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혼의 수호신 - 28 클라비스를 만난 에이스 백작
민서우
- 28
별장에서 조용히 모습을 감춘 클라비스가 오는 곳은 미스테리우스의 예상대로 다니엘과 류 옆이다. 클라비스의 기운을 느낀 류는 줄을 살짝 당겨 말을 세우며, 고개를 뒤로 빼어 클라비스를 바라봤다.
세워진 마차 옆으로 다가온 클라비스는 인간 모습으로 다시금 변신했다. 마차 안의 에이스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아무도 없었는데, 저 자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거지?
궁금증이 일어난 에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서 내려, 다니엘과 류가 있는 곳으로 왔다.
“누구시죠?”
“난 클라비스라고 하지. 사진작가야.”
뭐라? 감히 백작 앞에서 말을 놓다니.
처음 보는데 말을 막 놓는 클라비스의 언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에이스. 그녀는 다니엘과 류에게 그랬듯 클라비스도 쥐고 흔들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가 누구인가. 마계의 투신태자가 아니던가.
“당신,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말을 함부로 놓는 건 도대체 무슨 예의죠?”
백작 특유의 건방지고 거만한 말투! 클라비스의 심기를 거슬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클라비스는 보라색 눈동자로 에이스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갈색 눈동자를 강하게 쏘아보며 입술을 거의 열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어려보인다고 무조건 어리다는 법은 없지 않나? 까불지 마, 인간. 너 같은 건 나한테 한방 감이야. 지옥 구경을 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입 닥치고 있으라고.”
“허! …뭐라고요? 네가 뭔데 나한테 감히 이래라 저래라야? 너야말로 입조심해!”
에이스 백작 성질 나온다. 속이 긁힐 대로 긁혔다. 3년 전 부친마저 돌아가시고 원치 않았지만 앉게 된 백작 자리. 억지로 하게 되어 싫었던 감정이 붙은 특유의 박력이란, 왕궁 전체를 휘어잡고도 남는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껏 반항하는 자 한 명도 없었다. 다니엘과 류가 꽉 잡힌 것만 봐도 그녀의 박력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클라비스의 차갑고 잔인한 면을 더욱 더 건들였다. 분위기에 휘말린 다니엘과 류는 이러지도 못 하고 있다. 뭘 어떻게 하면 좋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결론은 “지켜보자” 였다.
클라비스가 마계의 투신태자라는 것을 아는 류로서는 그의 편을 드는 게 당연하지만, 그랬다가는 앞으로의 여행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어떤 말도 못 한 채 그냥 지켜볼 뿐이다.
콧방귀를 살짝 낀 클라비스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아가씨 성깔 있네? 류.”
갑작스러운 부름. 지목 당할지를 예상 못 한 류는 깜짝 놀라 두 번 대답한다.
“예, 예?”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연락해라. 당장 가마.”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 클라비스의 시선은 계속 에이스 백작에게 가 있다. 이 여자가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아가씨, 나 함부로 건들지 마. 마계의 아들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한눈에 보여줄 수 있지만 참고 있어. 내가 여기서 터지면 주신계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마계의 아들? 그가 투신태자라는 것을 모르는 다니엘은 눈을 껌벅이며 클라비스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쉽지 않아……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
그런데 클라비스가 먼저 스스로 분위기를 풀어버렸다.
“아참.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오른손을 꺼내어 손가락을 튕기며 휙 돌아서는 태자. 그는 별장에서 챙겨 나왔던 사진을 꺼내서 건넸다. 계속 굳어있던 클라비스는 그제야 싱긋 웃었다. 인간성 은근히 좋은 능구렁이 태자다.
“이거. 어제 찍은 사진이야. 너희 못 받아서 갔잖아.”
“아, 그랬죠. 사진 주시려고 일부러 오시고. 고맙습니다, 클라비스 태자.”
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 사진을 받아서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분위기가 조금 풀리자 다니엘이 용기를 내어 묻는다. 이 잠깐 동안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클라비스 형. 어떻게 이 앞에 와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죠?”
“방금 말했잖아, 마계의 투신태자라니까? 신급의 존재라는 거지. 이 세계의 시간으로 10년 전에 천마전쟁이 있었다면서? 그러니 천사와 악마에 대해 알겠네. 물론 난 그 때 전쟁이 끝난 후에 와서 전설에는 나오지 않아. 이해됐냐?”
“예.”
오가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에이스는 잠시 돌아서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정말 악마일까?
