뻔뻔한 앞얼굴이었다. 전재산 29만원의 극빈층 노인, 후배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낸 마음씨 고운 대법관,
여기자와 프리허그를 시도했던 동해삼척의 의원님,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를 몸소 보여준 이들 덕에 우리는 '긍정의 힘'의 놀라운 위력을 치떨리게 학습했다. 가야할 때 돌아서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정말 한 번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노통, 그것을 당신에게서 보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옳은 자가 이기는 것도, 이긴 자가 남는 것도 아닌,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것이 되어버린 이명박 시대의 한국에서, 촌스럽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무슨, 살아남은 자의 당당함과 뻔뻔으로 무장한 이들이 지독한 나르시시즘의 역사교과서로 마스터베이션이나 하고 있는 판에, 노통 당신은 왜 그 치욕을 다 당해내며 똥물을 뒤집어쓰며 악착같이 지겹게 살아남지 못하였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죄라면 죄일 게요.
노무현의 죽음으로 조선일보, 한나라당이 기쁠 거라고? 천만에. 그들은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한 적이 없다. 생존이 목표요 가치요 최고선인 이들이, 명예를 위해 그 생존을 한 번에 버리는 행동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자살하라'던 김동길은 비난여론이 거세자 '오해다'라고 했다. 물론 오해일 테지.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 양손에 꼭 틀어쥔 기득권 소유 질긴 목숨에 대한 집착을 한 번에 놓아버리는 일이 그대에게는 애시당초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암, 오해였고말고.
살아있을 때 온갖 죽일 놈 취급 다 해놓고, 죽은 뒤에 영웅 성군 군자로 추송하는 이 따위 세태, 살아있을 때 해명 한 마디 귀담아 듣지 않고 죽은 뒤에야 법 만드니 어쩌니 난리치는 이 따위 사회가 진절머리난다. 0시대정신은 몰염치요, 비장의 무기는 버티기인 한국 사회에서 약간의 염치와 마땅한 수치심을 차마 버리지 못한 이들은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 죽기 전에는 너의 사정 따위, 진심 따위 절대로 들어줄 수 없다고 굳게 다짐한 이 나라는, 죽어야 사는 나라다.
혁명의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한 번도 혁명하지 않았던,
존재 자체가, 당선 자체가 혁명이어서 핍박받았고
존재 이상의, 당선 이상의 혁명이 없어 외면받았던 노무현은
그렇게 져내렸다.
혁명의 달 5월, 죽어야 사는 나라, 이곳 대한민국에서.
p.s/ 생각해보면 노통 당신은, '사랑받아서' 당선한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습니다.
김구 죽여 이승만이,
전임 하야로 윤보선이,
군홧발로 박정희가,
자동으로 최규하가,
핏물 위에 전두환이,
야권분열로 노태우가,
야합으로 김영삼이,
전임 뒷수습으로 김대중이,
노무현이 싫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지요.
그런데 노통 당신을 뽑을 때를 생각하니, 그때 던진 표들은 DJ가 싫어서도 이회창이 미워서도 아니었습니다.
바보같이 살아온 사람의 매력에 많은 이들이 홀린 듯 표를 던졌지요. 조직도, 돈도 없던 당신에게.
당신을 지지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가는 길 마지막 인사로 이 한 편 글 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첫댓글 가슴속에 진실이 있었기에 모든걸 자신이 짊어지고 떠날 결심을 했겠죠...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