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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동안, 마누엘 노이어가 역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진 골키퍼라는 생각은 근거를 될 필요도 없다.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의 골키퍼로서 노이어의 넓은 커버 범위 퍼포먼스는 골키퍼를 둘러싸고 있던 미지의 세계들을 줄여갈 수 있었고, 그의 퍼포먼스는 골키퍼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바꾸었으며, 전 유럽 학교 운동장의 아이들을 더이상 골키퍼가 부족하지않은 충분한 숫자가 되도록 설득시키는 것을 가능하게했다.
아직도 노이어의 퀄리티는 - 독일의 골키퍼 코치 안드레아스 쾨프케 최근에 노이어에대해 "난 베켄바워를 제외하고 노이어보다 나은 스위퍼를 본 적이 없다." 라고 말했다- 축구의 가장 신비로운 직업을 혁신 시킬 수 있다.
만약 모든 골키퍼들이 노이어와 같이 스위핑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감독들은 골키퍼를 스위퍼 키퍼로 뛰게 할 것이다.
위험을 기피하는 것을 선호하는 감독들은 동료 골키퍼들 중 노이어와 같이 일관성과 탄탄함 또한 결단력까지 갖춘 골키퍼는 거의 없기때문에 패트릭 보너가 명칭한 골키퍼들의 경기에서 이 마법적인 면을 강조하는 단어인 " 빅세이브"를 생산하는 키퍼들을 선호할 것이다.
이와같은 안전주의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모든 스페셜리스트들은 경기에서 다방면으로 뛰어나질 것을 요구받고 그 요구 또한 점점 증가하고 있다.-1970년대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에 의해서 이러한 트랜드는 예상 되었다. 슛만을 막는 키퍼들은 아마도 태클만을 하는 풀백과 패널티 박스안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골만 넣는 스트라이커처럼 점점 줄어들 것이다.
레이 리치몬드 루즈 : 화려한 골키퍼
누에들과 과학자들
"난 주저 할수 없었다. 내가 결정을 내렸을때,나는 그것을 실행해야합니다. 때때로 위험은 매우 가까이오죠, 그러나 난 아직까지 단 한번도 퇴장당한적 없어요."
이 것은 그 화려한 레이 리치몬드 종류의 골키퍼 신조이다, 한 세기전 영국 축구의 가장 큰 스타 중 한명인 그 화려한 웨일스 국가대표는 허용 되었을 것이다. 1906년 , The Book Of Football 에 루즈는 적었다: "좋은 골키퍼는 시인과 같이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아니다"
비록 ham-fistedly(?) 일지라도 Burridge는 강화하였다, 그 스스로를 포스트 사이의 " 너무나도 멋지게 이국적인 영국인 축구선수의 변장" 이라고 평한 러시아 작가 이자 골키퍼 연구원인 Vladimi Nabokov 에 의해서 이 주제는 만들어졌다. 이질적이며 괴짜이며 멜로드라마 예술같은 주변 분위기는 - 그리고 그범위 그 롤은 선수들에게 그들의 개성을 표출하거나 개성을 가장할수 있게 해주었다.- 아마도 왜 골키핑이 경기의 가장 지능적인 포지션이며 매력적인 소설가(알베르 카뮈)이며 카톨릭 신부(교황 존 파울 2세), 과학자(닐스 보아),혁명가(체 게바라)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는지에대해 설명될 것이다.
알베르 카뮈- 프랑스 작가
존 파울로 2세는- 교황
닐스 보아- 과학자
체 게바라- 쿠바 혁명가
라고 한다.
알베르 카뮌 : 작가,철학가,골키퍼
나무들 사이에 홀로
이 별나며 이질적인 것은 거의 존재하는 불확실한성으로서 골키퍼를 망치게하는 주의산만함을 도와준다.
프랑스 운동장에서 ,팀이 골키퍼들을 바꿀때, 그들은 "이제 너가 나무들 한 가운데에 설 차례다" 라고 말한다.
(프랑스 말로 하면 : “au milieu des bois.”) 카뮈는 이 인용구를 사용한적 있다,방어하는 골키퍼 플레이하는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Racing에의해서 말해졌다. "너가 나무들 한가운데 있을때 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건지 깨닫게된다."
Racing univercity :카뮈가 다닌 대학교로 보임. 여기서 스포츠등을 배웠다고한다. 본문에서도 대문자
나무들 한가운데 홀로 있는것으로는 노이어의 골키핑 스타일을 묘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을 다룰줄 아는 그 능력은 "전적으로 그 스스로에게서 나온 자원들로 포스트를 신리감으로 가득 채워야한다"는 루즈의 발언 내제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일부의 경우에는 심리적 부담감을 견뎌내지 못한다. 멀섬에서 골키퍼가 되었고 후에 1970년 월드컵 8강전에서 서독을 상대로 3-2로 패하며 비난을 받게된 불쌍한 피터 보네티를 생각해봐라.