짧은 까만 머리, 보라색 눈동자, 180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훤칠한 체격, 왼쪽 귀에 길게 내린 귀걸이 등등. 어딜 봐도 악마가 아닌, 그저 얼굴이 조금 까무잡잡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 그는 악마가 아냐.
라고 판단하는 에이스이지만, 클라비스의 방금 말은 결코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저 스스로 마계의 투신태자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스스로 저렇게 서슴없이 입 밖에 낼 정도라면 사실일 확률이 높다. 그럼 진짜 악마라는 얘기가 아닌가!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깜짝 놀란 에이스는 손으로 입을 꾹 막았다. 이제 곧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덮쳐왔다. 이제 남은 건 눈을 꼭 감고 판정을 기다리는 일.
그렇게 초긴장 상태의 에이스의 귀에 “딱” 소리가 들린다.
“뭐 하나, 백작?”
두 눈을 스르륵 뜬 에이스는 눈동자를 위로 올려 앞에 선 사람을 바라봤다. 흑의 차림의 클라비스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고,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자신을 보고 있자 에이스는 고개를 뒤로 휙 젖혔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됐다. 여전히 긴장 상태의 백작은 두 눈 가득 두려움을 담고, 안경 너머로 클라비스를 보면서 묻는다.
“저… 악마 씨? 절 죽이실 건가요?”
“풋! 하하하하하!”
클라비스는 작게 웃은 뒤에 오른손을 빼어 에이스의 이마에 작게 땅콩을 먹였다.
“아가씨,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는데? 이 나한테 대들던 그 당당하던 백작은 어딜 갔지? 아가씨를 죽여 봐야 나한테는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왜?”
클라비스가 마법으로 만들어준 주먹밥 봉투를 두 손으로 품에 안은 다니엘과 류, 앞에서 마주 보는 그의 말에 눈을 두어 번 껌벅였다.
방금 그가 한 말, 다른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 바로, 죽일 가치가 없다는 말.
하지만 에이스에게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악마를 만나 살아났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그녀는 감격 그 자체.
클라비스의 용건이 끝난 것을 아는 류가 다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클라비스 태자.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주신계의 법령이나 금기가 아니라면, 저나 다니엘을 포함한 일반인은 모두 죽일 수 있습니까?”
“충분히 있지. 하지만 넌 아냐. 류, 넌 아주 특별한 존재다. 그걸 잊으면 안 돼. 넌 재건태생의 후생체로서, 언젠가는 천계의 부름을 받을 지도 모르거든. 아직 재건태성 이후의 사자가 나타나지 않았거든. 주먹밥 맛있게 먹으렴. 간다. 다음에 또 보자.”
클라비스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류의 눈에는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클라비스의 모습이 보였다.
재건태성이라는 말로 둘러대기는 했지만, 클라비스에게는 그것만이 전부의 이유가 아니었다. 유에에게서 류가 재건태성의 후생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곧장 마계에 내려갔었다.
정확한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다. 유에와는 달리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그였다.
“재건태성이 태어났습니다. 지금 인간의 이름은 류 페이. 나이는 23세. 인간계 제 7계 4번 행성에 있는 나라 중 하나에서, 트러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흠-. 그래? 죽이라고 명하고 싶지만 주신계의 눈이 도사리고 있어서 쉽지 않군. 천계는 아직 모르는가?”
“아닙니다. 유에가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폐하.”
그가 폐하라고 부르는 유일한 악마는 악마계의 최고위 신, 마제밖에 없다.
“너무 자책하지 마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 어쨌든 조심해라. 우리가 먼저건 그들이 먼저건, 그 녀석이 죽으면 귀찮아지는 건 우리다. 그걸 잊지 말고 옆에서 지켜보도록. 알겠나, 마자.”
“예.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 클라비스는 이내 인간계로 돌아왔다.
회상을 끝낸 클라비스는 집에 도착해 다시 모습을 바꾸고, 계단을 내려갔다. 1층에서 느껴지는 천력 둘. 리아와 미스테리우스 둘 다 거실에 있는 모양이다.
“간지러, 간지러, 간지러워어어어~”
“참으십시오, 마마. 먼저 시작한 건 마마이십니다.”
“그래도 간지러운 걸 어떻게 해. 아잉~ 간지러~”
“참으십시오!”
계단을 내려가는데 들리는 두 여인의 시끄러운 말소리. 계단을 모두 내려선 클라비스, 소파에서 뒹구는 그녀들을 보며 물었다.
“뭐하는 거야?”
Ace.Star.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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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정답은 아니에요. 그건 혼자서도 가능하잖아요~?
으음.... 마마께서 혼자하기에는 쑥쓰러워서 그러셨나?
무엇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