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혼불문학답사는 남원의 종가를 찾아서 기행을 했다. 일차적으로 『혼불』의 배경지인 삭녕 최씨 종가와 『혼불』의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매면 상신마을의 전주 이씨 영해군파 종가를 답사했다. 그리고 삭녕 최씨 종가와 교류가 많았던 오수면 둔덕리 전주 이씨 종가를 찾았다. 남원의 대표적 가옥인 수지면 호곡리 죽산 박씨 종가와 대강면 장수 황씨 종가, 풍계서원을 답사하였다.
2011년 답사에서는 특별히 춘향사당 건립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남원의 정신적 종가는 춘향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춘향사당과 춘향영정, 춘향제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의 흔적과 발자취가 남원의 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원은 춘향고을이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든지 남원하면 제일먼저 춘향이를 떠올릴 것이다. 남원이 춘향고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일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춘향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춘향제는 남원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남원의 정신적 종가는 춘향과 관련된 것으로 춘향사당, 춘향제, 춘향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춘향제는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 물론 춘향전 책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80년 전에 누군가 춘향제란 축제를 시작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931년에 이현순, 강봉기, 이백삼, 최봉선 등이 중심이 되어 춘향사당을 건립하면서 춘향의 제사를 올린 것이 춘향제의 시작이었다. 춘향사당을 건립하기 위해 권번에서 돈을 모금했고,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자인 기생이 제사의 제주가 되었다. 이것이 춘향제의 기원이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여기에서 한 줄만 더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춘향사당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이현순, 강봉기, 이백삼, 최봉선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가? 이들은 어디에 살았고, 누구와 교류를 하며 어떻게 살았는가? 그 일대기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일을 기록해 둔 책이 있는가?
춘향제 관련 책을 뒤져봐도 이 사람들의 이름과 소속만 거명되고 있지 그 뒷이야기나 개인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춘향제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도 없으면서 춘향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원을 춘향고을이라고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나를 있게 한 과거의 역사, 춘향제를 있게 한 춘향의 역사에 무관심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역사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현순, 강봉기, 이백삼, 최봉선 이 분들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100∼120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모두 다 타계하셨을 것이다. 이 분들의 후손들, 자녀분들도 이미 80 이상의 고령이 되어서 생존해 있는지 어떤지 모른다. 설령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옛날 일들을 잘 기억할 수 있을지, 또는 말을 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 분들의 생몰연대, 거주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늦었지만 이 분들을 알고 있을만한 주변 분들을 수소문하여 개인적인 생활, 활동, 평소의 생각 등을 알아보고 기록해야 한다. 이 분들의 일을 추적하는 것이 이미 늦은 감이 든다. 그렇더라도 만약 지금이라도 추적하여 기록해두지 않는다면, 더 세월이 흐른 후에는 이분들의 흔적을 찾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춘향사당 건립자들을 찾아 나섰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 자취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이현순 씨의 흔적을 어느 정도나마 더듬어볼 수 있었고, 당시 권번에 편지를 썼던 이시옥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리고 1966년 동아일보의 최봉선 씨 기사를 발견하여 최봉선(부산 출신) 씨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백삼 씨와 강봉기 씨에 대한 흔적을 추적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답사 책자 발간을 통하여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선조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2011년 혼불문학답사를 마치며
첫댓글 서정섭 교수님과 이훈정 부 이사장님과 함께 오수면 이씨종가 고택을 방문하여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던 곳을 방문하였슴니다,
낫에는 정오가 되자 오수면 으로 가서 정심식사를 하고 남원으로 가다는 길목의 춘향이 눈물방죽에서 소설속의 성춘향이는 유춘향이라고 하던이 이재 다시 소설속의 춘향이 눈물방죽을 바라보면서 남원으로 내려와야할 길목의 서니 다시 뒤돌아보고 또보기 위하여 다시오마 하는 마음으로 남원으로 내려왔었다,
혼불문학관에서 책을 발간하니 사진속의 혼불이 살아있는 최명회님의 그림자가 오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