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
3시에 창욱이 집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고속도로로 서둘러도 지키기 어렵다. 어제 충권이랑 그의 집까지 가서 술을 마신 후유증 탓이다. 모두 나가고 난 집에서 늦잠을 잤는데도 또 운전 중에 잠을 이기지 못하겠다. 고속도로 벗어나 그늘 찾아 잠을 청할 수 밖에 없다. 복잡한 벌교 읍내에 들러 겨우 차를 길 가에 대고 제과빵 몇 개를 산다.
쓰러져 가던 창고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파란 지붕을 한 조립식 건물이 낯설다.
경운기가 길게 서 있는 창고 앞쪽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도 사람 기척이 없다.
방 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아버지는 더 하얀 머리로 파리한 피부에 뼈대만 굳세다.
잠을 깨우지 않고 형 방으로 들어간다.
TV 옆까지 가득 찬 글씨 속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일어난다.
앉은뱅이 책상 위엔 여자 사진이 있는 요가 책이 보인다.
어머니 안 계신가고 물으니 따라 나온다.
마당에 서자 모자에 장갑을 둘러쓰신 어머님이 들어오신다.
휠체어를 이용해야 할 아버지가 이용하시기에 집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냥 지어져 있다. 왜 이러느냐고 둘이 불만 섞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집을 지은 경석이가 들어와 끊긴다. 장을 보지 않았다는 어머니가 1600미리 맥주병을 꺼내온다. 좋은 안주에 술 사줘야 하는데 하며 경석이와 몇 잔 마신다.
금방 술기운이 올라와 5시가 다되어 준환이가 왔을 때는 긍게 인계하고 난
새 방에서 길게 누워 잠자고 만다.
고땅쇠
준환이는 왜 늦었을까? 일이 있다고 늦을 친구가 아니다. 그는 창욱이 집에 오는 약속을 나랑 해 놓고 아마 후회했을 거다. 종민이는 왜 이 해 긴 때 5시로 약속시각을 정했을까?
7시가 다 되어서야 기적의 도서관을 지나 녹동횟집에 들어서니, 순천 친구 넷이 앉아있다. 현석이가 ‘이제 다 왔다’고 한다. 그는 알까? 뭘? 늦은 친구를. 오지 않은 친구를. 아니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일까? 고민한들 무에 어떻게 다를 것인가?
순천 지회장 선식이는 술을 마시지 않고, 고흥 지회장 응현이는 오지 않았고, 보성 지회장 욕보 현석이는 절제된 듯 하면서도 욕하다 흥분하다 하고, 순천 명문고 3학년 담임 동주는 ‘세련된 것’을 싫어하는가 좋아하는가 모르게 설명하고, 사연 많은 녹동 집을 떠나와 이제는 도시 인문고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 해직당했던 종민이는 이제 나의 이야기할 동네가 아니라고 하고, 준환이는 웃고웃고, 나는 어제 마신 술에서 헤어나지 못해 비겁한 관찰자가 되고---
동주와 보충수업 문제로 핏대를 올리던 현석이는 화를 내었는지, 아니면 그 쯤이 사라질 때라고 여겼는지 먼저 떠나고, 지켜보다 가닥치던 선식이도 이제 더 이상 지키지 말라고 등 미니 그도 가고, 회장이라고 참다 늦게야 술에 취한 종민이의 노래와 고집에 술을 마시고 더 마시다 그와 동주가 집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 내 차의 시동을 걸 때는 3시가 가까워 오고 도시는 여전히 나와 같은 몇 대의 차들이 지나고 있고.
영국이와 동귀는 무얼하고 있을까? 느그들 선생들 더 이상 그 시끄러움을 동의하지 않으리라 할까, 아쉬울까?
친구
밖이 훤하다고 느끼면서도 한참을 더 잤다. 이부자리를 펴 놓고 꿀을 큰 컵 가득 따라와 마시고 자라고 했던 준환이 방이다. 같이 생활하게 된 박선생 덕분에 방은 정돈되어 있다. 4시에 일어나 시원할 때 일하겠다던 그도 8시가 다 되어 일어난다.
그가 차린 밥상은 명태 국은 바닥에 붙어있고, 막 뜯어 온 상추는 풀이 몇 개 섞여있다. 상추가 좋다고, 가게에 진열된 상추는 무슨 조치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연신 권한다.
어디로 갈까? 동생의 천도제를 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집으로 가야 한다.
