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학교 가는길에 도로중간에서 내 차가 그만 멈춰 버렸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다들 바쁜 출근길에 그렇게 되었으니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다가와서 차를 밀어줄테니 왼쪽으로 난 한 멕시컨 레스토랑 주차장에 세우란다. 그녀왈 내 차를 지나쳤다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돌아왔단다. 그리곤 내가 당황해 하는 동안 길 가는 다른 운전자 몇몇을 불러 세워 내차를 밀어주도록 부탁을 한다. 너무나 차분한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평정을 금방 찾을수 있었다. 덕분에 일단은 차를 도로변에서 옮겼다. 그리고선 보넽을 열어보란다. 익숙한 모습으로 차를 점검하는 그녀의 모습에 도전을 받았다. 10살 정도되어 보이는 그녀의 딸도 차에 대해 아는 눈치다. 그녀는 자동차 정비를 하는 남편의 어깨 너머로 차를 배웠단다. 나도 이참에 차에 대해서 좀 배워야 겠다싶다. 울딸들도 좀 가르쳐주고... 차에 대해 너무 모르니 이렇게 차에 이상이 생기면 얼마나 불편하고 신경쓰이는지... 모터오일이 바닥이 나서 차가 멈춘것 같으니 사서 넣으란다. 학교 수업 시간이 가까운데 친구는 길을 찾지못하는 과정중에 학교 까지 태워 주겠단다. 덕분에 나는 가까스로 지각은 면했다. 할렐루야!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 모터오일을 2통 넣으라는 말을 듣고 넣었는데도 차는 꿈쩍도 않는다.
다들 바쁜데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정비소에 맡기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 되어서 몇군데 수소문을 하였다. 누군가는 나 보고 바디샵(정비소)에 갖다주라 하지만 크게 고칠일이 아닌데 괜히 재정손해 날것 같아 일단은 기도하였다.
" 하나님, 새로 산 차가 벌써 고장이 났는데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요?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돕는 손길을 보내주세요. 내 재정의 손실을 막아주세요."
교회의 한 지체인 마리아에게 전화하니 자신의 사위를 소개한다. 이 친구가 예전에 정비일을 해서 점검해줄거라고 나 대신 전화도 해준다. 이 친구, 견인트럭을 몬다. 그는 일단 주차된 곳에서 차를 점검한 다음에 어디로 견인할 것인가를 결정하잔다. 다행히 원인을 바로 찾아내었다. 배터리(밧데리)가 맛이 간거였당. ㅠㅠㅠ 그들의 차량의 배터리로 잠깐 충전을 한 내 차를 가지고 그들과 함께 오토모빌 가게를 찾았다. 특수기계로 무료점검을 해주는데 역시 베터리가 문제란다. 졸지에 새 배터리를 사야했지만 (50불이 넘는당.. 한화6만원 가량) 2년 웨런티(피해보상)과 무료설치를 해준단다. 마리아 사위가 설치비만도 40불 된단다. 그래서 그렇게 새 배터리를 갈아낀 내 차는 다시 나에게 협조를 한다.
결국 문제가 그렇게 해결되어서 견인할 이유도 없어져서 그들은 수고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에 근처 멕시코 식당으로 가서 소박한 저녁을 사주었다. 차를 점검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대화는 식당에서도 계속되었다. 내 차에 배터리를 갈아주던 오토모빌 직원도 우리의 대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합류하였고 모두들 하나님을 찾는 마음은 있는데 왠지 마음의 갈등이 많은듯 하다. 그날 밤 나는 다음날 가져가야할 숙제와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저들을 향한 계획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피곤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제의 차량문제는 어쩜 저 세 사람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일어난 일 같아서 아무리 나쁜 일로 보이는 일이라도 믿는 사람은 염려해선 안되는 이유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이 아니었으면 나는 마리아의 사위와 그의 동료를 만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배터리를 사러 굳이 그 가게에 갈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 직원과도 만날일이 없었을 것이다. 우연과 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많은 인간관계가 어찌보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가운데 이루어 지고 있는 필연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내가 어제 만난 그 세 사람들은 너무도 진지하게 나의 간증을 들었고 도전을 받아들였다. 마리아의 사위가 모터오일이 너무 많으니 한통을 버려야 한단다. 정비소 같은 곳에 가서 부탁하면 그냥 해줄거란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월마트 모빌 서비스 코너에 가서 부탁을 했다. 그런데 한 직원이 보스한테 물어보겠다며 뿅-- 하고 사라진다. 그냥 기름을 좀 버리면 되는 일을 자기 차원에서 해주면 될것을 보스를 부르면 요금을 물게 당연한데 말이다.
