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는 도시 인구 60만 명, 생활권 인구 100만 명이 넘는데도 버스터미널이 없는 곳이 있다.
아마 이쪽에 관심이 있거나 지역 주민이라면 잘 알 것이다.
버스터미널이 없어 항상 말이 나오는 그곳은 바로 안양이다.
그러나 터미널 계획을 1990년대 초반에 세웠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평촌IC - 농수산물시장 사이의 공터가 원래 터미널 부지였다.
하지만 지하철과 연결이 되지 않는 외진 위치 때문에 선뜻 사업자가 나서지 않았고,
지역 주민들마저 터미널이 들어오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터미널 부지를 포기한 대신 어떻게든 대체부지를 만들고자 했으나,
번번이 시도가 좌절되면서 무려 3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하지만 시외 노선을 안 만들 수도 없던 노릇이라,
억지로 공간을 만들어 일부 시외버스를 간신히 굴리고 있다.
전통적인 안양 중심지였던 안양역 앞 주차장을 활용해
터미널 아닌 터미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터미널 건축을 연기하는 데에 전국 1등인 도시에서,
터미널처럼 보이도록 연기하는 데에 감쪽같은 이곳을 만나보려 한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안양역에 왔다.
개인적으로 10대 후반 ~ 20대 초반에 좋고 나쁜 추억 모두를 한가득 가지고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진을 찍기 위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유는 당연히 사진을 찍을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안양역 앞에 있는 '안양역시외버스정류장'을 찍기 위해 왔다.
포털사이트로는 '터미널'이라는 명칭으로 검색이 되지만,
구조적으로 볼 때 버스터미널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단지 여기서 출발하는 시외버스가 있기 때문에 삼거리 일부가 터미널식으로 개조된 것 뿐이다.
안양역에서 지하상가만 건너면 곧장 나올 만큼 접근성 하나는 뛰어나지만,
삼거리 일부를 쪼개서 사용하는 만큼 공간은 매우 비좁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가 표를 파는 매표소이다.
매표소에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살 수 있는 매점도 있다.
옛날 토큰을 팔던 시절의 버스정류장 가판대와 비슷하다.
매표소 가판대 옆에는 박스 형태의 조그마한 대기실이 있다.
제법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수요가 있다 보니 항상 몇 명씩은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무더운 여름과 차디찬 겨울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진 정면에는 시간표와 거울이 달려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매표소가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시간표를 보면 안양의 시외버스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뜩이나 도시 규모에 비해 노선 숫자가 굉장히 적은데,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안양역시외버스정류장'과 '안양시외버스정류장'이 따로 있다.
이름마저도 '역'이라는 단어 하나 차이라서 헷갈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불과 500m를 두고 두 정류장이 따로 떨어져 있는 이유가 있다.
'안양역시외버스정류장'은 이곳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 노선 위주로,
'안양시외버스정류장'은 다른 곳(인천, 부천, 고양 등)에서 출발해 중간 경유하는 노선 위주로 정차한다.
그러나 이런 패턴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겨우 500m를 사이에 두고 따로국밥처럼 운영되는 바람에
안양시민들조차 둘을 놓고 잘못 찾아가는 일이 부지기수라 한다.
심지어 이곳에선 안양로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다.
여기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한 시간표와 요금표만 안내되어 있을 뿐이다.
가뜩이나 너무 아담해서 눈에 잘 띄는 위치임에도 정류장을 미로 찾듯 찾아야 하는데,
정작 타야 할 버스가 여기를 지나가지 않아서 버스를 놓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노릇인가.
더군다나 안양시의 시외버스정류장은 안양역 두 곳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범계역 인근의 '호계시외버스정류장'에도 상당수의 시외버스가 정차하여,
조그마한 도시에서 총 세 곳의 정류장으로 노선이 분산되어 있다.
이러하니 안양 사람들이 시정에 불만이 안 생길 수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안양역에도 기차가 잘 서지 않아서 기차를 타려면 광명역이나 수원역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조차 정식 터미널이 없이 곳곳에 분산된 간이 정류장에 의존하다 보니
안양시의 시외교통 인프라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여기가 안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승차장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라면 믿겠는가?
나머지 두 개는 대전 둔산정류장처럼 길가에 있는 버스정류장이다.