피터 보네티 : 1941년 축구선수
멀 섬 : 스코틀랜드의 섬
또는 브라질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자 골키퍼를 생각해봐라, 1950년 마라카낭에서 벌어진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루과이가 그의 뒤로 2골들을 넣기전까지 세계 최고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브라질을 울게 만든 남자"라며 사람들에의해서 조롱거리가 되어버렸고 , 바르보자는 1963년 아주 특별한 바베큐로 그의 악운 정화를 시도한다. 그가 자신의 손님들을 대접하기위해 태운 나무는 피파의 규정들이 변함에따라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마라카낭의 그 오후에 있던 골포스트들로 밣혀졋다.
이 모든 질풍노도 와 다름은 골키퍼롤에게 로맨틱과 거의 철학적인 분위기 주었고 오스트리아 작가 페테 한트케의 소설 '패널티킥을 앞둔 골키퍼의 근심'이라는 제목에 반영 되기도 하였다. 이런 신비감을 위해 지불된 값은 나머지 포지션에서 따로 소외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Brian Glanville의 이야기인 '골키퍼들은 미쳤다.'라는 제목에서도 보여진다.
Brian Glanville- 과거 아스날 선수1931년생
헝가리 골키퍼: 지울라 그로시치
스위퍼 키퍼의 진화
Nándor Hidegkuti 히데구르티 난도르(1922년생 헝가리 축구선수)
처음에는, 지울라 그로시치 선구적인 키퍼가 되었다.-스위퍼 행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이었고 , 이렇게 표현하였다.
: "공격적인 게임의 계획은 그들이 소유권을 갖을때 적들에게 역습 기회들을 더 많이 제공한다."
Gyula Grosics 지울라 그로시치 (헝가리 대표 골키퍼 1926년생)
"적에게 악용될 수도 있는 우리 수비진 뒷공간이 있다. 난 또다른 스위퍼처럼 행동해야했다, 나의 범위를 벗어나고 , 적이 공을 잡기전에 공에 도달하기위해 노력해야했다."
소유권을 유지하는 것은 역습에 대항할때 중요하게 된다, 그로시치 밖으로 굴려 내보냈다 왜냐하면 피치안으로 뻥차는 것보다 더 정확했기 때문이다. 이 계략은 드로잉하기 위해 주스러 간 사이 푸스카스와 히데구르트가 되돌아 와서 상대팀을 물리침으로서 매우 성공적인 것이 증명되었다
이 전술을 한동안 널리 사용되엇다. 1997년 , 반슬리의 독일인 키퍼 로날드 랭은 그의 책 ' 키퍼의 꿈들'에서 이처럼 회상하였다. 풀백에게로 볼을 굴리는 단순한 행위는 감독이 하프타임에 경기장위로 돌진하는 번거로운 체재 전복과 마찬가지였고 볼이 찰수 있는 중앙선 근처 어딘가 정확한 위치에 서있어했다.
미헬스는 헝가리의 영감 예로부터 빠르게 배워갔다.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감독할때, 그는 Jan Jongbloed의 능력을 여분의 수비수로 쓰기로 결정했다, 20야드를 뛸 수있는 그의 발때문에, 얀 반 베베른의 놀라운 선방능력에도 그의 팀의 토탈사커에는 얀 용블루트가 이 훨씬 더 가치있다고 결정했습니다. 비록 얀 용블루트의 믿음에대해서 매우 정교한것이 아무것도 없얼지라도 - 그의 임무는 볼을 첫번째로 만지는거 였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였다- 그의 선택은 상당한 변화의 분수령으로 흔적을 남겼다. 축구 역사상 가장 재능있는 감독의 팀이 나타낸 정책이었고 , 이 선택은 , 골키퍼 스위핑은 골키핑보다 더 중요하다것을 나타낸 것을 나타낸 것이다.
Jan van Beveren(얀 반 베베른) :네덜란드의 골키퍼. 당시 리그에서 가장 잘나가던 슈퍼 세이브를 보여주던 골키퍼 였지만 미헬스는 스위퍼 능력을 중요시여겨 중용 받지 못했음.
Jan Jongbloed(얀 용블루트) : 미헬스의 네덜란드 스위퍼 키퍼
미헬스의 토탈사커 스위퍼 골키퍼 얀 용불르트
아약스 , 바르셀로나, 크루이프
요한 크루이프는 1985/86 아약스 감독으로서 미헬스의 가르침을 따랐다 , 크루이프는 스탠리 멘조에게 조언했다
" 밖으로 나가 그리고 실수를 만들어". 이 말은 이 골키퍼 스타일이 위험과 보상을 모두 갖고 있다는 양면성을 반영하였다.
