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직업
달빛 김 일 호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길 따라 마냥 걷고 싶은 첫 번째 사람은 아내이다. 오늘도 음식냄새 가득한 식당에서 오는 손님 가는 손님을 헤아리며 곤한 삶을 꾸려가야만 하는 아내의 일상을 훔쳐보면서 갚을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려보는 생각이다.
아내의 첫번째 직업은 1991년도에 시작한 자그마한 수입제품 코너의 운영자였다. 그렇게 아내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가장을 대신하여 가정경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돈벌이에 나섰다. 두 번 째 직업은 오리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등나무 가든>이란 상호의 여사장이 되었다. 전국의 맛있는 999집으로도 알려졌고, 중앙일보의 문화면 전면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전통 한옥의 고고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건물을 임대하여 <예당 한정식>을 운영하며 정통 한정식의 진가를 발휘 하였는 바 수많은 식도락가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었지만, 그 음식점도 몇 년을 넘기지 못하였다. 그 후 아내는 잠시, 쉴 틈 없이 100여 평이 넘는 공간의 기존 라이브 카페를 인수하여 <쉘브르>라는 명칭의 카페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것도 2년 남짓 운영하다가 임대기간의 만료로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다시 오뚜기 처럼 일어섰다. 십 수년 묵은 피로를 덜어내기 위하여 불과 몇 개월 동안 쉬는 듯 하더니만, 다시 일거리를 만들었다. 일식집을 인수한 것이었다. 자식들도 장성하여 출가하고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하기에 지나간 환경에 비교하면 그나마 덜 어려운 가정경제임에도 아내는 우직스럽게도 다시 직업을 가졌다. 이제는 겉보기에 어였한 일식집의 사장이 되어 예닐곱 명의 식솔(종업원)들과 함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을 좇아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그 모습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1층과 2층의 구조로 짜여진 일식전문점 <사가이>, 시작한지 반 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널리 알려진 조치원의 명소로 자릴 잡아가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지하층의 노래주점까지 인수하여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악한 삶의 조건들을 일하는 즐거움으로 피로를 이겨내고 있다. 기껏해야 자신의 삶도 챙겨보지 못하면서 사회운동에 빠져있는 무능한 가장을 원망해볼 만도 한데, 묵묵히 살아가는 아내에게 그저 머리 숙여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나 하는 짓(?)이라 해도 좋다. 아내의 열정적인 삶을 존경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