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월초에 남덕유를 한나절 걸려 찾아갔다가
저녁에 산장에서 거절당하고 내려왔던 일이 생각난다.
친절하게 어둔 길에서 차를 태워주고 밥까지 사주고
부산으로 떠났던 변재삼 사장은 잘 살고 있을까?
그 양반은 변사또의 변씨라 했다.
토요산악회에서는 그 때의 영각사 입구보다 더 올라 남령에
내려주는데도 시각은 10시 30분이다.
1차선 차도 위에 차를 세우고 우린 급히 입산금지 표지가
있는 세멘트 벽을 올라 숲으로 들어선다.
어제 마신 술로 아침도 먹지 못했다.
건강검진 후 골프장에 들른 정헌이는 내 생각이 났는지
전화를 했다. 눈치 볼 것 없이 윤 과장님께 서울에서 고향 친구가
내려와 연락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구문화센터?에 갔다.
자리를 옮겨 동봉회 만나는 곳인 두레박으로 갔다.
장학사 관록과는 상관없이 그는 오랜만에 얼굴이 타 있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도 물집이 터져 말랐다.
내 앞에서 골프 이야기를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그것과
관련한 명함을 여러 장 보인다.
나도 후배중에 골프장 짓는 사람이 있다고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한다.
고흥과 고흥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건방지게 '자기가 한 말이 자기를 묶는다.'라는 말을 한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하는데 난 여전히 함부로 말한다.
강연숙이 와서 둘은 골프로 죽이 더 맞고, 곧 손 교장도 오신다.
결국 정헌이까지 동봉회 자리에 참석하여, 술을 많이 마셨다.
그는 몰래 빠져나가고 나중엔 금호동까지 갔다.
우리들의 만남이란 이렇다. 끊임없이 밀고 올라갔다가
그 힘으로 다시 내려오고, 또 한가해지면 마음이 들썩이는 우리들은
시계추와 다름없다.
아침밥을 안 먹었으니 몸이 가볍다?
나이드신 아주머니 뒤를 따라 오르다, 공터가 나타나 모두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할 때는 맨 앞장을 섰다.
지난 번 산행에서 동행했던 광양의 행정실장은 무전기를 들고
바로 오신다.
짧은 바지에 샌달 등산화를 신었으니 불편하다.
신발바닥으로 뭐가 들어 들어오는 것같고 양말도 금방 더러워진다.
비는 오지 않으나 햇볕도 없다. 오르막이다. 맨 앞 섰다는 것 때문에
자신있게 걸음을 빨리한다.
20여분 걸었을까? 땀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더 간다.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한다. 김 실장과 여성에게 선두를 양보하고
길 옆에 주저 앉고 물을 마신다.
고개를 처 박고 숨을 고른다. 몇 사람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올라간다.
70대의 노부부도 서로 힘을 주며 앞서간다.
물을 더 마시고 일어난다.
여전한 오르막길에 또 지친다.
포기를 이래서 하는가보구나,
술의 공격을, 아니 나 스스로의 '자살골'을 절감한다.
5분 여 오르며 길을 벗어나 앉을 곳만 찾는다.
길을 벗어나 젖은 이끼가 낀 돌 위에 선다.
또 몇 사람이 지나쳐 간다. 다시 힘을 낸다.
조금 오르자 또 헬기 착륙장이 나타난다.
꽃 찍는다는 핑계로 또 쳐진다.
요염한 싸리를 하늘에 놓고 보는데, 자꾸 흔들려 몇 번을 찍어봐도
여전히 초점은 잡히지 않는다. 이것도 술 탓인가?
12시쯤 되었을까? 영각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들어서는 일은
역시 입산통제 나무 기둥이 가로막고 있다.
다른 산악회 팀들이 섞인다. 우리 회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동행한 몸집이 넉넉한 젊은이를 만난다.
내가 한 번 더 왔는데, 차안에서는 내내 잠만 잤고
혼자 맘대로 앞서만 가다가 뒤쳐지고, 괜히 혼자 부끄럽다.