싫다. 제석사 끝무렵 얼굴만 내밀자고 그의 산에 가기로 하고 만다. 그도 권한다. 언젠가 절에서 만난 박선생이 만세 아빠가 안 풀리는 것이 죽은 조상 중에 억울함이 많아서 천도제를 하려 한다고 하더니. '가봤자 힘들어. 특히 아는 사람 가면 스님이 정성을 더 들이는 통에 힘드네'
동강에서 어제 타이어 수리를 맡긴 트럭을 찾으라 내려주고, 사람들 만나기 싫어 먼저 그의 산으로 들어서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나중에 전화 와 가 있으라 한다. 그의 산에 가는 길은 몇 군데 하얀 세멘 포장이 더 늘었지만, 내 차의 아래를 쿵쿵 찍는다.
'입산금지' '산나물 채취금지'표지판이 붙어있고, 그의 일터로 가는 길 입구에도 긴 나무를 걸쳐 출입을 막았다.
한참 후에 올라 온 친구는 '농협에 돈 찾으러 가다가 장터를 보니 웃겨부네.
박상천이랑 신중식이 떼거리가 민주당 살려달라고 박병종이 연설하네. 진종근이는 한쪽에 찌그러져 조용해불데. 일다가 박병종이 군수되부면 어찌까. 박상천이는 지가 대통령 나가겄다고 뻥 치고 지금도 김대중이 팔고 있데.'
웽웽거리는 벌통 옆에 앉아 일을 잊고 이야기만 한다.
'동주도 시골로 오고 싶어하니 자네도 오소.'
'농촌 고향 좋지만, 우리는 실제 어울리지 않을 지 몰라. 내가 덕촌 살면서 농사를 지었나,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으러 다녔나. 나는 지역의 초등교사라는 것 때문에
대접받으며 살았던 것 뿐이네.'
'고땅쇠 선생 즈그들만 노는 자리에 영구이 동귀랑 안가기로 했는데, 나만 배반 때려부렀네.'
'그래, 깨는 것이 맞다고 보네, 내 꼴이 우습네만 . 자기 동네 이야기 하자는 거 아니었잖아, 적당히 의식의 사치나 즐기려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선생이라는 집단이 원래 그렇잖아. 그렇게 해도 사니까.'
'벌도 자주 봐줘야 하거든. 시간을 갖고 보면 예상대로 되는데 자주 놓쳐.
자네도 한 통 키워보소.'
'글쎄.'
그는 쑥연기를 피워 벌통으로 가고, 난 그의 두릅과 더덕 사이를 지나며 고사리를 꺾는다. 검정 비닐 봉지에 꽤 찼다. 누가 먹지?
고사리 꺾느라고 늦었다고 밝힐수도 없으니 어머니께도 못 드리겠고.
12시가 다 되어 이제 제사가 끝났겠거니 하고 다시 내려오는데
매제한테서 어디냐고 전호가 온다.
천도제
제석사 오르는 길은 농사일이 시작되고 있다. 오랜만에 절에 오르는 길은 안내판도 돈을 들였고, 깨진 세멘길도 보수되었다.
차를 세우니 더 덥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머리 밀어넣고 손이랑 씻을까 하는데 내려가는 길이 없다. 계단을 두고 서서히 흙길로 올라 법당 앞으로 가니 어머니가 밖에 나와 계신다. 꾸중이라도 하시면 좋으련만 애기들은 안왔느냐고만 묻는다.
제사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누님과 동생 부부가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스님이 불상에 절을 세 번하고 와서 자기 곁에 앉으라신다. 천수경을 펼치고 스님을 따라 경을 우물거리며 따라 읽는다. 30여분 책장을 넘기며 의식을 진행하는데, 무릎이 아프다.
끝으로 절을 두번하고 지방과 사진을 들고 밖으로 나와 한 줄로 서서 스님을 따라, 소각장에 가서 태운다. 죽은 부부의 하얀 옷과 플라스틱 액자가 타며 검은 연기를 날린다. 스님은 요령을 흔들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고 따라하라 한다.
이렇게 해서 동생은 떠나는가? 나와 나의 둘째 아들이 그의 제사를 지내 줄 수는 없었을까? 어머니는 지금의 나 사는 꼬락서니나 형님의 형편으로 당신이 막내 아들이 밥 한 그릇 못 얻어 먹을 거라고 생각하신가 보다.
탁구 선수 유니폼을 입고 입을 꼭 다문 채 누구의 결혼식장에서 찍은 영정사진이 점점 사라져 가자, 눈물이 맺힌다. 여동생은 눈물 훔치느라 바쁜데 어머니는 의연하다. 검은 연기와 뜨거운 한낮의 햇볕 때문에 땀이 나는 거라고 혼자 속으로 변명한다.
그를 만나며 나의 지난 날을 잊지 않겠다던 나의 한 쪽 다짐도 사라졌다. 어느 편할 때 그의 무덤을 헤치고 유골을 수습하여 순천 화장장에 가지고 가겠다 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가족
윗채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