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이때 장량이 군문(軍門. 군영[軍營 : 병영]의 문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으로 갔다가 번쾌(樊噲. 한 고조 유방[劉邦]의 부하 장수였고, 용장이었다 – 옮긴이)를 만났다.
번쾌가 “오늘 일(유방이 항우를 항우의 군영 안에서 만난 일 – 옮긴이)이 어떠합니까?”하고 묻자, 장량은 “심히 위급하오. 지금 항장(項莊. 항우의 사촌 동생 – 옮긴이)이 검을 뽑아들고 춤을 추는데, 그 뜻은 오로지 패공(沛公. 유방의 당시 경칭. 그가 ‘패[沛]’라는 땅에서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었다 – 옮긴이)을 해치는 데에 있소이다.”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들은 – 옮긴이) 번쾌가 “이는 급박한 일입니다. 신(臣. 번쾌 본인 – 옮긴이)은 (군영 안으로 – 옮긴이) 들어가 패공과 삶과 죽음을 같이하기를 청합니다.”하고 말하였다.
번쾌는 즉시 검을 차고 방패를 들고는 군문으로 들어갔다. 파수를 서는 위사(衛士. [문이나 통로를] 지키는[衛] 무사[士] - 옮긴이)들이 (그를 – 옮긴이) 막으며 들여보내려고 하지 않자, 번쾌가 방패를 비껴서 (위사들을 – 옮긴이) 치니, 위사들은 땅에 엎어졌다.
번쾌가 마침내 들어가서 장막을 들치고 서쪽을 향해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항왕(項王. 항우. 항우의 성이 ‘항’씨이므로, 이 명칭은 ‘항씨 성을 가진 왕’이라는 뜻을 지닌 존칭이다 – 옮긴이)을 노려보았는데, (그의 – 옮긴이) 머리카락은 위로 곤두서고, 눈꼬리는 찢어질 대로 찢어져 있었다.
항왕이 (그런 번쾌를 보고 – 옮긴이) 검을 만지며 무릎을 세워서 앉고(좀 더 정확히는, 몸을 세워서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 검을 만지는 일과 더불어 –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싸울 준비를 한 것이다 : 옮긴이)
“그대는 무엇 하는 자인가?”
하고 물으니, 장량이 (항우에게 – 옮긴이)
“패공의 참승(參乘. 높은 사람이 수레에 탈 때, 늘 수레의 오른쪽에 서서 그 사람을 지키는 사람, 그러니까 호위병인 벼슬이다 – 옮긴이) 번쾌라는 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항왕이 (장량의 대답을 듣고 – 옮긴이)
“장사로다. 그(번쾌 – 옮긴이)에게 술 한잔을 내리라.”
고 말하니, 곧 큰 잔에 술이 주어졌는데, 번쾌는 감사하는 절을 하고 일어나 (그 술을 – 옮긴이) 선 채로 마셔버렸다.
그러자 항왕이 “그에게 (술안주로 – 옮긴이) 돼지 다리를 주어라.”하고 말하니, 곧 (항우의 부하들이 – 옮긴이) 익히지 않은 돼지 다리 하나(그러나, 『 사기지의[史記志疑] 』 에 따르면, 돼지 다리는 날것으로 먹을 수 없으므로, 원문의 “익히지 않은”은 잘못 들어간 글자고, 실제로는 쪘건 구웠건 삶았건 어떤 식으로든 가공한 돼지 다리였을 것이라고 한다 – 옮긴이)를 주었다.
번쾌는 방패를 땅에 엎어놓고, (그것을 도마 겸 접시로 삼아 – 옮긴이) 그 위에 돼지 다리를 올려놓고는 검을 뽑아서 (돼지 다리를 – 옮긴이) 잘라서 먹었다.
항왕이 (그 모습을 보며 – 옮긴이) “장사로다. (술을 – 옮긴이) 더 마실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니, 번쾌가 이렇게 말하였다.
“신(臣)은 죽음도 피하지 않는 사람인데, 술 한잔을 어찌 사양할 수 있겠나이까!