이전에 혼자 올랐던 철계단을 하나둘 오른다.
온통 안개 바다다.
철계단 몇 개를 올라서 눈 앞에 나타난 뾰족한 봉우리는 안개가
가지고 논다. 계단을 올라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숨 고르게
한다. 그 덕에 또 꽃을 본다.
짝과 점심을 같이 먹으련다고 마음먹었는데, 정상에 이르니 보이지
않는다. 남덕유산 1504미터 표지석은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다.
겨우 그의 얼굴을 찾아 사진만 찍고 내려간다.
지치고 지쳤던 오르막에 그 선두?양반들과
다시 만난 건 그들이 길을 헤매서였다. 나의 짝꿍은 잊고
그들을 따라 '100여미터 내려가' 점심 자리를 잡는다.
걸다. 무공해 고추와 술과 그득한 콩이 얹힌 밥과
수준높은 볶음밥!
나 혼자만 김밥이다.
산 봉우리에서 혼자 먹던 나의 점심과는 다르다.
난 김밥과 맥주 한 캔인데.
아, 그들은 다 배경이 든든하구나.
변명처럼 각시 고생 시키지않으려한다 했더니
아직은 그럴 나이 아닌것 같은데 하는 어르신의 답이 바로 나온다.
얼린 수박과 얼린 홍시, 그리고 술에 고추를 얻어먹은 점심이 끝나고
다시 서봉과의 길을 확인하고 출발하며
시계를 보니 1시 10분이다.
월성재에서 토옥동 계곡가는 길 역시 막혔다.
저 앞에 삿갓봉과 그 너머 향적봉은 맘 속으로만 그린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산악회에서도 그리 갔노라고 표시해 두었다.
꺼림칙하다. 그러나 어쩌랴. 다래덩굴 등을 헤치고 내려가자
등산로가 확연하다.
10여분 내려가자 물소리가 들린다. 잠깐 씻으며 물을 손으로 마신다.
긴 계곡을 내려갈수록 물소리는 커지고
암반 위로 하얀 물이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바위 사이를 건너 뛰며, 계곡 옆을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1시간쯤 내려갔을까?
무전기는 회장 일행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자주 소리난다.
맨 뒷좌석에 앉았던 고추 가져온 여인이 끼어 옷을 거의 벗지 못하고
씻는다. 카메라를 꺼내 산수국과 엉겅퀴 등을 찍으며 뒤로 쳐진다.
입산통제라고 한 곳에는 자가용 몇대가 올라와 가족들이 놀고 있다.
양악 저수지 위에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있다.
버스 옆에는 선두 그룹과 우리 일행 등이 술을 마시고 있다.
막걸리에 소주에 맥주 많다.
검은 선그라스를 낀 운전사 사장님은 우리 일행 중의 나이 많은 이에게
'김사장님 오랜만에 오셔서 막걸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 김 사장 옆의 등치 좋은 어르신은 소주를 마시고, 난 아무거나
주는대로 마신다.
어제의 술은 잊었다. 나의 '기억력'이란 실은 이 정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3시 20분 무렵 도착하여 술을 마시고, 40분이 넘자
사장이 오리탕 솥단지 뚜껑을 연다.
큰 솥에서 밥을 퍼 오리탕 솥단지 앞에 내미니
밥이 많지 않느냐고 하면서 건더기까지 듬뿍 주신다.
다 먹었다. 차로 올라가 의자를 더 젖히고 잠잤다.
얼마나 잤을까, 5시 반을 지나는데도 아직 회장 등 뒤쳐진 일행은 도착못했다.
빗속에 탈진하여 도착한 분들에게 작은 소리로 인사한다.
그들이 밥 먹을 시간을 또 기다린다.
돌아오는 길에는 차 안의 에어컨 때문에 목이 깔깔하다.
요놈의 세상을 살려면 너무 자연적이어도 안된다.
다음 산행은 차를 더 타야 한다는데, 참여를 재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