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43) - 역답사(몽탄역/일로역)
1. 천안에 숙소를 얻고 시작한 한반도 서부 및 중부의 역답사는 오늘로 1차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남은 거주 기간에는 집중 탐구할 역 몇 군데를 선정하여 천천히 걸을 예정이다. 오늘의 역은 무안지역의 <일로역>과 <몽탄역>이다. 무안에는 두 역 이외에도 <무안역>이 아직 살아있다. 무안은 목포와 밀접한 지역으로 두 지역은 하나의 생활권일 아니라 두 지역을 모두 합해도 규모가 크지 않다. 과거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짧은 시간에 목포와 무안의 핵심장소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당혹하기도 하였다.
2. <몽탄역>은 과거의 영화가 추억과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곳이다. 과거 이곳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흥청망청할 정도의 사치가 넘치던 곳이라 한다. 그런 추억을 잊지않기 위해 역 내부에는 작은 규모의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고, 과거에 대한 증언들이 넘쳐난다. 몽탄 거리에 엉뚱한 느낌으로 서있는 ‘단란주점’의 낡은 간판도 또한 그때의 상징일 것이다. 역을 나서면 전형적인 면의 건물들이 이어진다.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파출소 등 반드시 있어야만 건물과 함께 그 지역을 대표하는 성당도 만날 수 있다. 성당은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성당에는 항상 예수와 마리아 상이 동시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가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점은 예수의 인간성을 밝혀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다. 그런 점이 가톨릭이 좀 더 인간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개신교의 예수는 다만 부활에 초점을 맞춰 오로지 신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몽탄 거리에서 조금 더 걸어 나가면 소박하지만 정갈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사이를 걷는다. 마을 입구 쪽에는 푸른 벼들이 영글어가고 있으며 마을로 들어서자 산쪽으로는 큰 규모의 수수밭이 가득하다. ‘잡초’라는 말이 각각의 식물들에 대한 존중없는 말인 것처럼, ‘잡곡’이라는 말도 오로지 ‘쌀’만 중시하는 우리의 사고가 반영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잡곡’들은 오랜 시간 더 긴요한 방식으로 인류의 생존을 지탱시켜준 귀한 곡식들이다. 마을 가득히 자라고 있는 ‘수수’를 보면서 각각의 존재를 존중하는 마을의 풍성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3. <일로역>을 나서면 아무 것도 없다. 작은 편의점도 없는 것이다. 다만 길이 연결된다. 길은 자전거길로 시작하여 걷다 보면, 호남평야의 널다란 벼들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역답사의 가장 흔한 풍경은 벼들이 자라고 있는 논이다. 논들이 많은 곳은 풍성한 마을의 상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따뜻한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여름의 푸름이 조금씩 노란 가을의 색채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가을이 오고있는 것이다.
일로읍의 논들은 규모가 상당하다. 충청도와 경상도의 논들보다 확실하게 규모나 크기에서 압도적이다. 멀리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논들 사이를 걸었다. 어떤 길보다도 아름다운 길이다. 논 사이에는 흰색의 물새들이 날아다니고 한 무리의 새들은 땅을 일구는 농기계에 옆에 진을 치고 있다. 그곳에 먹을 곳이 있나 보다. 농기계와 새들의 조화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이젠 익숙한 농촌의 풍경이 되고 있다. 논과 논 사이를 지나고, 하천 사이를 걸었다. 어떤 이름도 붙어있지 않지만 전국의 둘레길 어떤 곳에 못지않는 아름답고 평안한 길이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부족한 것을 제외하고는 멋진 답사 코스로 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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