진왕(秦王. 진의 2세 황제인 ‘영호해’를 깎아내리는 말 – 옮긴이)에게 흉악한 마음이 있어, (자신이 사람들을 – 옮긴이) 다 죽이지 못할 것이 우려되는 듯 사람을 죽이고, 만들어놓은 형벌을 다 쓰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듯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니, 천하(누리 – 옮긴이)가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영호해 때 다시 세워진 초[楚]나라의 임금인 – 옮긴이) 회왕(이름은 ‘미심’ - 옮긴이)께서 여러 장수들에게 약조하시기를, ‘먼저 진(秦)나라(진 제국 – 옮긴이)를 무찌르고 함양(훗날의 장안[長安]이자 오늘날의 서안[西安]. 이때는 진나라의 도읍이었다 – 옮긴이)에 들어가는 자를 ([진나라가 있었던 땅인] 관중의 새로운 – 옮긴이) 왕으로 세우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패공께서는 먼저 진나라를 무찌르고 함양에 진입하셨으되, 터럭만한 작은 물건이라도 감히 가까이 취하는 바 없으며, (진 제국의 – 옮긴이) 궁실(宮室. 궁전[宮] 안에 있는 방[室] - 옮긴이)[문을 – 옮긴이] 굳게 잠그고는 다시 패상(지역 이름 – 옮긴이)으로 돌아와서 군대를 주둔시켜 대왕(항우 – 옮긴이)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 그 분이 – 옮긴이) 일부러 장수를 보내어 관(‘관문’을 줄인 말 – 옮긴이)을 지키도록 하신 까닭은, 다른 도적들의 드나듦과 위급한 상황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 옮긴이) 애써 수고를 하시고, 공로 또한 이처럼 높은데, (그런 그 분에게 – 옮긴이) 봉후(封侯. 제후[侯]로 봉함[封] → 제후로 삼음 : 옮긴이)라는 상을 내리시지 못할망정, 소인배(항우에게 ‘유방이 관중의 왕이 되고 [항복한] 영자영[진 제국의 3세 황제]을 재상으로 삼아 진귀한 보물을 모두 다 차지하려고 합니다.’하고 말한 조무상 – 옮긴이)의 쓸데없는 말을 들으시고, 공이 있는 사람(유방 – 옮긴이)을 죽이려고 하시니, 이는 멸망한 진나라를 잇는 꼴이 될 뿐입니다.
대왕을 위해서 제 나름대로 생각건대, 그 같은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항왕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번쾌에게 – 옮긴이) “앉으라.”고 말하니, 번쾌는 장량을 따라서 앉았다.
번쾌가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패공이 일어나서 뒷간(변소/화장실을 일컫는 옛 말 – 옮긴이)을 가면서 그(번쾌 – 옮긴이)를 밖으로 불러내었다.
패공이 나간 뒤, 항왕은 도위(都尉 - 벼슬 이름. 무관[武官]의 일종 : 옮긴이) 진평(陳平)에게 패공을 불러오게 하였다.
패공이 “지금 (항우에게 – 옮긴이) 하직인사도 하지 않고 나왔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하고 물으니, 번쾌는 “큰 일을 할 때에는 자질구레한 예절은 신경 쓰지 않는 법이요, 큰 예절대로 할 때에는 작은 허물을 사양치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항우의 군사 – 옮긴이)이 바야흐로 칼과 도마가 되고, 우리(유방 일행 – 옮긴이)는 그 위에 놓인 물고기 신세가 된 지경에 무슨 인사말을 하시려고 합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유방은 – 옮긴이) 마침내 그곳을 떠나며 장량으로 하여금 남아서 (자기 대신 항우에게 – 옮긴이) 사죄하도록 하였다.
(아래 줄임[‘이하 생략’])
- 『 사기( 史記 ) 』 「 항우본기( 項羽本紀 ) 」 에서
▶ 옮긴이의 말 :
내가 번쾌의 말을 담은 기록을 인용/소개하는 까닭은, 역사 기록이나 (항우와 유방을 다룬 역사소설인) 『 초한지( 楚漢志 ) 』 에 나오는 유방의 부하 장수이자, 한(漢)나라의 장군인 번쾌를 ‘싸움만 잘 하는 바보’ 내지는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번쾌가 원래는 백정이었고, (한나라의 군 사령관이었던) 한신(韓信)에게는 낮은 평가를 받았으며, 장량이나 진평처럼 계략을 짜내지는 못했지만, - 항우 앞에서 영호해와 진(秦) 제국의 폭정을 비난한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 못해도 그는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는 아주 잘 알았고, 초 회왕 미심이 내세운 명분을 끄집어내며 자신의 주군을 변호하기까지 했으며, 나아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유방에게 ‘큰 일을 할 때에는 자질구레한 예절은 신경쓰지 않는 법이요, 큰 예절대로 할 때에는 작은 허물을 사양치 않는 것이다.’는 원칙을 일깨우고, 적인 항우 일당을 “칼과 도마”에, 그들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한 자신과 유방을 “도마 위에 놓인 물고기”에 빗대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는 ‘힘과 상식을 모두 갖춘 무장’이자, ‘용감할 뿐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꿰뚫어 볼 줄도 아는 군인’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소설이자 야사(野史)인 『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 』 가 그리는 바와는 달리, 실제 갈마(‘역사[ 歷史 ]’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 속의 장비(張飛)는 그림과 시(詩)와 붓글씨에 능했고, 험악하게 생기거나 못생기지도 않았으며, (설령 적장이라도) 신분이나 직책이 높은 사람에게는 정중하고 교양 있게 대했던 사람이었다는 연구결과를 존중한다면,
진(秦) 제국 말기/초한( 楚漢 )시대[ 항우와 유방이 싸우던 때. 항우의 나라는 초나라였고, 유방의 나라는 한나라여서 이렇게 부른다 ]/서한( 전한 ) 초기에 살았던 번쾌도 ‘싸움만 잘 하는 바보’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변호를 잘 하는 사람’/‘상황 판단을 잘 하는 사람’/‘알기 쉬운 빗댐(“비유”)으로 다른 사람을 일깨우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다시 평가해야 하리라.
나는 이 주장이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단기 4357년 음력 2월 21일에, 문학이나 세상 사람들의 고정 관념이 가려 버린 갈마 속 사람들의 참 모습을 밝히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말하고 싶은 잉걸이 올리다