그 위험들은 루이스 반할이 크루이프의 뒤를 이으며 분명해졌다. 멘조의 실수들과 함께 반할의 성공에 대한 갈망은 팀에서 발 밑이 팀의 어떤 부분을 맡길정도로는 충분히 좋지만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 돌진할때는 멘조보다 용맹하지못한 에드윈 반 데사르로의 대체를 이끌어냈다.
Stanley Menzo:1980년대 활동하던 아약스의 골키퍼.
크루이프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오로지 슛을 막기위한게 골키퍼라는 생각들은 그의 논리를 거스른다.
이상향은 11명의 축구선수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한명이 '빅세이브' 또한 할수있다면? 크루이프는 심지어 미헬스보다도 더 모험적이고, 멘조의 골키퍼로서의 퀄리티보다도 그의 공격적인 기여를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어린 노이어 : 그는 어린시절부터 이미 아웃필드 플레이를 잘했다.
패스의 선택: 짧게 또는 길게?
전통적으로 ,키퍼의 팀이 볼을 잡고있을때, 그들의 임무는 그들 스스로를 잠재적은 위험요소를 피할 수있는 자리에 피해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데스의 포지셔닝은 위험이 있는곳에 골키퍼가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반영했다- 위험이자 기회가 될수있는. UEFA의 기술 보고서는 명시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골키퍼는 ' 수비진에서 빌드업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팀의 필수적인 선수이다- 숏패스 뿐만아니라 시야를 갖고 점유의 시발점이 되기도한다, 그러나 더 역습들의 시발점이 되는 능력과 좀 더 많은 전방 다이랙트한 패스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피치에서의 중요한 부분으로 키퍼의 일에 초첨을 맞추는 전통적인 전문가의 코치스타일은 효율성면에서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노이어 같은 키퍼들은 게임 전체를 읽어야만 하며 , 가장 생산적인 패스를 구사하고 공을 던지며 그리고 3번째 풀백 또는 센터백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포지셔닝의 도움 또는 팀의 손해에대한 이해를 필요하다. 과르디올라의 바이언에게 공인되진 않았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중 하나는 아리고 사키이다. 이 혁신적인 밀란 감독은 그의 공격과 수비 사이의 거리는 25M를 넘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압축된 플레이는 그들의 팀이 공격할때 빛난다,그리고 그들이 상대팀을 괴롭히게 한다.그러나 롱볼를 함께한 빠른 역습에 그들을 취약하게 남겨두는 약점이 있다. 골키퍼로서 새로운 수비수가 되기도하는 노이어의 빛나는 광취는 과르디올라팀이 아리고 사키의 압박 게임보다 진보하게 했다.
이러한 게임은 당연히 샬케 유스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웃필드 선수들과 훈련을 같이한 노이어에 의해서 나온다,
젊은 스타의 인상적인 모습을 보고 난 후, 놀란 어린 팬들은 싸인을 요구했고 그들은 그가 그들의 새로운 스타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난 마누엘 노이어, 너희의 세번째 골키퍼이지."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새로운 세기의 골대를 지키는것은 , 그 흐름은 루즈의 자립적인 누에들과 그의 훌륭한 고립된 플레이으로부터 많이 멀어져왔다,그리고 더 다이나믹하며 전략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팀과 하나가 된 골키퍼 롤를 향해간다. 노이어 세대들은 아마도 덜 신비로울수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전임자보다도 더 자유롭게 즐길 것 이다.
추억에 빠져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변화를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 루즈의 용어를 빌려도 노이어는 모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웨일즈 사람은 " 골키퍼가 어디 있어야만하며 골키퍼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의자 앉아있는 비평하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기사를 1906년에 쓰기도 했다. 24경기 출정하여 승리한 루즈는 키퍼들은 "독창적인 향신료" 갖고와서 그들의 일을해야한다고, 목표를 차기위해 언제 뛰쳐나오며, "돌아가지 말고 capital K같이 킥을해야한다" 한다고 말했다.
노이어는 이 모든것의 기준과 심사들을 충족시킵니다. 누가 알겠는겠는가,
노이어가 계속해서 매우 장대하게 플레이한다면 감독들과 전문가들은 그들의 4-3-3s.4-4-2s 그리고 4-2-3-1s에다가
1을 가장 앞에 붙일 것입니다.
http://www.fourfourtwo.com/features/manuel-neuer-and-evolution-goal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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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화를 전화로 본 나는 바보인가?ㄷㄷㄷ
ㅋㅋㅋ
433 4231 442 앞에 1을 먼저 붙이게 될꺼라는
말이 왜 이렇게 소름돋고 멋있지....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