한참 지나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 보스가 규정상 해주지 못하게 되있단다. 그런데 엔진오일 넣지 않겠냐 하며 묻는다. 엔진오일을 넣으면 해줄수 있단다. 뛰웅?????? 엔진오일 넣을 때가 아직 안되었다고 하니 규정상 해줄수 없다며 거절한다. 고객이 필요해서 해달라는 일은 거절하고 필요치도 않는 일을 하겠다는 심보는 과연 돈 중심의 이해타산적 사고방식 외에는 이해가 안된당. 그러면서 보스한테 직접 말해볼테냐며 묻는다. 그래서 보스를 만났다. 이 친구 자판기 처럼 똑같은 말을 한다. 규정상 못해준다..... 한다. 내가 엔진 오일교환 할때마다 그곳에 가고 월마트 정기고객인데 서비스 차원에서 편의를 봐주면 안되겠냐해도 막무가내다. 참 냉정하다 싶었다. 그리고선 이 친구도 자기의 보스에게 달랑 달려갔다 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 하고 싶으면 15불을 내란다. 카.... 악... 모터오일 한통을 버리는 것 만해도 손해인데 그것을 버리는 과정에 15불(만 육천원)이란 거금을 지불하라고? 도둑이 따로 없다. 못해주게 되어있다던 그 규정은 갑자기 무너졌다. 이익 앞에서... 그들의 그 얄팍한 손익계산에 월마트에 대한 내 인상이 어두워진다. 난 사실 요금을 요구하면 줄 마음이 있었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은 지나친거였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그 규정이 월마트 자체내에서 고객을 향해 만들어졌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그것은 그 부서의 보스가 정한 개인 룰일거라는 생각을 접기 힘들다. 세상 어느곳이든 관대한 상사는 베풀며 직원으로 긴장감 없이 일하게 하지만 인색한 상사는 까다로운 룰들을 만들어 자신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 조차 인색하게 만든다. 그 사람 자체적으로 할수 있는 일을 아까 그 직원의 경우처럼 너무 규정에 매이고 상사를 두려워 하게 되면 창조주가 주신 선한 일을 할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제한하게 되는 지 모른다. 법칙과 규정은 따라야 하지만 때론 융통성도 있어야 하는것 아닐까.. 내 마음속에 옳은 일을 알면서도 상사가 두려워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말이다.
차에 대해 문회한인 내가 어떻게 할줄도 모르고 전문가인 그들의 입장에선 솔직히 쉽게 해결해 줄수 있는 작은 부분이다. 그런데 당장 수입이 없는 일이라고 핑게를 대어선 돕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세상의 물질적 사고 방식은 그렇다. 내 손안에 들어오는 이해타산에 눈이 멀어 타인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 이익밖에는 눈에 안들어 오니 남을 동정하거나 헤아릴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그런 물질 우선 주의 사고방식은 사람을 참으로 초라하게 하고 무가치하게 만든다. 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경쟁을 불러오며 다툼을 일으킨다. 나누어주고 베푸는 돕는 마음은 서로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며 서로의 존재가치에 대해 의미를 심어주며 위로를 준다. 그러나 이익중심의 제한된 마음가짐은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추할 정도로 욕심으로 가득채워 타인의 삶의 방관자로 살게할 뿐 아니라 사회를 냉담하게 만든다.
고객의 필요에 따라서가 아닌 자신의 이익중심의 상거래 사고관에 열 받은 나는 "규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거냐 아님 사람이 규정을 위해 있는거냐"고 한마디 던지고 나왔다. 솔직히 규정은 핑게일뿐 그들은 돕기를 거절한 것이라고 밖에는 이해할수 없다.
몇년전 YWAM(예수전도단)의 훈련을 위해 다녀왔던 캐나다 전도여행중에 우리팀이 사용했던 "핸즈" 라는 마임이 있었다. 그것은 hands (손)에 대한 메시지 였다.
간추리자면...
"창조주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때 손을 주셨다. 사랑하는데 표현하라고.. 일할수 있도록 쓰라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일어켜주라고.. 기도하라고... 우는 자를 달래는 데 쓰라고... 돕는 도구로서 손을 주셨건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돕는 일에 쓰야할 손을 거절하는 도구로 쓰고.. 붙들어 주어야할 손으로 상대를 거부하고... 사랑을 표현하는데 쓰야할 손을 폭력에 내어주며.. 서로 감싸 주어야 할 손으로 서로를 정죄하며.. 결국 그 손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전하는 예수님을 못 박았다..."
로 끝나는 마임이었다.
그렇다.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린 이후 부터 창조된 의도와 정반대로 욕심에 사로 잡혀 살며 냉담하고 미워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는것이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못박힌 그 손바닥을 보이시며 그분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길 원하신다. 이제라도 돌아와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며 살자. 세상이 가르치는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그분의 선하신 가르침을 따라 돕는 손과 같이 의미있는 삶을 살자.
돈을 위해 사는 삶은 사람을 극도로 치사하게 만든다. 돈은 세상 사는데에 필요한 도구 일뿐 삶의 전부는 아니다. 물질이 중심이 되면 그 인생은 끝없는 죄의 욕심에 끌리게 되어있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돈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초라하게 하다니...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상한 마음으로 주께 도우심을 구했다. " 하나님, 돕는 사람을 보내주세요."
그때 정비소의 한 직원이 내게 다가와서 "서비스 차원에서 그냥 해주면 될것을 왜 저렇게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 저녁에 다시 오면 제가 도와줄께요." 한다. 내가 여전히 속상한 마음에 "무슨 규정이 저러냐...: 하니 그 직원은 나랑 이구동성으로 "money policy! "(돈 이 상전인 규정!) 이라고 말했다. 흥...
어제밤에 만났던 그 사람들의 돕는 마음과 오늘의 욕심으로 어두워진 마음들이 대조가 된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차를 세우며 나의 어려움을 함께 지워주었던 그 여인과 청년들은 진정으로 부요한 사람들이리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한 일에 귀를 막든... 순종하든... 그러나 생각해보자. 욕심을 따라 살것인지... 사랑을 따라 살것인지...
그래,,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세상살이의 씨름 가운데 산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악해도 이런 보화 같은 사람들을 때에 따라 돕는 자들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로 받으면서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돕는 손길을 거부하며 우리 자신을 초라하게 한다 할지라도 기억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과 억울한 일 당하는 것을 아시며 위로해 주실것을 약속하셨다. 그분 앞에 나와 위로 받고 힘을 얻자. 그리고 돕는 자로 살아가자.
오늘 하루도 희망 끌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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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텍사스 오뚜기 원문보기 글쓴이: 텍사스오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