환경이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안양시민들은 시외버스를 이용할 때 서울로 가기를 선호한다.
분단된 현실 때문에 수도권 버스 노선들이 대체로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고려하면,
안양시민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북쪽으로 역주행한다는 말이다.
시민들만 불편한게 아니라 기사들도 엄청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로터리 한복판에 주차를 하다보니 차가 빠져나가는 과정이 사고 위험을 동반하고,
기껏 차를 세워도 휴식 공간이 없어서 안양 노선은 기피대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모두가 불편한 이 현실이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도로 옆의 초라한 간이승강장에서 화려한 안양역 민자역사를 바라보면 괴리감은 극에 달한다.
터미널을 만든다는 이야기만 30년 째 흘렀지만,
아직도 안양시는 지키지 못할 약속만 반복할 뿐 기약 없는 시간을 흘러보낸다.
첫댓글 사진잘봤습니다
진짜 안양은 절망할만한 지역중하나인데 역이 있어도 기차도안서고 타지역처럼 번듯한 터미널이 있는곳도 아니고 로터리에 간이 터미널?!
버스기사들도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해도 과언이아닐텐데요
차라리 부지를 구해서 번듯하게터미널을 짓는게 나을거같네요
사업을 질질 끄는 동안에 땅값은 폭등하고, 쓸만한 땅은 이미 다 개발했고 아주 총체적 난국입니다.
안양역 앞에 환승터미널을 짓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무산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위태롭게 운영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네요.
안양은 종합터미널의 필요성이 시급한곳이죠. 농수산물시장의 부지만 잘 해결됐어도 지금쯤이면 그 규모와 효과를 상상하지도 못할텐데, 참 아쉬운 도시입니다.
주변 입지만해도 안양,평촌,산본,의왕,과천,석수,시흥,구로,고천,군포, 어림잡아 100만명은 족히 넘을텐데요.
중심지 역할을 하는 터미널 부재가 참 아쉽더군요.
청주행만 봐도 개통초기에 50분 간격이었고 제천행도 안양출발이 별도로 있었으며 음성행도 부천발4회, 인천발6회, 증평행6회, 진천행8회 등
2000년대 초반에는 꽤 좋은 배차를 유지했었죠.
통합 터미널이 생겼더라면 지금쯤 어땠을까하는 마음이 듭니다.
통합 터미널이 있었다면 수원, 성남과 비슷한 규모로 전국 각지의 노선을 확실히 끌어모으지 않았을까요?
안양, 군포, 의왕만 합쳐도 100만 명이 넘는데 금천구, 광명, 과천에서 찾기도 쉬운 편이죠.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성남, 부천, 고양은 모두 해결됐는데 여기만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안양은 여전히 터미널 문제가 해결된 게 없군요. 저 정도 도시에 간이정류장 수준의 시외버스 승차공간은 참으로 보기 민망할 지경입니다. 안 그래도 정류장이 있는 안양역 일대가 안양 시내에서는 가장 번화가라 복잡할 수 밖에 없을텐데 시외버스의 동선이 저런 식이면 복잡함이 더 가중될 것 같네요. 위에 말씀하신 것처럼 열차편도 많지 않아 버스 수요가 꽤 쏠쏠할텐데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복잡함의 끝판왕이죠. 여기저기 정류장이 쪼개져 있는데 하필 셋 다 안양 최고 번화가를 지나가니까요.
전철 연계를 고려하면 범계역 옆에 공원 부지, 아니면 인덕원역 북쪽에 개발 안된 곳밖에 없고, 나중에 인덕원동탄선 생기면 호계사거리 정도가 있겠네요. 물론 교도소가 이전한다는 전제지만.. 도로도 넓고, 고속도로 접근성도 괜찮은 걸 생각하면 차라리 인덕원이 나을 듯도 싶네요.
지역 주민들은 인덕원에 만드는 것을 원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습니다. 호계사거리도 나쁘진 않네요. 허나 가장 중요한건 역시 시의 의지겠죠.
안양역에 가면, 이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유치권 행사중이라는 표지가 20년 넘게 걸려 있죠. 어찌보면 인근 과천의 우정병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앞 건물도 항상 저 모양이죠.. 언제쯤 바뀔 수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